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고객 돈을 원상태로 돌려놓아라”
  • 정락인·조현주 기자 ()
  • 승인 2010.12.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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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업계 비리 수사 지휘하는 차맹기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 인터뷰 / “서민들 돈 횡령해 더 문제”

지난 5월 상조업계 1위인 보람상조의 경영진이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되었다. 당시만 해도 보람상조는 가입 회원 수가 75만명에 달했다. 상조에 가입한 서민들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그 뒤 업계 상위권 업체들의 비리가 검찰 수사를 통해 연이어 밝혀졌다. 이들 업체의 경영진들이 고객이 맡긴 돈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사용하다 들통이 난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조업체 수사는 차맹기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6부장(44)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차부장검사는 그동안 감시 사각지대에 있었던 상조업체들의 비리를 들춰내 국민들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상조업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지난 12월15일 오전 서울남부지검에서 차부장검사를 만나 상조업계의 비리와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12월15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상조회사의 저승사자’ 차맹기 부장검사가 상조회사들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업계 1위인 보람상조를 시작으로 상조업계 비리 수사의 포문을 열었다. 처음 수사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 5월 부산지검 특수부장 때의 일이다. 당시 보람상조가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TV 광고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광고비가 결국 소비자의 돈 아닌가. 게다가 상조를 관리하는 곳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여겨졌다. 이와 관련한 제보가 있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실제 수사해보니 상조회사들의 경영 상태가 어떠했나?

상조회사에는 행사 건수라는 것이 있다. 가령 한 달에 100명을 모집하면 실제로 행사(상)를 치르는 것은 고작 세 건에 불과하다. 수익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당연히 결손이 날 수 없었다. 그런데 보람상조의 결손율이 꽤 컸다. 처음에는 ‘광고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수사를 하다 보니 결국 경영진들의 횡령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후 의외로 결손인 상조회사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사 대상을 더 넓히게 되었다.

내부 감사 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던 것 같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산 70억원 이상이면 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부 감사인의 감사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국민상조의 경우 공인회계사인 외부 감사인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전환사채 인수, 유상 증자 등 돈을 빼돌리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해 전체 범행을 치밀하고 은밀하게 계획하고 진행했다. 이것만 보아도 외감법 적용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업계 1, 2위 등 상위 업체들의 부정·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확인된 것만 말할 뿐이어서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상조회사의 횡령 액수가 대부분 100억원이 넘는다. 이런 돈이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수백억 원의 돈이 아무런 규제 없이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던 셈이다. 상조에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는 부유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이다. 보통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 자식들에게 장례 비용만이라도 마련해주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 월 2만원 정도로 어렵게 모은 돈, 서민들의 돈을 횡령한 것이기에 더 문제였다.

상조업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들이 엄청났을 것 같다.

최근 우리 사회에 ‘상조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가 상조업체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비리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상조회사의 광고나 광고에 출연한 유명 탤런트들에게 현혹되어 너도나도 상조에 가입했을 것이다. 자기가 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에 맞는 합당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조업계의 구조나 영업 방식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연장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일반 회사에서의 횡령을 보면 대부분 경영해서 남는 이익금을 가져가고 있다. 즉, 회사의 남는 자산을 개인이 착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조회사는 회사가 영업해서 남은 이익금의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고객이 맡긴 돈, 납입금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더 나쁜 행위이다. 일반 회사의 경우 투자금에 대해서는 주주총회와 채권자들을 통해 항상 감시를 받는다. 상조회사는 납입한 회원들이 자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회원들은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다. 이런 문제를 당국에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당국에서 회원들 대신에 일반 주주나 채권자들이 감시하듯이 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상조업계가 좀 더 투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상조회사들의 장례 비용 등 각종 비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소비자들도 상조회사가 제시한 가격이 공정한가를 알아야 한다. 돈을 모으는 행위이기 때문에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행위를 자율적으로 놓아두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돈을 모으고 그것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규정에 위반되는 것은 없는지를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지금보다 더 세부적인 규정을 마련해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상조회사가 화장터를 미리 예약해 놓는 사례가 있다. 때문에 상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화장터에 못 들어가는 구조이다. 이런 점도 개선해야 한다.

수사하면서 비화나 에피소드는 없었나?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때 ‘상조업체들이 잘못한 것이 있지 않았느냐’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다. 내 주변에 의외로 상조업체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상조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일도 빈번했다. 또 한 가지는 상조회사 직원들이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자기가 상조업체에 다니면서 경영진의 전횡을 전혀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회사 경영이 투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전해 오기도 했다.

상조업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갑작스럽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그때는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조업체는 이럴 때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순기능이 있다. 상조업체가 잘 운영된다면 돈 문제를 떠나 손님을 맞이하거나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데 아주 유용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많은 상조업체가 이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본연의 자세를 갖추었으면 한다.

향후 상조업계에 대한 수사 계획은?

상조업체에 대한 수사는 우리 검찰이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사 사례라고 본다. 그래서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다. 업계가 근본적인 개혁을 할 때까지 진행할 것이다. 고객 돈을 착복한 상조업체 경영진들은 지금이라도 고객 돈을 원상태로 되돌려놓기 바란다. 그러면 정상이 참작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번 상조회사 수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몇 개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 경제를 갉아먹고 서민들의 쌈짓돈을 노리는 ‘숨은 비리’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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