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어디 가고 ‘밥그릇 싸움’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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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변호사단체, 변호사 시험 합격률 놓고 갈등…합격률 낮춰져 ‘고시 낭인’들 대거 출현할 듯

 

변호사 시험의 합격자 결정 방법을 놓고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과 변호사 단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로스쿨 교육을 충실이 이수하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자격 시험으로 운영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가 법률 서비스의 질 하락을 우려해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을 50%로 하자는 공식 입장을 천명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로스쿨 학생들은 집단 자퇴로 맞섰고, 법무부는 지난 12월8일 로스쿨 1기 졸업생이 응시하는 2012년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을 75% 이상으로 결정했다. 대한변협과 로스쿨측의 입장을 조율한 결정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2013년부터 실시되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선발은 추후에 논의하기로 하면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로스쿨측은 합격률이 80%는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한변협은 기존의 50%를 고수하고 있다. 로스쿨과 변호사 단체의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 셈이다.

로스쿨과 대한변협의 갈등은 법조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한변협은 겉으로는 ‘법률 서비스의 질 하락’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들이 해마다 1천명 이상 배출되면 사법고시 출신의 변호사들에게는 그만큼 영역이 좁아진다. 때문에 변협은 이를 미리 경계하기 위해 ‘합격률 50%’를 마지노선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반면, 로스쿨 재학생들은 당초의 ‘자격 시험’이 ‘정원제’가 되면 생존권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로스쿨과 대한변협의 갈등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존 전쟁’인 셈이다.

로스쿨 학원 ‘줄도산’…로스쿨 이탈도 늘어

2007년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대학가와 학원가는 흥분했다. 취업난에 허덕이던 대학생들은 로스쿨을 ‘안정을 보장받는 전문직’으로 인식했다. 직장인들은 로스쿨을 통해 ‘제2의 인생’을 꿈꾸었다. 서울 강남과 신림동 학원가는 로스쿨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전망했다. 학원가에서는 수험생이 최대 10만명, 시장 규모도 1천억원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스쿨 학원도 우후죽순 생겨나 시험 첫해인 2008년 1월에는 20여 개나 되었다. 그해 9월까지 10여 개가 더 늘어나 30여 개가 되면서 학원가는 ‘로스쿨 춘추 전국 시대’를 맞았다. 학원마다 수험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들도 치열한 로스쿨 유치 경쟁을 벌였다. 신청했던 대학들 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나 로스쿨의 열기는 얼마 못 가 수그러들었다. 첫해 응시원서 접수자가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1만3천6백89명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4천7백여 명이 줄어든 8천9백63명이었다. 올해 접수된 2011학년도 지원자는 전년보다 6백74명이 늘었으나 1만명을 밑도는 수준이었다.

최고 30곳에 이르던 로스쿨 전문 학원들은 절반 이상이 도산하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10여 개에 이른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곳은 3~4개에 불과하다. 지난 2년 동안 로스쿨 학원가에서는 ‘줄도산 사태’가 있었던 것이다.

로스쿨을 이탈하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현재 전체 재학생의 약 10%가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변협도 로스쿨 학생들의 자퇴를 두고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방 사립대의 일부 로스쿨은 재학생 상당수가 자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로스쿨측은 단순히 자퇴생 숫자만 가지고 ‘로스쿨 회의론’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고 나섰다.

김형주 로스쿨학생협의회 회장은 “자퇴생의 숫자만 보지 말고 왜 자퇴했는지 이유를 따져야 한다. 자퇴생 중에는 로스쿨에 입학했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한 경우도 있다. 또 더 좋은 로스쿨을 가기 위해 자퇴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로스쿨’의 미래는 어떨까. 법조계에서는 ‘암울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전국 25개 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로스쿨에서는 2012년에 첫 변호사 시험이 치러지면 합격률에 따라 희비가 교차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정원의 75%가 됨으로써 합격자는 1천5백명이 된다. 그 다음 해의 합격률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75%라고 하자. 두 번째 시험에서 첫해 탈락자 25%가 모두 재응시한다면 합격률은 60%가 되고, 그 다음 해에는 50%대로 떨어지게 된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로스쿨 법에는 응시 횟수를 3회로 제한했지만 만약 3회 응시 제한이 위헌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 합격률은 갈수록 내려갈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대·고려대 등 상위권 로스쿨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90%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명성이 떨어지는 수도권의 하위권 로스쿨과 지방 로스쿨의 합격률은 20%대가 될 것이며, 지방에서는 합격자를 전혀 내지 못해 스스로 폐교하는 로스쿨이 나올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로스쿨이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 2017년에는 사법시험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그 전에는 해마다 합격자 숫자를 점차 줄여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로스쿨이 ‘제2의 사법시험화’ 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로스쿨을 나왔다고 해서 모두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 업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

따라서 로스쿨 졸업자 중에서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고시원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고시 낭인’들이다. 해마다 수백 명의 고시 낭인들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고시촌에 정착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상돈 교수는 “대학이나 학부도 아니고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가 되지 못하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재수나 삼수를 하게 될 텐데, 이럴 경우 ‘신림동 고시학원’이 ‘로스쿨 학원’으로 변할 것이다. 결국 로스쿨이 사법시험처럼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출신들의 ‘변호사 자질’에 회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금의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실무를 익히고 현장에 나간다. 검사나 판사 또는 로펌을 거치면서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로스쿨은 3년간 이론과 실무를 익힌 후 변호사 시험에 응시한다. 때문에 ‘3년’이라는 기간에 제대로 된 변호사를 길러낼 수 있느냐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 대학마다 수업의 질적 차이가 있어 ‘검증된 변호사’를 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변협은 현재의 로스쿨 교육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 법학대학 교수가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로스쿨 졸업생을 모두 변호사로 선발하면 법대 졸업생을 그대로 쓰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게 변호사 업무 수행을 위해 1년 이상 별도의 실무 수습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로스쿨측은 여기에 부정적이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지난 7월 성명서에서 ‘로스쿨 교육의 기본 취지는 로스쿨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실무 교육을 실시하며 시장에서 소비자에 의하여 변호사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별도의 실무 수습 제도는 이러한 취지에 반한다”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최근 경기 불황이 심해지면서 변호사업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 건수가 ‘2건 이하’라는 조사도 나왔다. 적자를 보면서 사무실을 유지하는 변호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회 회비를 내지 못하는 변호사도 급증하고 있다. ‘로스쿨’의 앞날에도 이래저래 찬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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