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 야구 선수들 내년 농사 준비는?
  • 정철우│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0.12.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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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팀 이적 또는 재계약 협상으로 진로 고민 많아

해외파 한국 선수들이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은 김태균(지바 롯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팀을 옮기거나 재계약 협상을 하는 중심에 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각 팀별로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또 그 구상에 따라 전력을 보강하는지 따져보는 것은 새로운 시즌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올겨울은 해외파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과연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내년 시즌, 어떤 유니폼과 어떤 대우를 받으며 뛰게 될까.

▲ 박찬호 선수가 지난 11월24일 귀국 기자회견을 갖고 시즌을 마감한 소감과 다음 시즌 계획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호는 해외파 선수들의 맏형이다. 현재 그의 신분은 자유계약 선수이다. 지난해 뉴욕 양키스를 거쳐 피츠버그에서 시즌을 끝낸 그는 이제 한 가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도전이냐, 마무리냐 하는 갈림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남겠다는 것은 도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에서 새 팀을 찾게 된다면, 그것은 서서히 ‘야구 선수 박찬호’의 인생을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박찬호는 일단 메이저리그에서 좀 더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 시즌 1백24승 기록을 세우며 동양인 메이저리거로서 최다승을 올렸다.

더 높이 올라가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그가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좀 더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이제 한 팀의 운명을 쥐고 흔들 만큼 역량 있는 선수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팀 구상의 큰 그림이 그려진 뒤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구상에 해당하는 선수이다. 박찬호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메이저리그 네 개팀이 관심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중간 계투로는 그가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추신수, 계약 조건만 남겨 놓고 ‘행복한 겨울’

올겨울 처음으로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갖추고 ‘행복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는 1년 계약을 할지, 다년 계약을 할지 등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현지에서는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 사정을 이유로 들어 1년 계약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추신수는 3백만~4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은퇴 상태였던 김병현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병현은 지난 11월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 이글스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현재로서는 ‘유보’가 가장 적당한 표현이다. 개인 훈련 외에는 공을 던져볼 기회를 얻지 못했던 김병현이다. 두 차례 테스트에서도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등 풍부하고 넓은 경험을 지니고 있는 선수인 만큼 지금 상태로도 계약까지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김병현은 좀 더 확실한 평가를 바라고 있다. 때문에 (양측 합의에 따라) 다시 한번 테스트를 받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현은 착실하게 준비를 마친 뒤 1월쯤 재점검을 받을 계획이다. 라쿠텐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만큼 1월 중에 좋은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이승엽, 오릭스로 이적해 재기 노려

이승엽은 한때 궁지에 몰리는 듯했다. 최근 2년간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린 탓이다. 요미우리에서는 일찌감치 퇴단 결정이 내려졌다. 팀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6억 엔의 몸값을 받던 이승엽에게 어느 정도를 제시해야 하는지, 또 많은 돈을 주며 영입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5천만 엔 수준의 기본 연봉 정도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미 많은 것을 보여준 뒤였다. 최근 입단이 거의 성사된 오릭스와 계약한 내용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오릭스는 이승엽에게 1억5천만 엔 수준의 연봉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확실한 성과가 있고, 즉시 쓸 수 있는 전력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외국인 선수들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이다. 특히 오릭스는 주포인 카브레라의 퇴단으로 거포 영입이 절실하다. 이승엽이 오릭스를 상대로 기대 이상의 든든한 몸값을 놓고 협상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오릭스 홈 구장인 오사카 교세라돔은 전형적인 타자 친화 구장이다. 몸값으로 자존심을 챙긴 만큼 이승엽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범호(소프트뱅크)는 일이 조금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당초 이범호를 퇴단 조치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보도도 양측의 이별을 예고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일단 이범호를 보류 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 연봉(1억 엔)을 모두 지급하고라도 방출하겠다는 방침에서는 한 발짝 물러선 결정이다. 그렇다고 이범호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츠다, 오티스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건재한 탓이다. 여기에 오릭스와 결별하는 카브레라도 소프트뱅크행이 유력하다.

이범호의 원 소속 구단인 한화는 그가 소프트뱅크에서 정식으로 방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소프트뱅크 내부 분위기는 ‘1억 엔의 연봉을 보장해주며 내보내기보다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변했다는 전언이다. 

ⓒ연합뉴스
임창용은 해외파 선수 가운데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미 야쿠르트와 3년 최대 15억 엔(약 2백10억원)이라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연봉만 해도 4억 엔에 이른다. 역대 야쿠르트 투수 최고액이다.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빅마켓 구단이 아니다. 한 선수에게 그처럼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임창용의 가치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실력과 운이 모두 따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임창용은 지난 2008년 야쿠르트에 입단한 뒤 평균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불펜 비중이 큰 야쿠르트에서 임창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여전히 1백50km를 훌쩍 넘기는 묵직한 직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슬라이더와 포크볼 등 다양한 변신 무기도 장착되어 있다. 야쿠르트는 임창용을 잡으며 마운드 운영 구상에 큰 틀을 마련했다.

주변 환경도 임창용의 대박 계약에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요미우리가 영입전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호재이다. 요미우리로서는 주전 마무리 크룬을 방출시킨 뒤 새 마무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임창용이 적격임은 물론이다. 실제 요미우리는 임창용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야쿠르트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야쿠르트가 바빠졌다. 야쿠르트는 최근 몇 년간 라미레스(외야수), 그레이싱어(투수) 등 특급 외국인 선수들을 요미우리에 빼앗겼다. 임창용마저 같은 길을 갈 경우 구단의 이미지 실추와 팬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기껏 좋은 선수 키워 요미우리 좋은 일만 시킨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뻔했다.

한때 요미우리 2중대로 불렸던 야쿠르트이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서지는 않았다. 구단이 할 수 있는 최고액을 베팅해 임창용 잡기에 성공했다. 임창용은 이번 계약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돈도 돈이지만 ‘의리를 지켜낸 사나이’라는 훈장은 앞으로 그의 일본 생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외국인 선수로는 드문, 은퇴식이나 연수 기회 등이 자연스럽게 주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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