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훈련 기간에 ‘수행’은 없었다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0.12.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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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 보도에 나타난 김정은의 최근 행보 / 평양에 남아 군부와 함께 비상 대비 태세 취한 듯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김정은을 데리고 평양의 룡성식료공장에 새로 건설된 간장 공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1월25일 이 사진을 보도하며 정확한 현지 지도 일시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로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을 중심으로 최근 3개월간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아직은 후계자로서 어떠한 특별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당대표자회 직후 금수산 기념 궁전을 방문해 당대표자회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12월 중순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 지도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김위원장의 현지 지도 또는 공연 관람에 16차례는 불참한 것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우선 김부위원장이 현지 지도 또는 공연 관람에 참여한 경우의 성격을 살펴보자. 대부분이 역시 국가 중대사에 치우쳐 있으며, 군사적 성격의 행사와 그렇지 않은 행사 모두에 참가하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10월10일의 당 창건 65돌 열병식과 대경축야회 등이 그러하며, 중국인민지원군 조선 참전 60돌 기념 군중대회(10.26) 역시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밖에도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군부대 방문(11.7), 조선인민내무군 열성자 대회 참가자들을 축하하는 자리, 제522군부대 산하 대동강뱀장어공장 현지 지도에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당 창건 기념 행사,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 등의 현지 지도에는 군 관계자의 참가는 소수이지만 김정은이 참여함으로써 그의 역할이 군사와 일반 국무를 함께 관장하고 있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로동신문에 김위원장과 같은 크기의 사진 실려

둘째, 공장에 대한 현지 지도에도 적지 않은 참여 빈도를 보이고 있다. 희천발전소 현지 지도(11.4) 참여를 비롯해 대안친선유리공장, 평양밀가루공장, 선흥식료공장, 룡성식료공장, 룡호오리공장, 룡정양어장 등을 참관했다. 특히 희천발전소 현지 지도의 경우 보통 6면이나 8면을 발행하던 로동신문을 10면으로 증면했고, 현지 지도를 했다는 기사 하나로 전체 지면을 꾸몄다. 북한의 희천 지역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준다. 또한 기사보다는 사진이 대부분인데 인물 사진 75매 거개가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김정은을 중심으로 촬영한 사진도 여섯 매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일반 공장의 경우 김위원장이 방문한 모든 공장을 수행한 것은 아니며, 특히 과학화된 공장 또는 CNC(컴퓨터수치제어)화된 공장을 방문할 때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셋째, 공연 관람에서도 비중 있는 작품에만 김위원장을 수행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국립교향악단 공연(11.28)이라든가 은하수 <10월 음악회> 결속 공연(최종회) 등은 수행 관람했지만, 가극 <량산백과 축영대> 유의 공연(10.19)에는 불참했다. <량산백과 축영대>는 중국의 민간 전설을 극화한 작품으로 중국 참전 60주년 기념 공연이지만, 이 시기 중국측 방문자들이 당 차원이 아닌 국가 기관의 국방위원회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연극극장 신축에 따른 참관(10.9)에서는 로동신문 1면에 김위원장과 동일한 크기의 사진을 좌우로 게재해 후계자로서 김정은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넷째,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11월30일 김정일 위원장의 룡성기계련합기업소 현지 지도에서부터 12월10일 평양시 경공업공장들에 대한 현지 지도가 있을 때까지 약 11일간 김정은이 수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시기 김위원장은 함흥 경공업공장(12.1), 단천시 마그네샤공장(12.2), 무산광산련합기업소(12.3), 회령시(12.4),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및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12.6) 등을 현지 지도했으며, 여러 지역 공장들에서 CNC 문제들이 언급된 바 있지만, 김정은은 불참한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점과 연관된 것으로 평가된다. 즉, 김위원장은 군사적 위기를 피해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 북한의 최북단 지방을 현지 지도하는 방식을 취했고, 이와는 달리 김정은은 수행을 중단한 채, 평양 등지에서 군사적 대비를 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특히 이 시기 김위원장을 수행한 인물들은 당의 김기남·홍석형 비서와 여동생 김경희, 매제 장성택 등에 불과하며 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군 관련 인사들은 대거 배제되었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이 재차 포사격 훈련을 재개한 12월6일을 전후해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군부 인사들이 비상 대비 태세를 가동한 것이 아닌가 분석된다. 김정은이 12월11일 평양 일원에서 있었던 김위원장의 현지 지도(평양밀가루공장 등)에 다시 복귀하는 모습이 확인된 것 역시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때는 우리 군의 훈련이 종료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김정은 부위원장의 최근 80여 일간의 행적을 볼 때, 후계자로서의 지위가 명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로동신문 전면에 그의 사진이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크기로 게재된 바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향도의 당’, 김정은 지칭하는 새 용어로 등장

특히 최근 로동신문의 ‘정론’을 보면 ‘향도의 당’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 용어는 김정은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10월18일자 정론 ‘대비약의 북소리 더 요란하게 울리자’에서는 ‘‘지원의 사상’으로부터 혁명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라는 강조와 함께, “혁명을 한 대에 다 못하면 다음 대, 그 다음 대에 이어서라도 끝까지 승리해야 한다”라는 신조를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했다는 표현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을 장군님 따라, 향도의 당을 받들어 영원히…”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0월16일자 정론 ‘혁명의 불보라’에서도 “대를 이어 수령복, 장군복을 받아 안은 크나큰 행운 속에서 향도의 당을 우러러 맹세의 함성 높이 울리던 축포의 밤을 영원히 잊지 말자”라고 하여 ‘향도의 당’이라는 용어가 후계자 김정은을 연상케 한다.

지난 11월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을 목도하면서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김정은 후계 구도의 내부 불안으로 인한 대외적 표출 방식이 아닌가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북한의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와는 정반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후계 구도는 예정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기간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북한에 대한 관심 영역은 ‘후계 구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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