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반도 정책, ‘제3 시대’로
  • 박승준│인천대 국제정치학 초빙교수 ()
  • 승인 2010.11.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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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때와 ‘이하 동문’ 반응…지난해 7월 외교영도소조 회의 이후 기조 바뀌어

중국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사흘 만에 ‘조한교화(朝韓交火; 조선과 한국이 포격을 주고받은 사건)’로 입장을 정리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중의 하나인 ‘사이나 닷 컴(新浪網)’은 11월23일 사건 발생 직후 ‘조선, 한국 연평도 포격’이라고 제목을 달아 보도했으나, 다음 날 ‘조선과 한국, 상호 포격’이라고 고쳐 달았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내부 검열망에 체크되어 제목을 바꾸어 단 것이다. 포격 당일인 23일 밤 관영 중국 중앙TV에 나온 장롄구이 중국 공산당 당교 교수는 “한국 서해 연평도에 대한 조선의 포격은, 조선이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군사 훈련에 자극받아 조선이 대응 포격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한반도 전문가인 장롄구이 교수의 그런 입장 정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입장 정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오른쪽)이 장신썬 주한 중국 대사를 외교통상부로 불러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호 포격’ 지적하며 ‘자제’만 강조

11월24일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원자바오 총리가 러시아 대통령 관저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나 밝힌 입장도 그런 중국의 입장 정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연평도에 대한 원자바오 총리의 언급은 이런 것이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으며, 어떠한 군사 도발 행위에도 반대한다. 당면한 엄준하고 복잡한 형세에서 관련 당사국들은 최대한 자제를 해야 할 것이며, 국제 사회는 긴장 국면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을 지키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원자바오의 언급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북한에 의한 가해 사건이 아니라, 쌍방 과실에 의한 쌍폭 사건으로 보겠다는 입장 정리를 마쳤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그 전날 발표된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에는 “이 사건이 인명의 사상과 재산의 손실을 조성한 데 대해 비통한 마음과 유감을 느낀다”라고 해서 연평도 피격 과정에서 한국군과 국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위로의 말이 들어 있었으나, 원자바오 총리의 말 속에서는 그런 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와 같은 입장 정리는 8개월 전인 3월26일 밤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의 입장 정리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유하면 ‘불감청이지만 고소언(不敢請 固所願)’(감히 청할 수는 없지만 내심 바라던 바)의 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는 입장 정리인 것이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는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 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끝내 적시하지 못하게 하는 중국 정부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우리를 마치 배신이라도 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보여준 중국 정부의 입장 정리는 이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제 ‘제3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제1의 시대’에 한·중 관계는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정전 이후의 적대적 관계로 점철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 중국은 한국을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으로 부르기는커녕, ‘리청완(李承晩) 괴뢰’ ‘퍄오쩡시(朴正熙) 도당’으로 호칭했으며, 한국과 외교적으로 아무런 교류와 접촉을 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1976년 9월 사망하고 권력을 잡은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1980년대 들어 한국이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사소룡(四小龍)’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신흥 공업국으로 떠오른 점에 주목했다. 이때가 ‘제2의 시대’이다. 중국 외교담당 부총리를 지낸 첸치천이 남긴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에 보면, 덩샤오핑은 1985년부터 첸치천에게 “한국과 빠른 시일 내에 수교하라”라고 독려했다. 덩샤오핑은 첸치천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과 수교하는 것은 중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를 끊어 놓을 수 있다”라면서 수교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마침내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에 수교했고, 이후 18년 동안 양국 교역액의 빠른 증가를 바탕으로 중국 지도자들의 말마따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국가 관계’로 발전해왔다. 그런 흐름은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때 후진타오 주석과 두 나라가 이른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정책 변화, 미국의 위상 하락과 관련 깊어

▲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중국측의 반응을 보도하고 있는 MBC 화면.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2008년 10월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함께 왔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그 흐름에 중국은 휩쓸리지 않고 빠른 경제 발전을 지속하자 세계는 중국을 미국과 함께 ‘G2’라고 부르는 분위기가 되었다. 최근에야 우리 정부가 확인한 사실이지만, 후진타오는 지난해 7월15일 소집된 중국 공산당 외교영도소조(外交領導小組) 회의에서 한반도 정책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외교영도소조는 중국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 태스크포스로, 후진타오 주석 겸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팀장으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 외교부장과 군 최고 실력자들이 모두 참석하는 태스크포스이다. 이름은 ‘소조(小組)’지만, 구성은 외교 관련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참석하는 태스크포스이다.

이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은 한반도 정책의 중대한 전환이었으며, 그 내용은 ‘조선 핵문제의 해결과 조선과의 선린 우호 관계를 분리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대북한 정책은 ‘북한 핵문제 해결이 우선이며, 문제 해결이 부진하면 북한과의 우호 관계의 손상을 각오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핵문제와 대북한 우호 관계의 분리 결정에 따라, 앞으로 ‘핵문제 해결과 대북한 우호를 동시에 추진한다’, 다시 말해 ‘북한과의 우호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유지한다’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또 그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 2008년 10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의 위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일단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로 한 이상 중국과 미국의 힘이 충돌하는 지점이 한반도가 되고 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 참가를 위해 방한한 베이징 대학 외교관계대학원 왕지쓰 원장을 비롯한 중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더 이상 한 배를 탄 동주공제(同舟共濟)의 관계가 아니라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관계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거꾸로 천안함 사건의 공격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해준 측면이 있다. 또한 두 사건에 나타난 중국의 똑같은 반응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제3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좀 더 분명한 사례를 제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정부가 제3의 한반도 정책 시대로 들어간 중국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느냐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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