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대북 정보력 허술한 까닭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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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첩보 입수하고도 분석·판단은 허술…대북 전문가 부재 따른 ‘휴민트’ 부실도 심각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가 정부 허가 없이 방북했을 때의 일이다. 문목사는 일본을 거쳐 중국 베이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안기부는 문목사가 베이징에 간 것까지는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으로 들어간 사실은 몰랐다. 문목사의 동선을 놓쳤던 셈이다. 당시 국회에서 박세직 안기부장을 불러 ‘문목사 방북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박부장은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만 답변했다. 그렇게 해서 넘어갔다. 그런데 요즘 국정원장들을 보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경우) 선글라스를 끼고 언론에 나오질 않나, 원세훈 원장은 (지난 8월 북한의 서해 도발 지시 감청과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설사 알고 있다 해도 ‘모른다’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았다.” 지난 12월3일 기자와 만난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고위 간부 출신 인사가 국가정보원에 대해 전한 말이다. 이 인사는 문목사가 방북할 당시 해외 정보 분석 업무를 맡고 있었다.

8월에 ‘서해 도발’ 감청하고도 대응 미숙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들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터지자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라는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연평도 사태가 일어난 후인 12월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남수 국정원 3차장은 “지난 8월 북한의 서해 도발 지시를 감청해 청와대와 군에 알렸다”라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다음 날 청와대와 합동참모본부는 “정보 책임자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라고 강한 유감을 피력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국정원은 “8월 감청을 통해 서해 5도 공격 징후 내용이 입수된 이후에 북한의 사격 훈련이 있었고, 우리도 9월에 사격 훈련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생략한 채 8월 하순부터 3개월이라는 기간이 경과된 11월23일 발생한 연평도 무력 공격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해명하며 언론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수집된 대북 정보를 제대로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천안함 사태 때는, 천안함 침몰 15시간 전쯤에 북한 잠수정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또 침몰 직전에는 북측 해안 포문이 개방되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가 터진 지 열흘 뒤인 4월6일 원세훈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를 전후로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수집된 정보에 대해 국정원이 잘못 판단했던 셈이다. 연평도 포격 때도 도발 3개월 전인 지난 8월에 공격 계획을 감청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북한의 상시적인 위협 언동으로, 포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다. 결국 첨단 장비와 감청 등을 통해 취득한 대북 정보들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이처럼 대북 정보력과 분석·판단력에 ‘구멍’이 뚫린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국정원 내에 대북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김성호 원장 시절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승진했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어야 했다. 과거 정부에서 ‘충성’했다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호남 출신 간부들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김원장 시절에는 ‘국가정보원=조직개편원’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렸다. 그만큼 인사 이동이 잦았다는 이야기이다. 지난해 2월, 2대 국정원장으로 원세훈 원장이 부임한 직후에도 인사가 단행되었다. 이때는 1980년 초반에 입사했던 간부들 상당수가 국정원을 떠났다. 올해 들어서는 6월2일 지방선거 직후에도 수평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 앞선 두 차례 인사에 비해 그 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지방선거 이후 단행된 인사는 명실상부한 ‘원세훈 인사’라고 말할 수 있다. 원원장 체제가 안정기로 들어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는 대북 파트의 인사 이동이 눈에 띈다. 국정원의 대외 창구를 담당했던 한 간부는 대북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른바 ‘잘나갔던 간부’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거나 자리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대북 전문가들의 공백도 커졌다. 대북 전문가들의 공백은 대북 정보 라인의 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집된 대북 정보에 대한 분석·판단 능력이 떨어진 것도 대북 전문가의 ‘기근’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대응과 집행이 뒤따르지 못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군 ‘정보 협력’도 느슨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25일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경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 전문가들의 부족은 대북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의 부실과도 직결된다. 국회 정보위의 한 관계자는 “예전 국정원은 우리 군의 대북 감청과 영상 정보 등에 의존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대북 휴민트가 상당 부분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휴민트가 무너졌다는 것은 일상적인 대북 정보 채널이 끊겼다는 것이다. 정보위에서도 휴민트 문제를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휴민트’의 부실로 인해 국정원의 군에 대한 대북 정보 의존도가 전보다 더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보위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군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군 정보가 국정원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국정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군 정보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대북 감청 장비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도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했다.

정보 당국 간 협력 시스템이 느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과 군 정보 당국의 정보 공유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12월6일 기자와 만난 국정원의 핵심 간부 출신 인사는 “군 정보 당국에서 수집한 북한 군 동향에 대한 가장 ‘쌩쌩한’ 정보가 국정원으로 들어간다. 북한군의 교신 내용이 거의 그대로 전달되는 셈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 정보까지도 군에서 전달된다. 그런데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정보 전달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국정원-군 정보 당국의 삼각 갈등설’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만한 갈등 사례와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갈등설은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설이다. 청와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책 자문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군과의 협조 체계도 원활하다”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답변 요구에 ‘확인 불가’만 전해와

‘연평도 사태’ 후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교체 요구가 나왔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원세훈 원장의 경질을 요구했으며, 정두언 최고위원은 “(외교·안보 라인에) 3류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라며 문책론을 폈다. 민주당 역시 12월3일 원원장을 포함해서 이희원 청와대 안보특보, 한민구 합참의장 해임 요구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원세훈 체제’가 ‘장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기자가 접촉한 국회 정보위와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연평도 포격 때문에 원원장이 교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 정부 말기까지 함께 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원원장을 정치권의 요구대로 교체할 경우, 자칫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시사저널>은 12월9일 국정원에 ‘국정원 대북 정보력’과 관련된 질의서를 팩스로 전송했다. 질의 내용의 주요 골자는 △대북용 감청 장비 도입 계획 여부 △잦은 인사로 인해 대북 전문가가 부족해졌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 △‘휴민트’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한 견해 △군 정보 당국과의 협력 시스템이 느슨해졌다는 주변의 지적에 대한 국정원의 견해를 듣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다음 날(10일) 오전 전화를 통해 “질의한 내용들이 모두 정보 기관과 관련된 업무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국정원 체질 바꾸고, NSC 사무처도 부활시켜라”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면서 국정원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보위 소속 민주당의 한 의원은 “미국은 2007년경에 CIA(중앙정보국)법을 개정해서 CIA의 기능을 축소했다. CIA는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해당 부처나 기관에 배분하는 역할만 하고, 정보 분석과 집행 등은 해당 기관에 맡겼다. 다만, 작전이 필요할 경우에는 별도의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정보 수집과 판단, 집행을 총괄하는 우리 국정원을 미국 CIA처럼 개선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안보 위기를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위상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국정원의 핵심 간부 출신인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외교·안보 분야를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상설화되고 노무현 정부에서 위상이 강화되었던 NSC를 상설 기구화해야 하며, 폐지된 NSC 사무처도 부활시켜야 한다. 만약 NSC만 제대로 운용되었어도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렇게까지 우왕좌왕하며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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