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의 열매는 민주주의가 준 선물”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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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전쟁, 독재’라는 암흑기에서도 급성장한 한국 경제의 원동력 분석

 

▲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 경제사 /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정태헌 지음 / 역사비평사 펴냄 / 312쪽│1만4천원

대한제국 시기부터 외환위기를 맞고 되살아나기까지, 한 세기에 걸쳐 이 나라의 경제사에는 정말 질곡이 많았다. 그런데 그 경제의 역사를 거론할 때 정치인이나 기업의 총수를 들먹이며 그들과 관계된 사건들을 먼저 나열한다. 그러고는 잘잘못을 따지고 그들 덕에 잘살게 되었네, 힘들어졌네 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그렇게 논의하다 보면 소를 키워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던 농민이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해서 고향의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근로자들의 경제 활동은 그저 머슴살이한 것처럼 얕잡아 보게 된다.

게다가 소 판 돈으로 대학을 다닌 자식은 ‘경제사’ 공부를 한다며 자본주의 맹아론·수탈론·개발론·식민지반봉건사회론 등을 배워서는, 제 부모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 키운 노동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 경제사>는 100여 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경제사와 관련된 21개의 질문을 내놓고,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듯 일상용어를 사용해 의문을 풀어나갔다. 숫자들이 말하는 성장의 지표를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읽어내야 할 것인지, 골치 아픈 갖가지 ‘이론’들은 어떤 상식적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었는지 해설했다.

저자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근대’라는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한국사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마땅한 개념이 없으니 일단 ‘식민지적 근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는 근대와 조우한 구한말 조선 사회의 역동적 발전상을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잣대로 폄하하는 식민사관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피식민지로서 수탈을 겪으면서 이룬 개발, ‘주권국가 없는 자본주의’라는 모순과 비극의 역사를 직시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저자는 해방과 전쟁,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렵게 쟁취한 주권국가와 민주주의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고 외환위기를 헤쳐나오게 한 저력이었음을 강조했다. 소수 기득권층이 그 결실을 대부분 누릴지언정 현재의 부를 이루게 한 것은 경제 활동에 참여한 모든 국민의 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나라에서 지금 실현되어야 할 것을 ‘민주적인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 아래 아슬아슬 위기를 헤쳐나가는 대한민국이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조화 경제’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21세기 민족경제론은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보완적으로 설정하는 ‘조화 경제’의 철학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민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민주화의 내실이 채워져야 공동체도 시장도 살 수 있다. 빈곤을 대물림할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체념하는 인간군이 많아지면, 국민 경제의 안정과 장기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국가의 조정 역할 수행 여부는 아래로부터의 압력, 즉 우리 사회의 민주화 수준에 달려 있다. 보수적 집권 세력이 시장 만능론에 의해 삶을 위협당하는 저소득 계층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건강하고 민주적인 ‘주권국가’의 존재가 보통 사람들의 노동이 경제 성장의 과실로 열매 맺고, 그것이 다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논조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면, ‘통 크게’ 값싼 치킨을 대형 마트에 띄워 ‘우민화’된 고객을 유인하겠다는 배짱 두둑한 대기업의 낯이 너무나도 두꺼워 보이겠다. 

 

ⓒ오픈하우스 제공

 작가는 뭔가에 몰두하면 휴대전화를 ‘자동 응답’ 상태로 돌려놓는다. “지금은 장편 집필 중이니, 문자를 남겨 주세요”라며 친절하게 안내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문자를 남겼을까? 그 문자의 수가 불어나서 작가의 ‘장편’도 완성되었을까.

공지영 작가는 올해 작품으로는 인사를 하지 않을 듯하더니, 세밑이 다 되어서야 ‘행복’의 의미를 깨우쳤다며 ‘샤우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심에서가 아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지리산에서다.

지리산에서 보낸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오픈하우스 펴냄)가 도심에 싱싱하고 맑은 공기를 더하고 있다.  공작가는 그의 벗인 낙장불입 시인, 버들치 시인과의 인연으로 지리산을 찾으면서 만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감동 먹었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도시를 떠나온 사람들. 인생의 막장을 지리산에 의탁한 사람부터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까지. 그냥 그렇게 살 수는 없어서 모인 사람들은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을 살아냈다. 책의 말미에야 지리산 학교가 만들어지는 분주한 풍경이 담겨 있지만, 공작가는  이미 그들이 ‘행복학교’에 살아오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은 ‘공지영이 바라보는 지리산 행복학교’이다.

공작가는 “굳이 그들이 누군가 알려고 하지 않으시면 더 좋겠다. 다만 거기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느긋하게 그러나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서울에 사는 나 같은 이들이 도시의 자욱한 치졸과 무례와 혐오에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려고 하는 그때, 형제봉 주막집에 누군가가 써놓은 시구절처럼,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도시의 삶이 역겨워질 때. 든든한 어깨로 선 지리산과 버선코처럼 고운 섬진강 물줄기를 떠올렸으면 싶다”라며 책 속의 주인공들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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