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날 선 ‘대권 시험대’ 맨발로 오르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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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 오랜 칩거 끝에 제1 야당 수장으로 화려한 복귀…지지율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

 

▲ 12월1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가진 민주당의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규탄 피켓을 든 채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금부터 저는 (12월)28일까지 전국을 돌며 노숙자 생활을 할 겁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려고 해도 우리 국민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국민들과 함께하면 결코 추울 수 없습니다.”

기습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2월14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새해 예산안 날치기 무효화를 위한 전국 순회 투쟁’에 나서기에 앞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12월8일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과 법안을 강행 처리한 직후 시작된 ‘100시간 장외 투쟁’에서 상징물이 된 자주색 목도리를 두른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민주당 관계자를 포함한 청중 3백여 명이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했다.

<시사저널>은 ‘2010년 정치 분야 올해의 인물’ 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선정했다.
<시사저널> 기자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한 본지 독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정치 분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특임장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486세대 광역단체장들이 비교적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최다 득표는 지난 10월3일 전당대회를 통해 제1 야당의 수장으로 복귀한 손대표의 몫이었다. 

당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손대표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는 한편,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도 갈수록 강해졌다. 손대표의 한 측근은 “당원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손대표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직을 맡은 지 한 달 후인 지난 11월에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 사회론’은) 말만 공정 사회이지, 사기 치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정의 사회 구현’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규정짓고 몰아붙였다.

여의도 정가로 돌아온 지 4개월 정도 지난 그가 ‘정치 분야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까닭은 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손대표는 12월14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올해 정치 분야 인물에 선정되었다”라고 전하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런 위기에 빠뜨린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라며 서둘러 시위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예산안 날치기’에 맞선 장외 투쟁 주도

손대표는 명실상부한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힌다. 현재 그가 주도하고 있는 대여 강경 투쟁 역시 야권 대표 주자로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과 함께 향후 대선 국면에서 유리한 발판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당 대표로서 민주당과 자신의 지지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손대표가 당 대표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이른바 ‘손학규가 민주당화하느냐, 민주당이 손학규화 하느냐’로 표현되는 손대표의 리더십과 변화 역량에 따라 그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아직까지 손대표의 지지율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2월8일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 직후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전주보다 3.8%포인트 하락한 38.8%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민주당은 전주 대비 1.9%포인트 상승한 26.3%을 나타냈다. 양당의 격차는 12.5%포인트로 전주(18.2%포인트)보다 크게 줄었다. 하지만 대권주자 지지율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전주보다 0.8%포인트 상승한 31.6%로 부동의 1위를 달렸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12.7%)과 한명숙 전 총리(9.9%) 등이 다음을 이어갔다. 손대표는 9.2%로 4위였다. 손대표에게는 향후 대선 정국에서 ‘야권 단일 후보’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정체된 자신의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가 당내에서 얼마나 자신의 세를 확보하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당 내에서 손대표의 ‘우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졌을 때, 그 세가 크지 않다.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부동표’를 얼마나 자신의 표로 만들 수 있는가도 손대표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손대표는 현재 전국을 돌며 ‘풍찬노숙(風餐露宿)’하고 있다. 12월14일 시작한 전국 장외 투쟁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시사저널 유장훈

 

시기적으로도 공교로운 점이 있다. 손대표가 전당대회 직후 10%대로 올랐던 지지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11월 이후, 박원내대표는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각종 폭로를 진두지휘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내 곳곳에서는 “‘손’ 대신 ‘박’만 보인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의원들이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줄 서고 있다”라는 말도 나돌았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권에 나서려면 대선 1년 전에 대표직을 사퇴하도록 되어 있는데, 손대표가 2011년 말에 출마를 선언하면 대표직이 공석이 되어 다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당내에서는 박원내대표가 차기 대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어차피 의원들은 집권보다는 공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2012년 총선 공천장을 줄 사람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손대표 주변의 참모들은 손대표가 박원내대표에 비해 각종 현안들을 주도해가는 강인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온 ‘입양아’ 손대표가 민주당의 진정한 상속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자기 목소리를 명확히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제1 야당의 대표, 유력한 대권 주자의 이미지를 국민들의 뇌리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손대표가 강력한 장외 투쟁을 주도하는 것도 이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손대표로서는 당 밖의 대선 주자들과의 경쟁도 힘겹지만, 당내에서 박원내대표와 벌이는 주도권 경쟁 역시 힘겨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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