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통일부 ‘NLL 격돌’ 있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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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평화수역’ 프로젝트 비화 공개 / 참모들 반대에도 노 전 대통령 “검토하라” 지시

 

▲ 2007년 남북 정상선언 이행 종합대책위 1차 회의에 앞서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김장수국방부장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7년 7월19일 저녁. 청와대에서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송민순 외교부장관, 김장수 국방부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그리고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둘러앉았다.

이날 회의석상의 냉랭하던 분위기는 NLL(북방 한계선) 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로 치달았다. 그 포문은 김장수 장관이 먼저 열었다. 그는 “NLL 문제는 군사회담에서 다룰 문제이고, 그 주무 부처는 우리 국방부이다. 그런데 왜 다른 부처에서 왈가왈부하는가”라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가 말한 다른 부처는 구체적으로 통일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재정 장관은 “NLL 문제에 대해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고, 또 지금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과의 접촉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서해상 분쟁 지역의 평화적 관리를 위해서는 국방부도 좀 더 전향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다른 참석자들도 이장관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며 김장관을 압박했다. “NLL 문제를 국방부가 아닌 다른 부처는 아예 언급도 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치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NLL이 법적으로 분명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계선인 만큼 북측 입장을 경청하는 자세와 함께 우리 내부의 공론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라는 의견도 덧붙여졌다.

 급기야 김장관이 폭발했다. 그는 “안보조정회의가 다수결 제도인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마녀사냥 아닌가?”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장관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김장수 당시 장관, 회의 중 자리 박차고 나가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NLL은 결국 지금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었다. NLL이 있는 서해상은 오늘날 국지전의 무력 충돌 위험성이 가장 큰 국제적 분쟁 지역이 되고 있다. 당시 임기 마지막 해였던 노무현 정부는 서해상의 분쟁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하든 NLL 문제를 풀고자 했다. 7월19일 청와대 회의가 열릴 당시, 남북 간에는 ‘2차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물밑에서 은밀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7월 한 달 동안 서훈 국정원 3차장과 북한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중국에서 수시로 만나 사전 조율 작업을 했다. 8월4일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최종 합의했고, 8월8일 우리 정부가 이를 공식 발표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NLL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의 주장은 “한국전쟁 직후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NLL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1999년 9월 ‘해상 군사 분계선’을 역시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때부터 서해 NLL 부근 지역은 국지전의 전쟁터가 되어온 터였다.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던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도 NLL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통일부를 중심으로 “이번 기회에 NLL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내부 공론화가 필요하다”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무현 정부 말기 통일부와 국방부 간의 의견 대립은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며 그 수위가 극에 달했다. 국방부는 “NLL은 논의 자체가 절대 불가하다”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통일부는 “서해 수역의 평화적 관리라는 정치적 의제가 왜 군에 의해서 막혀야 하느냐”라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김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라고 배수진을 치며 막아섰다. 청와대의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청와대의 행정관들 사이에서 “국방부장관 외에는 누구도 NLL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니, 그러면 대통령도 거론하지 말라는 말인가”라며 김장관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급기야는 일부 언론에서 ‘국방부장관 경질론’이 불거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의 기류는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김장관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이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백종천 안보실장도 국방부와 통일부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나에 대한 낙마설이 언론에서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물러날 결심까지 하고, 직접 문재인 대통령실장을 찾아가 ‘그것이 대통령의 뜻인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문실장이 ‘대통령께서는 장관을 신임하신다. 절대 낙마니 하는 것은 없다’라고 하더라. 그 이후로도 노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인 나를 많이 신뢰했고, NLL 문제에서 내게 권한을 위임해주셨다”라고 회고했다.

 

‘평화수역 불발’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당시 노대통령은 ‘군인 김장수’를 신뢰했지만, 국지전의 위험성이 너무 큰 서해 수역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시 북한에서 다른 현안보다 우선적으로 NLL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서는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노대통령도 한 번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잘못 건드리면 국민 정서상 자칫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라는 반대 의견이 문실장을 중심으로 개진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내가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아이디어를 냈다. 이것이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수역’ 등으로 발전했는데, 노대통령도 이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당시 국민 여론이 ‘NLL은 영토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청와대 회의에서 NLL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라고 전했다. 고교수는 2007년 8월 당시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청와대 회의에 참석했던 학계 인사들 중 한 명이었다.

NLL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당시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의 견해는 약간 다르다. 그는 “일각에서는 당시 북한이 NLL 문제를 주도했고, 여기에 우리가 끌려간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한다든가, NLL 문제를 북한에 양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려 했던 것으로 항간에서 오해하는데, 이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 NLL은 한국전쟁 이후 경계선으로 이미 굳어진 것이어서 국민 정서상 양보가 불가능했다. 그것은 청와대의 권한도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서해상의 분쟁을 어떻게 하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평화수역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NLL 문제가 워낙 민감하다 보니까 그것을 부각시키지 말고, 대신 평화수역 문제로 풀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국방부에서는 ‘그 기준점도 역시 NLL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거기에 북한이 절대 동의할 리가 없기 때문에 결국 (평화수역은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가 안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장수 의원은 “북한이 무슨 어업 활동 같은 데에 관심이나 있었겠나. 2007년 11월 평양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해보니까 역시 북한의 관심은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이 아니고, NLL 무력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엇보다 공동어로수역이 NLL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부터 문제 아닌가”라고 밝혔다.

김연철 교수는 “발상을 달리 하면, 평화수역으로 인해 우리 영해가 넓어지는 것이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민들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측면에서도 해주로 통하는 직항로를 우리가 열어주고 이를 통해 북한 경제의 개방과 번영을 촉진하게 된다면 우리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NLL 문제를 둘러싼 2007년 여름의 뜨거웠던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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