‘포연’ 걷히면 ‘대포폰’ 다시 걸린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1.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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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도발’로 일단 잠복…사태 진정되면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재수사’ 여론 더 강해질 전망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태가 정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명박 정부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대포폰 의혹 사건 역시 연평도의 자욱한 포연에 가려졌다. 지난 11월22일 원충연 공직윤리지원관실 전 조사관의 수첩 내용이 추가로 공개되어 큰 파문이 일었지만, 바로 다음 날 연평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원충연 수첩’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급히 당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향후 연평도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들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에 대한 ‘재수사’ 요구가 더 강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전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 연평도 사태 발발 전인 11월23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 조사 등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원충연 수첩’ 등 새로운 의혹 계속 불거져

우선 ‘원충연 수첩’에 적힌 내용 자체가 상당한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공무원과 언론, 공기업,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동향이 이 수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적’인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 인사들의 동향까지 사찰했다는 정황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수첩에 등장하는 한나라당 서상기·유승민·이혜훈 의원 등은 친이명박계(친이계)와 대척점에 서 있는 친박근혜계(친박계)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공성진 의원 등 친이계 핵심 의원까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원희룡 사무총장과 여권의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 그리고 충남 홀대론을 제기했던 이완구 전 충남도지사 등도 거명되었다. 여기에 YTN과 한국노총 등 언론계와 노동계 동향도 수첩에 적혀 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이시우씨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 부분 자금이 불법 폭력 시위의 배후 지원’이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다. 이 수첩에 ‘BH(청와대) 지시 사항’이라고 적혔던 문구는 이미 공개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11월17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이창화 행정관이 김성호 전 국정원장,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의 부인, 이성헌 의원(친박계),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 등을 사찰했다”라고도 주장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권중기 경정의 수첩 복사본에서도 ‘PD수첩 정리, 언론 정리’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정두언 최고위원과 남경필 의원의 부인, 정태근 의원 등이 사찰 대상자였음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가 얽힌 갖가지 의혹과 의구심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검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서울중앙지검 신경식 1차장검사는 11월23일 “원씨의 수첩은 파악한 동향 내용을 그대로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민간인에 대해서라도 단순히 정보 수집만 한 것이라면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형법상 처벌을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뜻을 거듭 밝힌 셈이다.

하지만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새로운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음에도 검찰은 “이미 조사했던 사안이다. 범죄 정황은 없었다”라는 해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등 야 5당은 11월19일 민간인 불법 사찰과 대포폰 의혹,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네 가지 사항에 대한 특별검사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평도 도발’ 사태가 터진 다음 날인 11월24일, 기자와 만난 여권의 한 인사는 “연평도 사건으로 야권의 민간인 사찰과 대포폰 국정조사 및 특검 요구는 1~2주일 정도 잠복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현 정부의 정무통으로 알려진 인사이다. 그는 “하지만 ‘원충연 수첩’만 가지고 (검찰에) 재수사를 하라는 것은 무리이다. 무언가 새로운 사실이, 다시 말해 재수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아니면, 수첩에 나온 내용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범죄 행위였다는 점이 입증되어야만 (재수사가) 가능하다. 그래야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야권의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수사” 요구에 동참하는 여당 의원 늘어

▲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이 지난 11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충연 수첩’ 외에 추가 자료가 더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인사는 “지금까지 공개된 ‘원충연 수첩’ 이외에도 몇 개의 수첩이 더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잘 확인되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향후 수첩 등 추가 자료가 공개된다면 그 파장은 예측하기 힘들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연평도 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재수사 내지 국회 국정 조사, 특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당장 ‘원충연 수첩’에 이름이 오른 여권 인사들조차 “국정 조사를 하든 특검을 하든 재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각종 의혹을 빨리 해소하지 않으면 현 정권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다”라는 이유에서다. <시사저널>이 지난 11월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한나라당 소속 의원 1백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 사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는가’라는 물음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62.6%였다. 당시 응답자 가운데 “재수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여당 의원들도 상당수였다. 재수사 필요성에 소극적이었던 의원들 가운데서도 이후 ‘원충연 수첩’ 내용이 추가로 공개되는 등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최근 ‘재수사 요구’에 동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11월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광장에서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 조사 및 특검 쟁취와 4대강 반대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으나, 연평도 사태가 터지면서 천막 농성을 일단 접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원외로 뛰쳐나갈 수 있는 불씨는 그대로 살아 있다.

뇌관은 곳곳에 잠복해 있다. <시사저널>이 지난 11월22일 발매된 제1101호에서 단독 보도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상득 의원 처조카 사위와 관련된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도 그는 제외한 채 다른 동료들만 중징계 조치를 받도록 했다’라는 의혹 제기도 정치권에서 갈수록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보도 잇따르고 있고, 추가 폭로 가능성이 여기저기서 거론되는 실정이다. “도대체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관련된 의혹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뒤에 어떤 실세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그라지지 않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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