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뒷맛 남긴 ‘김기덕 폐인’ 해프닝
  • 최광희│영화 저널리스트 ()
  • 승인 2010.12.2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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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배신설은 사실 무근…영화계 폐단만 드러나

발단은 한 언론의 기사였다. 지난 12월19일, ‘마이스터 김기덕 감독, 배신당하고 폐인됐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인터넷에 올랐다. 이어 이 기사를 인용한 다른 인터넷 언론이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동료 PD와 감독에게 빼앗겼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면서 논란은 더욱 격화되었다. 불똥은 즉시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자 <의형제>를 성공시킨 장훈 감독에게 튀었다. 장감독은 졸지에 스승의 시나리오를 가로채 성공을 거둔 파렴치한 인물이 되었다. 논란이 가열되자 김기덕 감독은 전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가운데 ‘장감독과는 오래전에 화해했다’라는 내용의 해명 글을 써 언론에 보냈다. 억측만 난무했던 ‘폐인 파문’은 결국 해프닝으로 귀착되며 물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 2004년 7월20일 김기덕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 ⓒ연합뉴스


이번 파문은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의한 일회성 해프닝이라고 보고 넘기기에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 쌓여 있던 여러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감독이 <의형제>에서 손을 떼게 된 상황은, 제작사에 대한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횡포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반응이다. 김감독은 “메이저 회사의 이름으로 메인 제작 타이틀과 제작 지분을 원했고 그것을 이견 없이 수용했다. 그럼에도 계약서에 영화 제작이 중단될 시 두 배를 변상하라는 조항이 있어 그 조항만을 한 배로 수정해달라고 부탁하는 중에 감독과 PD를 데려다 직접 계약을 했다”라고 말했다.

충무로 제작자들에 따르면 투자배급사들이 투자금을 미끼로 전횡을 일삼는 사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5백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작을 내놓은 바 있는 한 제작자는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의 수익 지분 비율이 6 대 4에서 7 대 3으로 내려가더니, 최근에는 8 대 2 계약을 요구하기도 한다”라고 토로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획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도 제작사에 떠넘기는 것이 관행화되었다”라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저작권 역시 투자배급사에 귀속되어 추가 수익이 나더라도 원저작자는 받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고 이 제작자는 덧붙였다. 한마디로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제작사뿐만 아니라 감독까지도 줄 세우고 있는 것이 최근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나마 명망 있는 중견 제작사는 기획과 제작 역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7년 한국 영화 수익률이 -40%대로 급락하면서 찾아온 한국 영화계의 장기 침체기와 투자 경색 국면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입지만 더욱 견고하게 다져주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CJ, 쇼박스, 롯데 세 군데 배급사 가운데 하나에 무조건 줄을 대야 산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실제로 메이저 배급사는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제작사 선정까지 영화 제작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개입하는 상황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제작사가 투자배급사의 하청 기업화하고 있는 수순이다. 또 다른 제작자는 “최근 한국 영화가 ‘거기서 거기’인 영화를 양산하는 것은 제작사의 독창성과 자율성이 폭넓게 인정받지 못하게 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의형제> 시나리오도 김감독이 쓴 것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폐인’ 파문이 남긴 또 하나의 해프닝은, 언론 보도 과정에서 <의형제>의 시나리오 작가가 마치 김기덕 감독인 것처럼 둔갑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기획자였던 안동규 프로듀서가 자신의 트위터에 “<의형제> 시나리오 장민석, 각색 김주호·최관영, 이것이 사실입니다”라고 해명한 데 이어 장민석 작가 역시 “<의형제>의 시나리오는 제가 2007년 3월에 탈고한 작품이다”라고 밝혔다. 언론이 이처럼 영화의 원안자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영화계가 시나리오 작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 영화사 북극성 제공
평론가 정성일이 감독 데뷔를 한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농담조로 그의 영화를 예단했다. 인물들이 문어체로 긴 문장을 말할 것이고, 카메라 움직임이 없는 롱숏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책이나 영화의 인용이 가득할 것이고, 상영 시간도 무지 길 것이라고.  

<카페 느와르>는 과연 그런 영화이다. 첫 장면부터 소녀가 정면을 보고 아무런 대사도 없이 햄버거를 우겨 넣는 모습을 4분 이상 비춘다. 1부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고, 2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원전으로 삼는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인물은 문어체 대사를 쉼 없이 읊조리는데, 심지어 정유미는 10분 넘게 혼자 대사를 읊는다. 상영 시간은 3시간 27분에 달하며,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등 유명 영화가 인용된다.

그렇다면 <카페 느와르>는 ‘이론에만 강하고 실전에는 약한’ 평론가의 과욕이 빚은 괴작인가? 그렇지 않다. 영화의 전면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을 잃은 자의 슬픔이다. 그들이 2008년 겨울, 서울을 거닌다. 상실과 슬픔의 정서가 미세한 움직임으로 역사와 정치를 끌어당긴다. 한때 사회주의자였으나 폭군처럼 변해버린 정치인이 아내에게 포도주를 집어던지고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읊는 장면이나, 등불을 든 정유미가 과거가 깡그리 말소된 청계천을 총총히 걷는 장면은 정치와 역사를 환기시킨다.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는 되돌아가 죽은 자를 불러일으키고 싶지만, ‘진보’라는 폭풍이 천사를 떠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역사의 구원은 망각된 것을 기억하며, 미래의 매순간을 메시아가 들어오는 문으로 사유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다. 영화 속 청계천의 옛 모습 그대로 지어진 여관에서 동방박사가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러나 2008년 재야의 종 현장의 집회 역시 메시아적인 사건이었다. 임신한 소녀처럼, 용기를 내자. 그리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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