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CJ 수사 무마 시도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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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핵심 인사, “여권 핵심부에 청탁” 증언…CJ그룹측은 “사실 아니다” 주장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친구이자 후원자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다시 정국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천회장은 3개월 동안의 해외 도피 생활을 정리하고 11월30일 귀국했다. 이튿날인 12월1일 검찰에 출두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구속)에게서 세무조사 무마와 은행 대출금의 출자 전환 등에 관한 청탁을 받고 도움을 주는 대가로 40여 억원 상당의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1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30대 그룹 간담회에서 이재현 CJ 회장(가운데)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CJ 비자금 조성 의혹과 살인 청부 사건은…

천회장이 귀국하기 1주일 전인 지난 11월24일 기자는 ‘정무 분야’에 정통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를 만났다. 그는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천신일 회장이 귀국하면 검찰은 임천공업으로부터 받은 40여 억원에 대한 수사에 우선 집중할 것이다. 그런 다음 천회장과 연루된 ‘CJ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기자에게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가 언급한 ‘CJ 사건’은 다름 아닌 지난 2008년에 불거졌던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살인 청부 사건을 지칭한다. 당시 언론은 “천회장이 CJ그룹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다.

우선 ‘CJ 사건’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사건의 발단은 CJ그룹의 전 재무팀장이었던 이 아무개씨가 2006년 7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사채업자 박 아무개씨에게 매월 2?3%의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자금(비자금) 가운데 1백70억원을 대출해주면서 비롯되었다. 이씨가 박씨에게 빌려준 돈 가운데 일부를 돌려받지 못하자 조직폭력배를 시켜 박씨를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영화를 제작하는 CJ그룹 이회장이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비자금과 살인 청부 사건 등이 얽힌 ‘실화’에 등장했던 셈이다. 전 재무팀장 이씨는 그해 12월 구속 기소되었지만, 1년 후인 2009년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씨 등)이 살인 청부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살인 청부를 받았다는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렇게 재판은 끝났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씨가 이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해서 이회장 돈을 자기 마음대로 빌려줄 수 있었겠냐는 점이다. 이회장이 ‘살인 청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는지도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비자금의 규모와 출처가 어디인지도 불명확하다. 비자금 출처와 관련해 당시 이회장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의 장남이다.

비자금 규모, 4조5천억원으로 추정

▲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있는 CJ그룹 본사. ⓒ시사저널 박은숙

그렇다면 비자금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씨)은 ‘피고인이 관리하던 자금 규모가 수천억 원에 이른다’라고 진술했고, 피해자(이회장)의 차명 재산이 드러남으로써 차명 재산(비자금) 관련 세금만도 1천7백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납부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회장의 비자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갖가지 추측만 무성했다. 이와 관련해 앞에서 언급한 여권 핵심 인사는 “(2008년 초 삼성 특검을 통해) 삼성이 차명 계좌로 관리해 온 액수가 모두 4조5천억원인 것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이에 삼성은 1천5백억원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했다. 이를 감안했을 때 1천7백억원을 세금으로 낸 이회장은 4조5천억원 이상을 비자금으로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천문학적인 비자금과 살인 청부 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단돈’ 1천7백억원을 세금으로 내면서 마무리된 셈이다. 이 사건이 이렇게 축소된 과정에는 삼성가(家)와 가까운 천신일 회장이 개입되어 있다”라고 증언했다.

이재현 회장의 삼촌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천회장은 이미 알려진 대로 절친한 사이이다. 천회장이 1982년에 설립한 세중여행사가 그동안 삼성 임직원들의 국내외 출장 대행 업무를 독점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여권 핵심 인사는 “당시 사건이 터지자 이재현 회장이 천회장에게 검찰 수사를 무마시켜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천회장이 권력 핵심부에 ‘이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아달라’라고 청탁했던 것이다. 실제로 ‘약발’이 먹혔는지 이회장이 세금 1천7백억원만 내는 선에서 ‘엄청난 사건’의 뚜껑이 닫혔다”라고 말했다. ‘천회장의 검찰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CJ그룹 임원은 “그 당시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이회장의 비자금이 4천5백억원 이상이라는 추정’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모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라고만 했다.

한편 천회장이 ‘이재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무마 청탁’을 하는 과정에서 천회장과 검찰 간에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08년 CJ그룹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천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하면서 도와준 대가로 CJ그룹이 천회장 회사의 주식을 사주었다’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중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이재현 회장을 전격적으로 소환해 천회장과의 주식 거래 내역 등을 조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008년 4월 세중나모여행의 자회사인 세중DMS 지분 38만여 주를 CJ그룹 계열사인 엠넷미디어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CJ그룹측이 천회장측에 경제적 이익을 주었던 것이 아니냐고 검찰은 의심했다. 하지만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수부의 ‘모든 수사’는 중지되었다. 결국 CJ그룹과 천회장의 미심쩍은 주식 거래도 흐지부지되었다.

천회장측 “언론에 협조 못해”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에 오른 이인규 부장이 ‘CJ 사건’을 강하게 수사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천회장과 이부장은 앙숙이 되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이부장은 ‘외톨이’가 되었고, 그때 천회장은 여권 핵심부에 ‘당장 이인규의 사표를 받으라’라고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의혹은 ‘1천7백억원’ 세금 납부로, 살인 청부 사건은 ‘무죄’로 판결나면서 한 편의 영화는 막을 내렸다. 천회장의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천회장측의 입장을 듣고자 12월2일 세중나모여행의 천회장 비서실로 연락했다. 하지만 비서실 관계자는 기자의 질문도 듣지 않은 채 “(언론에) 협조 못 해드린다”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천회장의 변호인에게도 12월2일 전화를 걸었으나 12월3일 저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구속되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통령과 천회장은 고려대 61학번 동기이다. 천회장은 대선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 박희태 국회의장 등과 함께 이른바 ‘6인회’ 멤버로서 이명박 캠프의 최고 의사 결정 라인에 있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받은 40여 억원 문제와 지난해 증여세 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71억원을 선고받은 문제는 어디까지나 천회장 개인의 치부와 관련된 비리일 수 있다.

이보다는 향후 정국을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천회장과 여권 핵심부가 얽혀 있는 갖가지 의혹들이 더 주목된다. 우선 이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에 한나라당 특별당비 30억원을 천회장이 대신 납부했다는 의혹이다. 천회장은 이에 대해 이대통령이 자신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30억원을 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이 의혹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포스코 인사 개입설’도 현재 진행형이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천신일 회장이 (2009년) 1월10일 점심 무렵 (포스코 회장으로 유력했던) 윤석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명박 대통령이 (차기 회장은 정준양 사장으로) 결재했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며 포기를 종용했다”라고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이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 등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천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대책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상대로 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의 정점에 천회장이 서 있다. 천회장은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당시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15만 위안(약 2천5백만원)을 받았으나 법원은 천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11월2일 기자와 만났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박연차에게서 베이징올림픽 때 받은 돈 말고도 더 받았다고 추정되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해 수사를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더 진행되었다면 ‘천신일-박연차’ 커넥션이 더 드러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검찰의 칼끝이 여권 핵심부와 연루된 의혹들로 향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이다. 다만 검찰은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라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공신인 자신을 엄호해주지 않는 여권에 대한 불만 때문에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천회장이 ‘폭탄 발언’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현 정권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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