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적 ‘생존 전술’은 계속된다
  • 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 ()
  • 승인 2010.12.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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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동북아 정세 / 북한, 중국의 개혁·개방 요구에 역행할 것으로 보여 미래 불안감 가중

 

▲ 조선 노동당 창건 65주년 경축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한 중국 공산당 대표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선물. 조선중앙통신은 이 사진을 지난 10월12일에 보도했다. ⓒ연합뉴스

2010년 9월28일 북한은 제3차 당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했다. 또한 하루 앞선 9월27일 김경희, 최룡해 등과 함께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 지난 2009년 1월에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자리를 부여한 것은 김정은의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이 1974년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공식화된 것에 비하면, 김정은의 공식화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은은 지금 김정일의 현지 지도를 수행하며, 후계자로서 수령의 혁명 위업을 계승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09년 11월 화폐 개혁과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 등 경제 및 군사 모험주의가 김정은 후계 체제 공고화를 위한 시도이며,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국제 사회의 관심은 과연 김정은이 언제 국제 사회에 등장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경우, 1980년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국제 사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중국을 방문한 후부터였다. 1982년 김일성 70회 생일 축하차 방북한 후야오방 총서기는 덩샤오핑이 김정일의 방중을 요구한다는 내용을 전했고, 이에 김정일은 오진우와 연형묵을 대동하고 1983년 6월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김정일은 덩샤오핑, 후야오방, 리셴녠, 자오쯔양 등의 중국 지도자들을 접견하고, 베이징, 난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와 공장, 기업소, 군부대를 방문했다. 중국 방문을 통해 후계자로서 국제적 위상을 갖춘 김정일은 1983년 9월 북한 건국 35돌 기념 행사에 참가한 중국 공산당·정부 대표단을 평양역에서 마중하면서 후계자로 첫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11월 옛 소련 정부 대표단장인 카피차 외무차관과의 회견, 1985년 김일성과 후야오방 회담 배석, 1986년 3월 쿠바 당·정부 대표단 접견 등 중국과 소련, 쿠바 등 주로 공산권 지도부와의 교류를 통해 북한의 후계자로서 대외적 위상을 정립해나갔다.

김정은이 국제 사회에 등장하는 시나리오 또한 가장 먼저 중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은 지난 9월 당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되자, 즉시 북한의 뜻을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당내 서열 9위인 저우융캉 정치국 상무위원을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축하 사절로 보내 김정은에게 마오쩌둥 주석과 김일성 주석이 활짝 웃으며 회담하는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중국은 이 액자에 “중·조의 전통적 우의를 부단·공고하게 발전시키고, 대대로 전하기를 축원한다”라는 내용을 전함으로써 3대 세습을 공식 인정하고 나섰다. 그리고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김정은의 방중을 언급하며 후계 체제를 공식 인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공식 중국 방문이 과연 언제 성사될 것인가이다. 김정은의 방중이 성사되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차기 주자인 시진핑 국가부주석 등과의 면담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 김정은은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서 대외적인 위상을 확립해나갈 것이다.

김정은의 국제 사회 등장이 가시화되면, 이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동북아 대외 관계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대외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핵 문제 때문이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과 5자의 역학 관계는 김정은 시대 핵 문제 해결 가능성과 더 나아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의 전환을 전망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중국의 대북 전략 변화 여부에 열쇠 달려

1998년 9월 ‘강성대국 건설’을 내걸고 출범한 김정일은 2002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고, 2006년 제1차 핵실험과 2009년 제2차 핵실험을 실시해 미국과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 확보와 경제·외교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벼랑 끝 전술’을 전개한 것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완충 지대로서의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혈맹의 전통적 우의를 활용해 미국의 제재로부터 북한에 대한 외교적 보호막 역할뿐만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생존 전술’을 구사해왔다. 한·미 대(對) 북·중,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변형된 신(新)냉전적 구도(2+2+2) 속에서 북한의 균형 전략은 북한의 생존을 지탱해준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 이후 김정은 시대 북한의 생존 전략 또한 김정일 시대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대외 전략에 두 가지 커다란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3대 세습을 통해 이루어진 김정은 체제는 핵을 더욱 포기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핵은 김정일 시대의 최대 선군 유산이다. 김정일의 혁명 위업을 달성해야 할 후계자가 선임 수령의 최대의 혁명 위업을 포기하는 것은 수령에 대한 배신 행위가 될 것이다.

둘째, 김정은 후계 체제는 북한이 전면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적인 개방과 시장의 허용은 생존 차원에서 모색되겠지만, 김정은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임 수령인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하는 것으로 선대 수령의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습 후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결과적으로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미국과의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고, 중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계속 거부하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향후 미·중 간의 ‘균형 전략’을 통해 체제 생존을 지켜왔던 북한의 외교 전략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피하는 완충 지대로서, 또 타이완과의 통합을 위한 교환 카드로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이 지속적으로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핵 개발과 핵 확산을 고집한다면,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G2 국가로서 중국의 입지는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이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북한을 감싸왔던 것은, 북한의 전략적 생존이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로 인한 혼란보다는 중국의 경제 성장과 안정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생존 전략이 중국의 국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즉 북핵으로 인해 동북아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하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확대되는 명분을 제공하면 중국의 대북 전략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 전략이 변하게 되면, 북한의 생존 전략 또한 바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김정은 체제가 버텨낼 수 있는 내구력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러기에 북한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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