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지배’에 강력한 철퇴 내려라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0.12.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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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의 ‘매 값’ 사건은 비틀린 사회의 한 단면…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 보여주어야

 

▲ M&M 전 대표 최철원씨가 12월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1972년 영화 <대부>는 폐쇄된 조직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피아의 두목 돈 비토 콜리오네는 멋진 인물로 등장하며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놀라운 마술을 부렸다. 평생 조직 범죄를 저지른 비토 콜리오네는 위엄 있는 아버지이자 조직을 이끄는 신성한 지도자처럼 만들어진다. 영화에는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매매에 끌려간 여자도 없고, 마약과 도박으로 집안을 망친 사람도 없다. 사기, 강매, 협박으로 재산을 뺏긴 선량한 시민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부패한 경찰관만 등장할 뿐이다.

2010년 11월 MBC <시사매거진 2580>은 한 재벌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최철원 전 M&M 대표가 50대 운수노동자를 폭행한 사건이다. 그는 재벌 2세이다. MBC가 보도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최 전 대표는 “한 대에 100만원이다”라며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내리쳤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매 값 2천만원과 탱크로리 차 값 5천만원 등 총 7천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의 주위에서는 회사 직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혀 다른 규범을 가지고 사는 그들

마피아 두목과 재벌 2세는 완전히 다르다. 마피아는 암흑가의 왕자이지만, 재벌 2세는 비즈니스 세계의 왕자이다. 반면에 이번 폭행 사건을 보면 두 사람 모두 폐쇄된 세계에 갇혀 있다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들은 세상과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다. 상식과 다른 행동을 하고도 전혀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차원의 접근법은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유아기부터 공격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접근법은 개인의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인성이 파괴되었다고 진단한다. 때로는 뇌 호르몬과 전두엽의 이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선천적으로 충동적 본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대화와 타협을 선택하기보다 폭력을 쉽게 사용한다.

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나오는 주인처럼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은 다 누릴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사회적 차원의 접근법은 폐쇄된 조직이 전혀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미국 사회학자 알버트 코헨은 학교의 갱 조직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갱에 가담한 학생들이 갱 집단 내부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학교 규칙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자신들만의 규범을 만들어 전달하는 행위를 관찰했다. 이에 따라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도 자신들의 폐쇄적 조직에서는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인다. 

폐쇄된 세계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법적 행동을 뉘우치기보다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범죄 조직에서 배신자는 응징해야 하는 상대이고, 복수를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다. 재벌 2세가 매를 때리고 돈을 준 황당한 사건은 ‘돈이면 뭐든지 된다’라는 극단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옆에 서서 구경한 직원들은 어떤 인정을 받을까? 사실 재벌 회장들은 불법 비리로 수사를 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사회의 상식으로 통할 정도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돈의 위력이 강하다. 올해 2월 로이터 통신과 입소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69%가 성공 요소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꼽았다. 한국이 세계 1위이다. 반면에 네덜란드 20%, 스웨덴 28%, 캐나다 27%, 프랑스 32%의 응답자들이 돈이 성공 요소라고 보았다. 미국에서도 33%에 불과했다. 세계 평균은 43%이다. 이쯤 되면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최근 TV 드라마의 80%에 재벌 2세가 등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아예 <재벌 2세>라는 드라마도 등장했다. 재벌 2세가 등장해야 드라마가 인기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가난한 집안의 젊은 여자가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넘어 종교적 신화가 되었다. 돈에 의해 구원을 받고 부자가 메시아가 되고 재벌 2세의 사랑은 신의 은총에 가깝다. 이러한 허구는 대중 매체를 통해 가상 현실이 되고 대중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힌다.

물론 돈은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돈이 곧 성공의 척도가 되고, 돈이면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 살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연한다면, 그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돈을 위해서 사람을 속이고 규범을 무시한다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돈을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심지어 재산을 분배하지 않는다고 부모를 살해한 자식도 있다. 이제는 노동자에게 매질을 하고 2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뿌리는 일이 발생했다. 부자와 재벌을 숭배하는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금전만능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한국에서 기업의 사기, 횡령, 배임, 부정 회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은 낮다. 재벌 회장들이 부패와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도 ‘경제의 기여도’를 고려해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엄중하다. 2002년 분식회계로 처벌을 받은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전 최고경영자(CEO)는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엔론의 앤드루 패스토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도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돈과 권력 앞에 머리를 숙이는 사회는 민주공화국과 거리가 멀다.

재벌이 사회적 책임 외면하면…

기업의 성장은 수많은 노동자의 노력, 소비자의 선택, 도로와 항만 등 사회 기반 시설, 다양한 제도와 신뢰를 통해 이루어진다. 재벌의 성공은 단지 창업자 가족 또는 대주주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 경제에서 재벌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커진다. 만약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윤리적 기준을 무시한다면 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재벌 1세의 도전적 기업가 정신에 비해 재벌 2세는 그다지 경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벌 2세의 도덕적 해이가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와중에 재벌 2세의 충격적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재벌 기업 상품 불매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조폭을 능가하는 재벌 기업의 행태이다”라고 분노하며 “영화 <부당거래>를 보는 것 같다”라고 울분을 터뜨린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돈과 권력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야만적인 폭력 사건을 수사 당국과 사법 당국은 엄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이번 폭력 사건은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화물운송 특수 고용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이라도 운송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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