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활력 잃어버리고 ‘쩨쩨한 충무로’ 되려나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12.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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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 참신한 기획과 모험 정신 사라졌다는 비판받아

지난달 개봉한 <초능력자>는 2백13만(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2월9일 기준)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초능력자’의 활동 공간으로 도심 속 변두리인 세운상가를 끌어들이고, 국내에서는 드물었던 좀비영화의 장르적 특징을 껴안은 점도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B급 영화도, 정통 상업 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B급 정서로 충만했던 시나리오의 참신함이 투자사 이곳저곳을 거치면서 많이 탈색되었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영화로 이어졌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예전 충무로 같으면 좀 더 창의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한숨 섞인 아쉬움도 흘러나온다.

▲ ⓒ영화사 집 제공

지금 충무로에서는 그만그만한 영화만 쏟아진다는 자성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참신한 기획은 사라지고 모험 정신은 눈 씻고 찾기 힘들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들린다. 충무로가 큰 손실 없이 보낸 올 한 해를 ‘무난했다’라고 자평하면서도 창작의 활력을 잃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서 이대로 가다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도 떠오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톡톡 튀는 창의성과 젊은 열정으로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급부상했던 충무로가, 안일함이라는 위기감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잇달아 개봉한 로맨틱코미디 <김종욱 찾기>와 <쩨쩨한 로맨스>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두 영화는 각각 첫사랑 찾기 사업, 성인만화가와 순진한 스토리 작가의 연애라는 그럴듯한 상황 설정으로 출발해 호기심을 부추기지만 영화적 힘이 부족한 전형적인 기획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에 대한 자기주장·신념도 안 보여”

▲ ⓒ롯데엔터테인멘트 제공

비단 두 작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촬영과 조명 등 전반적인 만듦새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지만 최근 충무로 영화는 작가성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 등 이른바 ‘영화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사 대표 A씨는 “영화인들의 모험 정신이 많이 사라졌고, 영화에 대한 자기주장이나 신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꼬집는다.

최근 위기감의 근원은 제작사들의 쇠락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FNH 등 충무로의 근간을 이루던 대형 제작사들이 힘을 잃은 반면,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의 힘이 세지면서 한국 영화의 창의성이 떨어지고 있다. 창작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제작사와, 수익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투자배급사 사이에 힘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한국 영화가 특유의 활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는 투자 결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위해 ‘그린 라이트 커미티’(Green Light Committee) 제도를 운영 중이다. 대표이사와 본부장, 주요 팀장들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어느 영화에 투자할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참석자들의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의결하기에 이성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극도의 위험 회피 심리가 반영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흥행이 검증된 감독이나 배우 또는 장르의 영화는 투자에 유리하고, 무명 감독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는 투자받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쇼박스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투자배급사들의 투자 결정 과정도 오십보백보이다. 한 영화인은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은 영화 시장 자본의 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순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직된 대기업의 경영 논리를, 창의성을 최고 가치로 두어야 하는 제작 과정에 적용하는 등 역기능이 더 커지는 듯하다”라고 비판했다.    

 

ⓒ롯데엔터테인멘트 제공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저작권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82세에 가출해 간이역에서 숨진 톨스토이의 말년을 그린다. 영화는 톨스토이즘의 완고한 추종자인 체르트고프에 의해 개인 비서로 발탁되어 저택에 들어온 청년의 시점을 따라간다. 소피아는 48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의 저술 활동을 적극 도왔고 13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의 사상에 동조하지는 못했다. 남편을 성자인 양 추앙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사유 재산도 포기할 수 없었으며, 남편이 자신보다 체르트고프를 더 신뢰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 영화는 악처로 유명한 소피아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건네며, 경직된 톨스토이즘 추종자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적 가치인 사랑이 그녀에게 있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그녀의 패배이다. 결국 유언장은 작성되고, 톨스토이는 집을 나가 죽는다. 소피아는 남편을 찾지만, 추종자들과 막내딸에 의해 저지된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야 겨우 사랑의 말을 건넸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그토록 집착하던 재산도, 남편의 사랑도, 유족으로의 명예도. 톨스토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이 그녀에게 위로를 건넬 때,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자막은 그녀가 1914년 저작권을 돌려받게 되었다고 나온다. 그러나 1917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으니, 재산권도 소용없어졌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랑이 사적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것이었다면 남편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행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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