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 정치 드라마의 현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2.27 15: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 모았던 <대물>이 대중과 소통에 실패한 이유

 

▲ SBS ⓒSBS 제공

우선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 외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정치와 드라마를 붙여놓으면 많은 이들이 외압을 생각한다. 외압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닌지, 혹은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지만 제작상의 분위기에 어떤 압력이 존재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 제작자와 대중의 마음 그리고 사회적 공기(?)에 민감하다. 제작자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대중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자는 또한 사회적인 공기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 그것이 특히 한국이라는 공간 속에서의 정치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것에 민감해지다 보면 자칫 대중과의 고리를 놓칠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해 대중이 바라는 것과, 실제 현실 정치 사이에는 분명하게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본격 정치 드라마를 표방한 <대물>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정치 드라마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대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내세웠고, 현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장면이 드라마에 실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든가, 잠수함 침몰, 아랍 지역에서의 피랍 사건 등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 우리네 정치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현실감은 때로는 드라마에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 초기에 작가가 교체되고 그 여파가 이어져 PD까지 교체되는 상황은 어찌 보면 이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민감함 때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드라마라는 공동 작품에서 어떤 입장의 차이는 드라마 자체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와 PD가 보는 정치는 그렇게 달랐고, 그래서 결국은 교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대물>의 이 초창기 해프닝을 고려하면 드라마의 중심이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어지는 것은 정치권의 이른바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이다. 한나라당 친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 서혜림(고현정)이 박근혜 전 대표를 닮았다는 얘기가 나왔고, <대물>의 인기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었다. 마치 2007년도 대선 때 했던 MBC 드라마 <영웅시대>가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처럼. 실제로 이 드라마 내용 중에는 박 전 대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서혜림이 선거 유세 중에 테러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가 의식을 회복하고는 “유세장은요?”라고 말하는 대사이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박근혜 전 대표는 “대전은요?”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대물>의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와 박 전 대표를 비교해보면 실제로는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닮은 점이 거의 없다. 서혜림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거침없이 하는 인물인 반면, 박 전 대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대물>의 서혜림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 속에는 다른 정치인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탄핵 정국은 물론이고 TV 토론 연설에서 서혜림이 이른바 “회초리를 들어주십시오”라고 했던 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어버이는 국민입니다. 잘하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잘못하면 회초리를 듭니다”라고 했던 내용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정치’처럼 대중의 열광 계속 못 끌어가

결국 <대물>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 정치를 그대로 얘기하기보다는 어떤 이미지화를 하게 마련이다. 현실 정치에서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 정치 또한 공약이나 정책이 아닌 이미지 정치에 그만큼 민감하다는 반증이다. <대물>이라는 드라마를 갖고 ‘제 논에 물을 대는’ 행위는, 선거 때마다 연예인을 앞세워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이 드라마 때문에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그려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혜림을 위시한 몇몇 정치인들을 빼놓고, 조배호(박근형)나 강태산(차인표)의 주변 인물은 거의 모두 거수기나 앵무새 노릇을 하는 정치인으로 그려졌다. 여기에 대해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대물> 때문에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드라마 속 디테일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대물>은 결국 드라마 속으로 숨어버렸다. 즉, 현실을 얘기해도 구체적인 사안은 얘기할 수 없었고, 이상적인 말만 반복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현실 정치가 반영되지 않자 남은 것은 서혜림이라는 영웅 만들기와 드라마라면 늘 등장하는 멜로 라인의 부각, 그리고 가족애라는 카드가 되었다. 서혜림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 과정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못했다. 실제 대통령 선거가 더 드라마틱하게 여겨진다면 그 드라마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선거 과정이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현실이 빠진 드라마 속 캐릭터의 성공이 너무나 허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은 사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몰고 왔다. 그것은 그가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라는 여장부 캐릭터를 통해 현실 정치의 한 자락을 제대로 짚어낸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미실은 국제 관계나 대내적인 정치 사안에 대해 그저 이상적인 주장만 펼치는 그런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때로는 그 역할이 너무나 악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 그 이상으로 그 역시 신라인을 사랑한 정치 지도자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 대중은 침을 뱉기보다는 그의 도전과 한계 그리고 그 현실 정치에 공감했다.

고현정이 겪은 미실과 서혜림, 이 두 캐릭터 사이의 거리감은 바로 작금에 이 땅에서 정치를 드라마로 다룬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아주 가까운 현대사의 인물로 보이는 서혜림이 이상적인 이야기만 반복하는 캐릭터로서 대중과 소통하지 못했던 반면, 1천년 전의 미실은 오히려 지금의 현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중과 소통한다. 현실을 말하기 위해 1천년을 접어들어가야 하는 상황,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소재로 드라마를 한다는 것의 숨은 뜻이다.

사실 드라마와 정치는 많이도 닮았다.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보여주거나 내세울 때 호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속내는 보지 않고 이미지를 주로 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대물>은 그래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미지 정치를 닮았다. <대물>에 대한 초기의 지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것은 아마도 이미지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2010 드라마, 정치를 어떻게 변주했나

정치를 소재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드라마에 정치적 입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는 개발 시대의 서울 강남 땅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과 복수를 그렸지만, 정치적인 입장에는 그 비판과 옹호가 혼재되어 있다. 주인공이 어떤 면에서는 개발의 주동자로 서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의 허무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은 청춘 사극처럼 보이지만 민초와 당시 여성이 겪는 한계를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혁명에 대한 정치적 노선을 드러낸다. <추노>는 수많은 민초가 거의 수평적으로 주인공처럼 등장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정치적 입장을 엿보게 하고, <제빵왕 김탁구>는 막장스런 시대와 싸우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보수적이다. 한편 <파스타> 같은 멜로 드라마는 그 안에 남녀와 셰프와 요리사 사이의 권력 구조와 그 해결 과정을 넣음으로써 나름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