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세’로 떠올라 사랑받을 만한 ‘걸’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2.2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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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 , 걸그룹 폭풍 속에서 솔로로 인기몰이 하는 이유

 

▲ 가수 데뷔 2주년을 기념해 팬클럽이 보내준 선물을 들고 있는 아이유. ⓒSBS 제공

가요계에 오랜만에 ‘대세’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솔로 여가수가 등장했다. 아이유는 절정의 가창력과 귀여운 외모를 내세우며 가요 프로그램과 쇼 프로그램을 평정하고 있다. 김봉현 가요평론가와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가 ‘새로운 대세’ 아이유를 분석했다.

삼촌 팬-오빠 팬의 로망

삼촌 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녀 종결자’가 나타났다. 바로 1993년생 소녀 가수 아이유이다. 미풍으로 시작했던 아이유 바람은 <영웅호걸> 등 예능을 통해 열풍으로 바뀌었고, 이번 신곡 무대를 통해 태풍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이유는 가히 삼촌 팬-오빠 팬의 로망, ‘오타쿠’의 여신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화제를 모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유는 사실 눈에 띄는 미모라고는 할 수 없다. 인형처럼 예쁘지도, 특별히 섹시하지도 않다. 데뷔도 별다른 화제를 일으키지 못했다. 걸그룹 폭풍 속에서 스러져갈 여러 솔로 가수 중 하나로 보였을 뿐이다. <잔소리> 이전까지는 노래도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아이유가 대중에게 점점 특별한 사람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제외한 음악 프로그램과 예능의 덕이었다.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틀에 박힌 여가수의 모습만 보여주었던 아이유는, 그 밖의 프로그램에서 꾸밈없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거기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에서 공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에는 ‘아이돌 5초 가수 논란’ 등 화려한 몸동작을 보여주는 아이돌 가수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그때 아이유가 실력으로 차별성을 보였다. 아이유의 음색이나 창법이 요즘 유행하는 흑인 음악 스타일이었다면 너무 프로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지만, 다행히 순수한 목소리였던 것이 그녀의 매력을 더욱 높였다.

커져가는 인기에 비해 히트곡이 없던 그녀에게 첫 히트곡도 생겼다. 2010년 6월에 나온 <잔소리>이다. <잔소리>로 그녀는 모든 남자 가수가 듀엣하기를 원하는 대표 여가수로 공인되었다.

탄력을 받은 아이유는 날개까지 달았다. 지난 7월에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영웅호걸>에서였다. 쟁쟁한 걸그룹 멤버가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 1인자에 등극하면서 아이유의 위상은 수직 상승했다.

그런 가운데 12월 둘째 주에 이르러 문제의 ‘삼단 고음 사태’가 터진다. 아이유가 신곡을 발표하며 고음을 선보였다. 이것은 걸 그룹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실력 있는 소녀 가수’ 아이유의 호감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삼단 고음을 선보인 후 바로 이어 TV쇼 <영웅호걸>에서 ‘삼단폭행’이 나타났다. 아이유가 실수를 연발하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자기 머리를 때린 사건(?)이었다. 정말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영웅호걸>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된 아이유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은 ‘아이유 붐’에 날개를 달았다. 이미 검증되었던 실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댄서가 아닌 가수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대안’ 

예를 들어, <영웅호걸>에 빅뱅의 태양이 나타났을 때 아이유가 보인 행동은 딱 10대 팬의 모습 그 자체였다. 본인도 연예인이면서 태양을 보고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좋아하고, 설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시청자는 아이유에게서 궁극의 귀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실력까지 겸비했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황폐한 사회에 지친 사람들은 신선하고, 발랄하고, 생명력이 넘치고, 순수한 것을 원한다. 아이유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또 댄서가 아닌 가수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도 아이유는 만족할 만한 대안이다. 때문에 삼촌 팬은 아이유를 볼 때 절로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 삼촌 팬이 지금 아이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질척질척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이대로만 커다오. 우리가 지켜줄게!’가 아닐까?   


바야흐로 ‘아이유 시즌’이다. 새 앨범은 보란 듯이 음원 차트를 점령했고, 타이틀곡 <좋은 날>의 고음 처리를 빗댄 표현 ‘3단 부스터’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등극했다. 아이유가 포화 상태인 걸그룹과 달리 확연히 약세인 여성 솔로 가수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유가 아이돌 가수로서의 이미지뿐 아니라 ‘뮤지션’으로서의 능력 또한 꾸준히 드러내왔다는 점으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데뷔 당시 아이유가 주목받은 이유도 또래 가수와 음악적으로 차별화되기 때문이었다. 타미야나 코린 배일리 래의 노래를 능숙하게 재현하는 열여섯 살의 기타 치는 소녀. 거기에다 깜찍한 용모까지 갖춘 이 소녀는 그렇기 때문에 또래 아이돌 여가수가 자주 직면하는 ‘가창력’과 ‘음악성’ 비판에서 일찌감치 비켜설 수 있었다. 비록 커버곡만으로는 창작력을 검증할 수 없다 해도 그런 곡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또래 사이에서 음악적으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 후 아이유는 예능에 출연하거나 게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항상 음악적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다. 토이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부른다거나 무려 이병우의 기타 연주를 대동(!)하고 ‘어떤 날’의 <그런 날에는>을 소화해내는 모습은 이른바 고급 가요를 향유한다고 여기는 음악 팬들, 지금의 가요계에 염증을 느끼며 1990년대 이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관심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아이유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몇 장의 앨범에서 전형적인 소녀 팝으로 분류 가능한 <마쉬멜로우>
와 <Boo>도 불렀지만, 마치 팀버랜드의 2000년대 중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대곡 <미아>를 선보이기도 했던 아이유는 새 앨범 <Real>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이미지를 더욱 확실히 했다. 이번 앨범에서 아이유는 이른바 ‘90년대 작가군’이라 불리는 음악가와 손을 잡았다. 보아가 김동률의 발라드를 부르고 가인이 윤상을 불러들였다면, 아이유는 윤종신과 김형석을 소환한다. 그리하여 가수는 음악적 신뢰와 무게감을 얻었고, 작곡가는 시류의 중심에서 뒤처지지 않을 존재감을 얻었다. 결과물만 훌륭하다면 나무랄 수 없는 전략이다.

또 <Real>은 발라드 위주 작품이라는 점에서 다른 아이돌 가수의 앨범과 차별화된다. 아이돌 가수의 앨범에서 흔히 보너스 트랙이나 부록처럼 껴 있던 발라드가 아이유의 앨범에서는 주류이다. 타이틀곡인 댄스 넘버 <좋은 날>이 오히려 좀 튀어 보일 정도이다. 대부분의 곡이 10대 소녀의 감수성을 철저히 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윤종신이 가사와 멜로디를 쓰고 조정치가 기타 편곡한 <첫 이별 그날 밤>은 윤종신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이 10대 소녀 버전으로 재탄생한 흥미로운 사례라 할 만하다.

이렇듯 아이유는 또래 아이돌 가수와는 조금 다른, 어쩌면 더 힘든 길을 가고 있다. 깜찍한 소녀 아이유에게 기대되는 무엇과는 별개로 대중은 아이유가 음악으로도 무언가를 증명해주기를 원한다. 하나가 더 얹힌 셈이다. 이 무게를 소녀는 이겨낼 수 있을까. 거기 누구 없소? 이 소녀를 격려해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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