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은 경제 분야 올해의 인물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42)을 선정했다. 이재용 사장은 국내 최대 기업집단의 총수 자리에 한 발짝 다가섰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그는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최지성 부회장과 함께 기업 내부 사업을 총괄한다.
삼성전자 사장단과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부터 1 대 1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이재용 사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건희 회장이다. 이재용 사장이 아버지로부터 사람 다루는 법을 배웠다면,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서부터 이건희 회장을 거쳐 이재용 사장까지의 경영 형태는 초현실적 권위에 근거한 통치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대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보여줄지 ‘주목’
이사장을 만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사장을 만나 보니) 삼성은 복이 많은 기업이다. 삼성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임직원은 이사장이 ‘소탈하다’ ‘겸양이 몸에 배어 있다’ ‘예의 바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임직원들로부터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반드시 따라야 할 신앙에 가까운 복종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이사장이 지닌 약점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미래기획실 전신) 소속이었던 김 아무개 부장은 “이사장이 아버지처럼 행동하면 임직원 사이에 ‘왜 저러는데?’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이재용 사장은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사장은 이미 한 차례 실패했다. 지난 2000년 5월 인터넷 사업을 벌이며 ‘e삼성’을 설립했으나 초기 투자비 5백5억원을 날리고 삼성그룹 계열사에 그 손실을 떠안겼다. 이사장이 최지성 부회장이라는 단계를 거쳐 삼성전자, 나아가 국내 최대 기업 집단의 총수에 오르려면 COO로서 경영 성과를 내야 한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전자를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로 성장시켜 부자 세습 논란을 잠재웠듯이 말이다.
이재용 사장의 여동생들은 핵심 계열사 사장단에 올랐다. 첫째 동생 이부진씨(40)는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삼성물산 상사 부문 고문까지 겸직한다. 둘째 동생 이서현씨(37)는 제일모직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부사장은 제일기획 기획담당 부사장을 겸직한다. 이로써 보험, 증권, 카드, 자산 운용 같은 금융 분야를 제외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핵심 포스트는 이씨 3남매가 장악했다.
삼성그룹은 지금까지 ‘미등 전략(tale light strategy)’을 구사했다. 앞서 가는 미국·유럽·일본 기업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제품과 기술 경쟁력을 키웠다. 이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며 지금까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일갈했듯이 ‘지금까지 선진 기업이라는 등대가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망망대해를 스스로 나아가야만 한다’. 경영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 사장에게 기대가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