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처리 방안 고를 수 있게…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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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보완 작업, 사회적 요구에 못 미쳐…상속 가능한 콘텐츠 범위가 최대 쟁점

디지털 유산이 현실에 맞게 집행되려면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현행법으로는 유산의 범위와 상속의 대상 등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보통신 서비스 사업자와 유족 간에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유족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맞설 경우 이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사안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행법은 서비스 제공자가 제3자에게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개인정보의 취급을 위탁하는 경우에는 이용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또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지난 3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이후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보에 대한 접근을 허용해달라는 요청을 하자, 이러한 현행법의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유족이라 할지라도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엄격히 따져 불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이해와는 괴리감이 있는 셈이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논란을 계기로 법적 보완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현재 국회에 올라온 디지털 유산 관련 법안은 세 개이다. 모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했다.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유기준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서비스 제공자는 상속인의 요청에 따라 사망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목록을 제공하도록 하고, 상속인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사망자 개인정보를 파기하거나 필요한 보호 조치 등을 하도록 했다.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지난 10월13일 건국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디지털 유산과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제공

홈피 운영하게 해도 계정 상속에는 ‘부정적’

박대해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좀 더 구체적이다. 이용자가 사망한 경우 이용자의 배우자, 2촌 이내의 친족 또는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자 등이 개인정보 보호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사망자의 미니홈피 또는 블로그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제한을 두었다. 타인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일부만을 관리하게 할 수 있고, 배우자 등이 사망자의 미니홈피 등을 관리하는 경우 그 사실을 알기 쉽게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금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이용자가 사망하는 경우 대법원장이 사망신고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서비스 제공자에게 이용자의 성명 및 주민등록번호를 통보하도록 했다. 이 통보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는 배우자 등이 관리할 수 있도록 요청한 블로그 또는 홈페이지 등을 제외한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파기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목적은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개인정보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만큼 관련법의 개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법안들이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속의 범위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고, 또 소극적으로 적용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디지털 유산과 관련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 유산의 범위와 승계 대상 그리고 재산권의 인정 여부이다. 이 중에서 유산 승계의 대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기존의 유산 상속과 같은 원칙을 지켜나가면 된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족이 권리 행사를 요구해 왔는데, 법적으로 상속인을 명확하게 규정해둔다면 특별히 문제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 지난 4월9일 천안함 사망 장병들의 임시 빈소가 마련된 여의도 국회광장에서 한 시민이 헌화·분향하고 있다. 유족들은 희생 장병들의 미니홈피 등을 사용할 수 있게 정보 접근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재산권의 경우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의 재산적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은 남아 있다. 개인이 인터넷 공간에서 생산하는 콘텐츠의 경우 저작권을 비롯해 세부적인 계약 관계 등도 검토를 해야 한다.

최대 쟁점은 디지털 유산의 범위이다. 고인이 남긴 디지털 정보 가운데에서 상속할 수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의 문제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 일반적인 게시물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지 않다. 유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고 사망자의 서비스 계정(ID와 비밀번호)을 유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행위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사이버 공간에서 계정 정보는 그 행위자의 인격을 표상한다. 그런 만큼 사망자의 홈페이지를 상속받아 운영할 수는 있지만, 인격과 지위까지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권헌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계정 관리권을 상속하는 것과 계정 자체를 상속하는 것은 다르다. 상속인이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인을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논쟁이 치열한 지점은 이메일이나 디지털 일기 등 좀 더 사적인 정보를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유산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측은 이메일 등이 개인의 비밀을 담고 있어 타인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이메일이나 디지털 일기가 기존에 상속이 되고 있는 편지나 일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유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제시해 사업자 이끌어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해결책이 있다. 이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본인이 사망하면 블로그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메일은 아예 폐쇄를 할 것인지, 수익을 거두어온 콘텐츠는 누구에게 상속할 것인지 등을 스스로 결정해 놓고 이에 맞추어 상속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법적 보완에 나선 국회만큼이나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법률을 개정해 원칙을 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업체가 자율 규약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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