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기업 사냥 나선 조폭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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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사채업·부동산 뛰어들었다가 활동 무대 더 넓혀…인수한 회사 자금 쌈짓돈처럼 쓰는 등 물의

조직폭력(조폭)의 ‘무한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수사 기관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조폭의 주무대는 뒷골목이었다. 유흥업소나 도박장 운영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감지되었다. 조폭들이 사채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일 때는 재개발이나 건설 시행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조폭 본색’은 바뀌지 않았다. 계파 간 이권을 둘러싼 난투극이 끊이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으면 폭행이나 협박, 납치도 서슴지 않았다.

최근 조폭이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업체를 노린 ‘기업 사냥꾼’이 그것이다. 이들은 주로 사채를 통해 인수 자금을 조달한다. 이후 회사 자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쓰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일부는 주가 조작에도 개입해 관련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상당수 코스닥 기업에 조폭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한 코스닥 상장 기업의 대표는 “조폭을 낀 사채 자금은 코스닥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영권이 자주 바뀌는 기업에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잘못 들어갔다가는 깡통을 찰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honeypapa@naver.com

 검찰도 그동안 ‘화이트칼라’형 조폭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왔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지난 11월18일 조폭 출신 기업 사냥꾼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ㅅ사를 인수한 뒤, 거액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이다. 검찰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모두 잠적한 상태이다. 수사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피인수 회사의 주가 조작에도 가담했다. 주가가 오르지 않자 작전 세력뿐 아니라 브로커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해당 사건이 드러난 계기는 지난 200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가 전 사주인 김 아무개씨에게 1백50억원을 빌려준 것이 회계 감사에서 드러났다. 회계사는 대여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감사 의견을 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광주 콜박스파 조직원인 윤 아무개씨가 등장한다. 윤씨는 사채를 통해 1백50억원을 조달한 후, 김씨에게 경영권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 윤씨는 경영권을 넘겨받자마자 회사 자금을 빼내 사채 원금과 이자를 갚았다. 작전 세력과 함께 주가 조작에도 나섰다. ㅅ사는 지난 2009년을 전후로 대규모 유상 증자를 단행했다. 콜박스파 조직원이었던 염 아무개씨와 장 아무개씨는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믿고 유상 증자에 참여했다. 하지만 주가가 하락하자 작전 세력뿐 아니라 작전 브로커를 상대로 폭행과 협박을 계속했다.  

 조폭은 지능화하는데 검찰은 피하는 모양새

이 과정에서 수십억 원을 빼앗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지난 2009년 5월쯤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행사하면서 낸 1백10억원 역시 가장 납입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회사가 조폭들의 놀이터로 변질되면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한때 이 회사는 알짜배기 중·소형주로 주요 증권사의 추천을 받았다. 자회사인 ㄱ사가 유명 제약사 인수에 나서면서 관련주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회사 대표가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황우석 박사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황박사의 줄기세포 관련 화장품이나 의약품 판매에 나설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모회사인 ㅅ사가 지난 3월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ㅅ사는 물론이고, 자회사들도 현재 전화가 끊긴 상태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폭이 가담한 코스닥 경영진의 전형적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사건이다. 전 사주인 김 아무개씨와 김제 읍내파 조직원 이 아무개씨도 지난 11월11일 구속 기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특히 현재 수배가 내려진 광주 콜박스파의 경우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검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이들은 공인회계사와 함께 비상장 회사의 가치를 부풀린 뒤, 주식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상장 기업을 잇달아 집어삼켰다. 회사 인수 과정에서 불만이 나오면 힘으로 잠재우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은 횡령한 돈 가운데 일부가 조폭 자금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대부업이나 건설 시행업, 코스닥 기업 등 조폭의 자금원이 다원화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폭력 조직 수는 1백99개에서 2백23개로 약 12% 증가했다. 조직원 수는 4천1백53명에서 5천4백50명으로 30% 많아졌다. 하지만 단속 건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1년 2천4백35건에서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2천1백60건을 기록했다. 구속 건수는 2001년 1천3백48건에서 지난해에는 그 절반도 안 되는 6백4건을 기록했다. 이주영 의원은 11월30일 “조폭의 수법은 점차 지능화되고 있는데도 검찰은 통계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조폭들의 서식 환경이 바뀐 만큼 검찰도 단속 환경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드러난 조폭의 코스닥 기업 인수 수법을 보면 웬만한 기업인을 능가한다. 검찰은 지난 6월에도 무자본으로 코스닥 기업을 인수한 후, 회사 자금을 횡령한 범서방파 조직원 5명을 단속했다. 이들은 인수한 회사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자, 사채 자금을 유상 증자 자금으로 가장 납입했다. 이후 44억원을 빼내 주가 조작에 사용했다.

화려한 배경도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조폭과 연계된 사채업자들을 구속 기소했다가, 이틀만에 보석으로 석방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검찰 및 법원 고위 간부 출신으로 변호인을 구성한 데 따른 ‘전관예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회사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변호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도박이나 e스포츠의 승부 조작에도 조폭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조폭을 낀 대부업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대부업 관련 사건 접수 건수는 지난 2005년 9백4건에서 2007년 4천9백86건으로 2년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매년 두 배 가까이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1만8천5백18건이 검찰에 접수되었다. 검찰은 그동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단속 강화를 밝혀왔다. 불법 사금융 및 청부 폭력 전담 수사팀이 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한 전국 7대 지방검찰청에서 조폭 수사를 전담하는 검사는 2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방검찰청 및 지청은 사실상 조폭 수사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조폭 전담부와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경찰과의 공조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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