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대지진…‘미디어 빅뱅’ 막 열렸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1.01.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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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은 미디어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미디어업계 종사자, 학계 전문가, 정책 관리자 등 미디어에 관련된 모든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미디어 빅뱅’을 전망하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종편)과 보도전문 채널의 등장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지상파의 다채널방송서비스(MMS)가 허용되고 광고 규제가 완화되면 매체 간 경쟁은 점입가경이 될 것이다. 이미 가시화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급팽창도 미디어 환경의 대격변을 예고한다. 미디어 빅뱅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미디어업계의 최대 수익원인 광고 시장이 한정된 상황에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진흙탕 경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의 주체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에 힘센 자가 등장하고 절대 강자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서 케이블 TV·위성방송·IPTV 등 유료 방송, 인터넷 미디어, 인쇄 매체 등 상대적 약자들은 모두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미디어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2011년 미디어 빅뱅을 크게 다섯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진단해보았다.  

1. “광고를 잡아야 매체가 산다”…치열한 광고 유치 경쟁

한국광고주협회가 국내 유력 광고회사의 매체 전문가를 대상으로 시장 동향을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0년 광고 시장 규모는 8조1천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2009년 7조2천5백60억원에 비해 12% 정도 상승한 것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한몫했다. 광고업계 전문가들은 2011년 광고 시장 규모는 2010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광고 시장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는데 파이를 나눠먹어야 할 매체는 증가했다. 게다가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전통적 4대 매체 광고비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광고와 모바일 광고 시장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정부와 업계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0.8% 수준인 광고 산업 비중을 1%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이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결국 종편과 보도 채널의 등장, 지상파 광고 규제 완화가 가져올 미디어 빅뱅은 한정된 공간에서의 죽고 사는 싸움으로 귀결될 운명이다. 홍명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정책국장은 “기존 유료 방송 채널 사업자들은 새 종편이 등장하면 어려운 상태로 진입할 것이다. 미디어렙 없이 직접 광고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광고 출혈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종편과 유료 방송 간 광고 수주 경쟁에서 힘의 추가 기울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종편의 주체인 메이저 신문사들이 가진 권력의 힘이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평호 단국대 교수는 “이 시대 언론 권력인 메이저 신문사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강제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광고 협상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케이블 사업자들로서는 합리적 경쟁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종편 등장의 파장이 방송 매체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즉, 인쇄 매체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송종현 선문대 교수는 “방송 시장을 둘러싼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쇄 매체에 돌아오는 광고 물량이 줄어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인쇄 매체도 힘들겠지만 유료 방송 시장의 그것과 비할 바는 아니다. 국내 인쇄 매체에 대한 광고가 사실상 광고 영향력 때문에 이루어지는지 의문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일종의 보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종편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다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2. 종편의 무한 생존 경쟁 가열…시장 논리에 맡겨 버린 무책임한 방통위 결정의 희생양은?

방통위는 결국 종편 선정을 시장의 힘에 맡겼다. 업계에서는 국내 미디어 시장의 상황에서 적절한 종편 사업자 수를 한 개 채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종편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자신들끼리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2~3년 동안 감당해야 할 대규모 적자도 이겨내야 한다. 김평호 교수는 “광고 시장이 급격히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콘텐츠 사업으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사업자들이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종편 선정을 허용과 규제의 시각으로 보려 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종편을 하고 싶은 사업자는 누구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당초 방통위가 막겠다고 나서면서 종편을 공익적 채널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버렸다. 공적 잣대를 드리우는 것은 지상파처럼 한정된 채널 자원에만 한정되어야 한다. 흥하든 망하든 사업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만약 시장에 맡겼더라면 오히려 지금처럼 종편에 너도나도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종편보다는 전문 편성 채널이 사업성이 좋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3. 콘텐츠 시대의 도래…“플랫폼 증가가 콘텐츠 다양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은 미디어 빅뱅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더욱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매체의 증가가 항상 콘텐츠의 다양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케이블TV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도 그랬고, IPTV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채널은 많아졌지만 그 안을 채우는 내용물은 차별성 없는 프로그램과 재방송의 연속이었다. 종편 사업자들이 수천억 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콘텐츠를 접하는 즐거움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강형철 교수는 “좁은 시장에서 사업자가 많아지면 프로그램의 품질이 낮아진다는 것은 실증적인 자료로 증명된 사실이다. 오히려 유사한 유형이 많아지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질적으로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콘텐츠 제작 환경도 콘텐츠 다양화의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불공정 하도급 관행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에서 질적·양적 팽창이 갑자기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콘텐츠 제작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 풀도 부족하고 제작 환경도 좋지 않다. 종편 사업자도 방송을 준비할 때와 본격적으로 방송에 돌입했을 때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4. 종이에서 태블릿PC로…인쇄 매체가 살아남는 법은?

국내 스마트폰 보급은 2010년 7백만대를 넘어섰고, 2011년에는 2천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얼마 전 출시된 태블릿PC도 2011년까지 2백만~3백만대가량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기기를 통한 미디어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2010년 10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에디터포럼에서 향후 5년 안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한 미디어 소비 비중이 3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침체기에 빠져 있는 인쇄 매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희망을 걸고 있다. 신문, 잡지 할 것 없이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기존 콘텐츠를 그대로 옮기는 것에 그치고 있다. 기기에 따라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대와 선호하는 형식이 다르다. 하나의 콘텐츠를 유통시키더라도 각 기기에 어울리는 가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기기별로 전문적인 관리 인력이 있어야 하고, 기기와 뉴스 생산 모두에 이해력을 가진 관리자가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뉴스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각 모바일 기기에 맞는 인터랙티브 형식을 개발하는 일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해외에서 잡지는 대부분 단독으로 인터랙티브 형식을 개발·운영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전문적인 고정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등 지속적인 투자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5. 지상파의 경쟁력 강화…“더욱 강력해진 지상파가 온다”

▲ 최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하면서 전통적인 종이 신문·잡지의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2011년은 다채널 시대를 맞아 위축되었던 지상파가 다시 힘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종편의 등장이 경쟁을 심화시키겠지만 방통위가 준비한 MMS 허용과 광고 규제 완화라는 선물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홍명호 정책국장이 발표한 ‘유료 방송 산업의 전망과 과제’에 따르면, 유료 방송 채널의 상위 30%를 차지하는 프로그램 중 자체 제작은 10%에 불과하고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지상파 콘텐츠 재방송 의존도는 54%에 달한다. 그만큼 국내 방송 시장에서 지상파는 강력한 콘텐츠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채널 확보는 크나큰 선물일 수밖에 없다.

종편과 유료 방송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MMS와 광고 규제 완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방통위가 공공재인 주파수 재배정에 관한 문제를 형평성에 맞지 않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학계에서는 지상파 경쟁력 강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평호 교수는 “수용자, 서비스, 기술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수용자가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판단 기준은 수용자이다. 단 그만큼 공공성에 대한 담보와 사회적 감시는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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