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개혁·철벽 안보’ 계기로 삼아라
  • 성병욱 | 중앙일보 주필 ()
  • 승인 2010.12.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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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으로 우리의 허술한 군사 안보 태세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북이 해안포와 방사포로 민간 거주지까지 1백70여 발의 포탄을 퍼부었는데도 우리 군은 K-9 자주포 3문으로 겨우 80발을 대응 포격하는 데 그쳤다. 북의 해안포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공군 최정예 F-15K 편대가 출격했지만 반격에는 나서지 않았다.

평화 시에 대한민국 영토가, 그것도 민간 거주지까지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국토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켜야 할 군과 정부는 무력했다. 소극적인 교전규칙 때문이라는 변명이지만 허술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미 지난 8월, 군이 서해 5도에 대한 북 해안포대 사격 준비 명령을 감청하고도 의례적인 위협 정도로 안이하게 흘려버렸다. 천안함 격침에 이어 북의 상륙전 훈련, 해안포 사격 준비 명령이 파악되었으면 긴장하고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기초 상식인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북이 서해 5도 대안(對岸) 절벽을 파 1천여 문의 해안포를 배치하고 위협을 강화하는데도, 이에 대응할 우리 장사정포는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한 K-9 자주포 12문이 전부였다. K-9 자주포는 성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동굴 속 해안포를 공격할 수 없는 곡사포이다. 해안포 공격을 받고도 주변 군사 시설을 때릴 뿐 원 공격 지점을 타격하지 못하는 원천적 한계를 지녔다.

이렇게 이 지역의 남북 간 화력 격차가 큰 데다 그나마 연평도에 배치되어 있던 6문의 K-9 자주포 가운데 3문은 꼭 써야 할 때 작동 불능이었다. 적의 탄도를 측정하는 포병 레이더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낡거나 정비 불량이라는 얘기이다. 포격 직후에 있은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이 있었느니, 잘못 전해진 것이니 하는 혼선도 국민에게는 총체적 대응 체제 부실로 비쳤다.

이러한 초기 대응 부실을 덮기라도 하려는 듯 뒤늦게 교전규칙의 공세적 개정, 서해 5도의 요새화 및 무기·병력 강화, 도발시 강력 반격 등 강경 대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적의 공격에 즉각 반격을 가하는 것은 무력 행사를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유엔 헌장도 허용하는 정당방위권(자위권)의 행사이다. 자위권 행사로 인정을 받으려면 공격과 반격이 시간적으로 연결성을 지녀야 한다. 게다가 적의 도발 의지를 꺾기 위해서는 더 큰 반격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태세는 북한의 어떤 무력 공격에 대해서도 즉각 그 이상의 타격을 가해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의 교전규칙, 병력, 무기 체계, 정보력 등 정신·물질적 안보 태세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점은 북의 공격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서해 5도도 마찬가지다. 포격이든 상륙전 시도든 그 어떤 북의 공격에도 그 이상의 반격을 가하거나 격퇴할 수 있는 방어 진지와 병력, 무기 체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갖추고 배치해야 할지 고심해야 한다. 좁은 섬에 필요한 모든 병력과 무기를 전개하기 어려운 점은 육·해·공 합동 방어 전략으로 메우면 될 것이다.

연평도 피격에 대한 분노와 자책과 흥분을 군 개혁과 대북 방어 태세 정비로 승화시키는 지혜와 냉철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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