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2천억원의 정체는?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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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현대그룹의 대출금 등에 의혹 제기…채권단도 자금 출처 밝히라고 요구

 

점입가경이다. 현대건설 인수를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법정 공방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인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엇박자 행보를 보이면서 정책금융공사 배후에 정부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는 시간이 갈수록 압박 수위를 높여 현대건설 인수 양해각서(MOU)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이 선정된 지 보름이 지났지만, 갖가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는 양상이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1조2천억원에 있다.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이틀이 지나자 이 자금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채권단은 회의를 열어 현대그룹에 나티시스 은행 예금에 대한 자금 출처 증빙 자료를 보완해 제출할 것을 요청했지만 현대그룹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 와중에 채권단 주관 기관인 외환은행이 지난 11월29일, 단독으로 현대그룹과 MOU를 체결하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논란이 확산했다. 이날 오후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외환은행의 단독 행보에 대해 맹비난했다. 그러자 현대차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고, 시간이 갈수록 압박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자금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티시스 은행에 메일을 보내 현대상선의 프랑스 법인에 1조2천억원을 무담보로 빌려준 이유를 물었다. 현대상선의 프랑스법인은 총자산이 지난해 기준 33억원밖에 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에 불과하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이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이거나 투기자본의 투자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티시스 은행은 메일을 확인했지만 답변은 보내오지 않았다. 직접 현지로 전화해 재차 이유를 물었다. 나티시스 은행 직원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는 “현대상선 대출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나티시스 은행 한국지사에도 전화를 걸어 지사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현재로서 현대그룹이 직접 자금 실체를 증빙하지 않고서는 의혹을 밝힐 수 없어 보인다.

▲ 프랑스 파리에 있는 나티시스 은행. ⓒ로이터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 12월3일, 대출확인서를 제출했다. 채권단은 대출계약서와 부속 서류를 5영업일 이내(12월 7일)로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한 상태이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요구가 이례적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김홍인 현대그룹 홍보부장은 “시장의 관심이 지나치다. 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는 사상 그 유례가 없고 통상 관례에 완전히 벗어난 요구이다”라며 대출계약서를 제출할 용의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은 다르다. 기업 M&A 전문 변호사로 법무법인 세종 소속인 송창현 변호사는 “인수 자금의 출처를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에도 자금 출처와 관련된 자료를 제출했다”라고 말했다. 인수 자금 지급 능력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때나 MOU 체결 시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채권단이 자금 출처를 밝히라고 한다면 밝히는 것이 상식적인 대처라는 설명이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제출한 대출확인서 수용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채권단 입장은 오는 4일이나 늦으면 6일쯤 나올 전망이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MOU 체결을 파기하고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인수 협의에 들어간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요구가 합당한지 법률적인 자문을 요청해둔 상태이다. 현대그룹은 이번 인수전에서 유독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김홍인 현대그룹 홍보부장은 “MOU 규정에는 5영업일 내와 추가 5영업일 내에 대출계약서와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MOU를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현대차, “대출확인서는 효력 없다” 주장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제출한 대출확인서는 ‘효력이 없다’며 MOU 체결은 원천 무효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입찰 참여자로서 지켜야할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자 자격을 박탈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이행 보증금 2천7백55억원을 주관 매각사에 낸 상태이다. 현대그룹이 자금 출처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MOU가 파기될 경우에는 이 자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 외환은행의 발표이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무모한 도전에 불과했는지,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현대그룹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진흙탕 싸움에 소송도 불사한 현대그룹-현대차 맞고소 공방 내막

현대차와 현대그룹 간의 진흙탕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진다. 명예훼손죄로 맞고소한 것에 이어 양해각서(MOU) 체결 효력 여부까지 법정에서 다툴 수 있어 법정 공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 다툼은 언론 보도로 촉발되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이틀이 지난 11월18일, 현대그룹 인수 자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11월24일에는 현대차 관계자 멘트가 인용된 보도가 나오자 뒷날 현대그룹은 현대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차가 근거 없는 의혹들을 언론과 정·관계에 퍼뜨렸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불사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5일 뒤인 11월30일, 현대차는 맞고소로 응수했다.

다음 날인 12월1일, 기자가 현대그룹을 찾아가 맞고소를 하게 된 정황에 대해 묻자 공식적인 답변이 이전과 달랐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가 입찰 규정을 어기고 이의 제기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그룹 김홍인 홍보부장은 “입찰 규정을 보면 입찰 참가자나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인수 자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채권단에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자금 출처를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소송 제기 이유를 밝혔다. 언론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현대그룹은 일단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이의 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낼 계획이다. 또한 앞선 소송과 별개로 입찰 방해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채권단과 주간사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현대차는 외환은행이 정책금융공사와 외환은해ㅇ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진행된 MOU 체결이 법적 효력을 가지는지 따져 묻는 동시에 외환은행의 법적 책임을 묻는 민형사상 조치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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