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앞날 비췄던 ‘고대 조선’ 바로 알기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쉽게 풀어쓴, 일제 강점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 연구서

 

▲ 조선상고사|신채오 지음|이성길 엮음|북북서 펴냄|596쪽|1만9천800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국민을 주눅 들게 만들고 있다. 북한을 민족의 반쪽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주적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문제도 부각된다. 한반도를 떠나 살고 싶다는 부류들도 다시 고개를 든다. 청소년들에게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전쟁을 들먹이며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괴뢰군”을 선창해야 할까?

우리 고대사를 들춰보자.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후삼국, 고려…. 숱한 전투를 벌이고, 통일하고, 또 분열했던 역사를 들여다보자. 그 역사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보다는 독립운동가로 더 널리 알려진 단재 신채호 선생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1910년대, 그 혹독한 시기에 우리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최근 신채호 선생이 남긴 역사서 <조선상고사>를 쉽게 풀어쓴 책 중에, 단재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역사를 연구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본에 우리의 강토와 주권, 나라 안의 물자마저 모두 내주었지만 국민들의 정신만 올곧게 서 있으면 언제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만이 국민들의 주체성과 정신을 올곧게 지켜 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역사서다운 역사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 역사의 현실은 암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유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역사가들이 기록해 놓은 역사는 우리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서를 참조하고, 그들의 뜻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깎아내기를 밥 먹듯 하였으니 그것이 어찌 우리 역사이겠는가.’

고대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우리 고대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탄식했다. “나중에 일어난 왕조가 앞의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 질러 없애버리기를 위주로 하니, 신라가 흥하매 고구려, 백제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고, 고려가 일어서매 신라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으며, 이씨 조선이 들어서매 고려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다. 이처럼 현재로써 과거를 계속하려 아니하고 번번이 말살하려고만 하였으니 역사에 쓰일 재료가 빈약해진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나약하게 탄식만 하며 앉아 있지는 않았다. 만주 대륙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틈틈이 고대 조선의 문화 유적을 답사하고, 장구한 계획 아래 방대한 사서를 탐독하고 연구한 끝에 <조선상고사>를 엮어냈다.

“역사란 아(나)와 비아(나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투쟁이 공간적·시간적으로 확대 발전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당면한 시국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에 관한 정의가 귀에 번쩍할 만하지 않은가. 신채호 선생은 이런 정의에 기초해 조선 민족 전체를 ‘아’의 범위에 놓고 초기 국가 성립 단계에서부터 ‘비아’에 해당하는 주변 국가, 특히 중국과의 갈등과 투쟁 과정을 <조선상고사>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역사를 읽다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를테면 명분과 의리를 따지느라 비뚤어진 왕을 제지하지 못하다가 멸망에 이른 백제의 역사는 정치에 무관심한 백성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북한과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하는 지금, 주변국들과의 관계 등 풀어가야 할 문제들에 대한 답을 고대사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 지식공간 제공

올해 농업인의 날에 경북 칠곡군 기산면 죽전리 농업회사법인 (주)송광매원이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지난 2000년부터 매실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연간 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매실 산업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포상 이유였다. 

송광매원이 그렇게 되기까지 한 ‘귀농인’의 열정 또한 화제에 올랐다. 서명선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엮어 <귀농 경영>(지식공간 펴냄)을 펴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귀농 교과서’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전국에 귀농 붐이 일었다. 잠시 소강 상태에 빠졌던 귀농은 2005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 4천80가구가 농촌으로 내려가는 등 귀농 인구는 2년마다 2배씩 늘고 있다고 한다. 서대표도 외환위기 때 잘 다니던 대구 일간지 회사를 그만둔 뒤 일식당을 차려 운영하다가, 2000년 홀연 ‘매실 장아찌’를 만들어보겠다며 경북 칠곡군으로 귀농했다.

그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토종 매실의 재배·가공에 도전해 2년여 만에 결실을 맺어 농림부 신지식인 144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귀농 10년 동안 그는 흩어져 있는 농촌 자원인 자금·기술·인력을 한데 묶는 농부 리더로서 살아왔다. 그 결과 계약 재배 농가 80여 곳을 이끄는 매실연구회의 수장이 되었다. 서대표는 성공 귀농의 조건으로 ‘경영 마인드’를 꼽는다. 그에게 농사는 1차 산업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의 재래 농업이 아니라 가공, 유통 및 관광 산업을 아우르는 농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6차 산업(1차 재배 ×2차 가공×3차 유통·관광)으로서의 농업이다. 그는 각개 전투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현재의 귀농을 조직화해 사회적 공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귀농을 안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업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