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후계 구도에 이상 있나
  • 진희관│인제대학교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0.11.2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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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도발은 능력 과시 위한 ‘군사적 모험주의’의 발로…과거에 비해 권력 세습 여건 취약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과 김정은(왼쪽에서 여섯번째)이 지난 11월8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

 북한은 지난 9월28일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해 최고 지도 기관을 인선하고 김정은 중심의 후계 구도를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다. 이것은 사실상 후계자 김정은을 위한 대회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은 당과 군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어 당 내부에서 이미 ‘혁명의 수뇌부’에 포함되었음을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러나 최근 일부 외신 보도는, 평양 한복판에 김정일 부자를 비난하는 전단이 나붙었다고 전한다. 아울러 후계 구도에 대한 내부 불안 요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11월23일 서해 연평도에 대한 북한 포격 도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후계 구도의 불안정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도발은 후계자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내부 경쟁 등으로 인한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20대의 어린 후계자가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장악력을 과시하기 위한 ‘군사적 모험주의’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아직까지는 후계자로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의 취약성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선 후계자로서 김정은이 적절한 연령인가의 문제이다. 그는 현재 27세로 아직 어린 나이이다. 이는 과거 김정일로 승계가 이루어진 시점인 1974년의 경우와 비교해서 본다면, 당시 김정일은 32세였으며, 고교 졸업과 동시에 이미 현지 지도를 시작했던 사실에 비추어볼 때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둘째, 체제를 이끌어나갈 만한 경험과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김정일은 후계자가 된 직후 3대 혁명 소조 운동과 주체사상 체계화 작업을 주도했다고 평가된 바 있다. 특히 3대 혁명 소조 운동은 전국적 범위의 조직을 가지고 있어 김정일의 권력을 보장하는 중요한 기제로 활용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김정은 후계자 구도에서는 북한에서 아직 이러한 전 사회적 운동들이 나타난다고 볼 수 없다. 2009년 ‘1백50일 운동’ ‘100일 운동’이 있었지만, 전 사회적인 운동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김정은이 전 사회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 운동을 주도해나가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셋째, 과거 김정일은 이른바 ‘수령’의 사상이라는 주체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앞장섰으며, 따라서 김정은 역시 후계자로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선군 사상을 체계화하는가의 문제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군 사상에 대한 체계화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로 ‘선군 사상’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론화 작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은 과거 주체사상과 같이 전일적인 체계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2003년 12월과 2004년 12월의 북한의 문헌에서 중대한 차이를 보인 바 있는데, 한때 선군 사상의 창시자 논란이 존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즉 창시자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바뀌었다가, 1년 만에 다시 김일성으로 바뀌는 기현상을 보인 바 있다. 이와 같은 혼란 이후 오늘날에 와서 해소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김일성의 주체사상 총서와 같은 이론화 작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즉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이상 선군 사상에 대한 논리 구조 역시 체계화되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넷째,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과거 김정일의 후계자 옹립 시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대단히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1970년대의 경우, 북한의 경제는 남한보다 뒤떨어졌지만 1인당 소득에서 큰 차이가 없었고, 사회주의 진영 간의 협력이 강고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형편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김정일 이후 후계자는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부담을 함께 가지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앞서의 취약점들을 만회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연평도 도발이 자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포병 병과를 전공하고 졸업 논문을 작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지난해 공개된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문건에서도 ‘포병의 귀재’로 선전되고 있어서 이 부문에서의 모험주의적 행위가 예고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승계’ 속도 내는 과정에서 도발 이어질 수도

▲ 지난 10월11일 평양 시내에서 거리를 걷는 북한 주민들. ⓒ연합뉴스

이러한 문제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9월28일 3차 당대표자회 이후 김정은에 대한 후계자로서의 모습을 공개하고 신격화하는 모습을 추진해나가는 형태로 보아 현재까지 후계 구도에서 특별한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일부 내각 간부들에게 김정은의 초상화를 걸도록 칼라 초상화를 배포했다고 하며,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새 살림집을 방문해 집들이 선물을 전하는 모습도 TV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는 후계자에 대한 ‘전 인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상징 조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직 첩보 수준이지만 한 대북 단체가 최근, 김정은의 주도로 전국에서 간부층에 대한 비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에 대한 적절한 조화를 발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10월9일 평양에서 진행된 당 창건 65주년 중앙보고대회 참가 인사로 김정일을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4인 바로 다음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이 언급된 바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각 부서의 대표적 인물이라 한다면, 그 다음 권력 서열이 김정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실상 김정일 다음 서열임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1월6일 조명록 사망 직후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는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하며 위원 첫 자리에 김정은을 언급했고, 다음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김영남·최영림·리영호를 차례로 언급한 바 있다. 명실상부한 후계자이며 2인자임을 확인시켜주는 표현이다. 

즉, 김정일 위원장이 생존하는 한 김정은 후계 구도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변동이 발생할 경우가 문제이다. 후계자 김정은에게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김정은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김일성 생전의 김정일 후계 구도 방식과 같이 군 최고사령관직의 이양을 먼저 서두를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곧이어 국가 기관인 국방위원장을 김정은에게 이양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즉 당에서는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국가 기관과 군을 통수할 수 있는 직책을 통해 김정일이 생존할 때까지 후계자로서의 권력을 장악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군사 분야에서의 승계에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군사적 모험주의’를 통해 군에 대한 지도력을 과시하려는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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