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불신 자초한 청와대·군의 딜레마
  • 유창선│시사평론가 ()
  • 승인 2010.11.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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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말 바꾸기로 혼선 빚고 남북 관계에 뾰족한 해법도 없어

 

▲ 11월25일 연평도에서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가운데)이 군 관계자들과 함께 포격에 무너진 집들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월23일 있었던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까지 무차별 포격을 한 북측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의 위험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을 놀라게 한 또 하나는 우리 정부와 군의 속수무책식 대응이었다. 보수 정부는 안보에 강할 것이라는 통념은 이번 연평도 포격을 겪으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안보 불감증을 비판해왔지만, 정작 안보 무능을 드러낸 것은 자신이 되고 말았다.

연평도 포격 대응을 둘러싼 혼선은 먼저 청와대에서부터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 여부를 둘러싼 혼선이 그것이었다. 북한의 포격이 시작된 지 한 시간가량 지난 시간에 청와대는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발언을 전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잠시 후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다시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수정되었다. 처음에 소개된 발언에 비해 ‘단호한 대응’에 무게가 실려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홍상표 홍보수석은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라는 발언은 와전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라며 언론에 소개된 ‘확전 자제’ 발언을 모두 부인하고 나섰다.

그 이후 이대통령의 발언은 강경으로 급선회했다. 이대통령은 그날 저녁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백 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이다. 추가 도발에 대해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라는 초강경 발언을 내놓았다. 이미 이대통령은 지하 벙커에서의 지휘를 통해 “경우에 따라서는 해안포 부근의 북한 미사일 기지를 타격해도 좋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던 것으로 소개되었다.

2012년 대선 정국에까지 영향 미칠 수도

김태영 국방부장관도 국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최초 지시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라고 답변했다가, 오후에는 “대통령이 확전을 막아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확전 방지라는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했다”라고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함께 보였다. 청와대와 정부의 이같은 말 바꾸기는 정부와 군의 초기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보수층의 정서를 감안해 발언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된 대통령의 초기 발언과 이후 발언이 ‘확전 자제’와 ‘확전 불사’를 오갈 정도로 전혀 방향이 다른 것이어서 군과 국민의 인식에 혼란을 심어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발 혼선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후에 드러난 K-9 자주포 고장의 실상 그리고 이에 대한 군 당국의 말 바꾸기야말로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북한의 포격이 있었던 초기에, 우리 군의 유일한 대응 수단이었던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이 작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북의 포격이 시작되었을 때 작전 대기 중이던 2문이 갑자기 전자회로 장애를 일으켜 작동이 안 되었고, 훈련 중이던 1문에 불발탄이 끼면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1차 대응 사격을 할 때에는 K-9 자주포의 절반만이 작동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군의 해명이 시종 오락가락하며 말 바꾸기를 계속해 논란을 확대시켰다. 군은 처음에는 자주포 6문으로 대응했다고 발표했다가, 다음 날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국회 답변에서는 4문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다시 다음 날에는 3문만 작동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설명 때 계속 말 바꾸기를 해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던 군 당국이 이번에도 말 바꾸기를 계속함으로써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북한의 포격 당시 대포병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포탄이 날아오는 지점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1차 포격에 대한 우리의 대응 사격은 북측이 포격을 가한 개머리 진지가 아니라 미리 입력되어 있던 무도로 향해 있어 엉뚱한 곳을 향해 대응 사격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니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이 총체적 부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6개월 전에 낸 사표를 수리하는 형식으로 그를 전격 교체하며 김병기 청와대 국방비서관도 함께 교체한 것도 청와대와 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있으면 국민들 사이에서의 내부적 단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정부는 적지 않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연평도 포격 사태는 그동안의 모든 정치적 논란거리를 일거에 수면 아래로 잠기게 만들었다. 4대강 예산을 둘러싼 공방, 민간인 불법 사찰의 실상, 청와대 대포폰 논란 같은 사안들이 모두 잠복해버렸다. 야당은 즉시 장외 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로 복귀했다. 표면적으로는 안보 정국이 조성됨에 따라 4대강 예산 문제를 비롯한 정국 현안들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주도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번 천안함 침몰 이후의 결과가 그러했듯이, 안보 정국이 무조건적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군의 미숙한 대응과 말 바꾸기에서 기인한 국민의 불신이 오히려 정부나 여당의 국정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이대통령이 막상 국민을 납득시킬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도 한계이다. 이대통령은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남북 상호 간의 궤멸적 피해를 낳을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을 향해 근본적인 대화의 얘기를 꺼낼 의사는 없는 것이 청와대의 분위기이다. 결국은 남북 간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기약 없이 지속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서해상에서 다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의 장기화는 국민의 피로감을 낳을 것이고, 안보 불안과 전쟁 불안 심리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청와대가 안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 채 남북 관계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는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길게 보면 2012년 대선 정국의 분위기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남북 간 충돌에 따른 안보 정국이 여권의 주도력을 확보해준다는 통념을 깨고, 안보 불안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질 경우에는 오히려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연평도 교전에 따른 정국의 전개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여러 가지로 유동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의 복원을 통한 한반도 평화의 재구축이라는 근본적인 해법 없이,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의지만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며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이런 고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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