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30분 배달 보증제’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1.03 18: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자업계 점주들도 “폐지하라” 불만 토로…공정위는 ‘업체 영업 이익 행위’ 제재 못한다는 입장

스물네 살의 젊은 청년은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 했던 부모님은 가슴을 치며 오열했고, 그의 누나와 여동생은 이 모습을 보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국내 대형 피자업체인 피자헛에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최 아무개씨는 지난해 12월12일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도중 서울 독산동에서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뇌를 크게 다쳤던 최씨는 급히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9일 만에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사고가 일어난 때는 안타깝게도 최씨가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ㅎ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씨는 취업이 확정되어 1월15일부터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 지난해 12월28일 서울 구로구 한 피자 가게에서 직원이 배달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최씨의 아버지는 “원래 미용 쪽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다. 원하는 직장에 합격해 첫 근무를 앞두고 기대도 많이 하고 있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들이 피자 가게에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배달 일을 하는 줄은 몰랐다. 가게 안에서만 일을 한다고 해서 안심을 했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말리곤 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의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들 사이에 싸움 한 번 없을 만큼 화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씨가 숨진 이후 집 안에는 슬픔과 정적만이 남았다. 12월27일 최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유족들은 벨을 눌러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완강하게 인터뷰를 거부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이 열리고 겨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직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유족들은 최씨의 이름만 나와도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택시 운전기사인 최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고 이후 충격을 견디지 못해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최씨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발인식이 있던 12월24일에 결국 쓰러졌고, 지금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씨는 5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피자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시급 4천5백원에 배달 한 건당 4백원을 추가로 받아왔다고 한다. 최씨처럼 피자 배달원으로 일하는 경우 대개 건당 3백원에서 4백원가량의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점별로 점장의 재량에 따라 아르바이트 시급이 6천~7천원 선을 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대형 피자업체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손 아무개씨는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의 경우 위험한 만큼 시급이 센 편이다. 그만큼 일이 힘들기 때문에 평소 배달 일을 하려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방학 기간에는 학생들이 꽤 몰린다. 높은 시급에 한 건 배달을 할 때마다 3백원 정도의 인센티브가 붙다 보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모으려는 학생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생은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연령대가 낮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 종사하는 일임에도 이들에 대한 안전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서울 구로구의 한 피자업체에 찾아갔을 때 매장 앞에는 시동을 켜둔 오토바이가 즐비했다. 눈이 내려 거리가 꽤 미끄러웠는데도 피자 배달원들은 피자를 들고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질주했다. 자칫 최씨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아찔한 모습이었다.    

 최근 최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피자업계에서는 ‘30분 배달 보증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국내의 대형 피자업체들이 실시하고 있는 ‘30분 배달제’는 각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30분 내로 피자를 배달해주지 않을 경우 피자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무료로 하는 제도이다.

최씨가 근무했던 한국 피자헛측에서는 그동안 ‘30분 배달 보증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한국 피자헛 ‘미스테리 쇼퍼’의 점검 목록 문서에는 ‘서비스 신속성’이 평가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피자헛 매장 배달 서비스’ 기준에는 서비스 속도를 평가하는 항목이 있는데, 만일 30분 이내 배달을 못한 경우에는 100점 만점에서 20점을 감점하도록 되어 있다. 또 고객 주문 시 30분을 초과해 시간 이내에 배달되지 못한 경우에도 10점이 감점되고, 이후 1분 초과 때마다 추가로 1점씩 감점이 된다. 반대로 20분 이내 배달을 약속하고 25분 이내로 시간이 단축될 경우에는 10점의 추가 점수가 부여된다.

 

배달원들의 속도 경쟁 부추기는 업체도

이 제도에 대해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은 12월23일 정부 과천 청사 앞에서 열린 ‘청년들의 생명을 식게 하는 30분 배달제 중단하라’라는 기자회견에서 “피자업계에 존재하는 30분 배달제가 결국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라고 꼬집었다. 조금득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현재 공식적으로 30분 배달 보증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형 피자업체는 도미노이다. 하지만 미국의 도미노는 이미 30분 배달 보증제를 폐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한국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도미노 이외에도 대부분의 피자업체가 암암리에 30분 배달제를 고수하고 있다. 피자헛에서 배달 한 건당 4백원가량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 또한 사실상 배달원들의 속도 경쟁을 부추기는 요소가 되고 있다. 위험한 배달 경쟁이 결국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피자업계의 ‘30분 배달 보증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각 매장의 점주들 역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도미노의 경우 ‘도미노가맹점주협회(도가회)’에서 이미 몇 년 전부터 점주들이 ‘30분 배달 보증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해왔다고 한다. 현재는 본사의 압력으로 도가회가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30분 배달제’를 폐기하라는 것이 도가회 소속 점주들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도미노 매장의 한 점주는 “우리는 주로 7분 이내 거리의 주문을 받고 있는데도 30분이라는 배달 시간을 지키기 어렵다. 아파트 진입로를 통제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건물의 층수가 높아지는 등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 주문이 70%가량이다. 30분이라는 배달 시간 때문에 인터넷 주문 같은 경우는 저절로 양적으로 주문 제한이 걸린다. 30분 배달 보증제로 주문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없어지면 오히려 주문량은 늘어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판매 수입은 더 좋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30분 배달 보증제’에 대한 비난이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지만 피자업계는 여전히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 도미노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주문에서부터 피자를 굽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2분에서 15분 정도이다. 또 가맹점 허가 역시 12분 내에 배달이 가능한 구역만 받을 수 있다. 또 주문량이 폭주할 때에는 미리 배달 시간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지하고 주문을 받는 등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30분 배달 보증제 등은 업체의 영업이익을 위한 행위이므로 법적으로 제재가 불가능하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효적인 예방 대책은 ‘30분 배달제’ 중단뿐”

▲ 지난해 12월23일 정부 과천청사 정문 앞에서 ‘청년 배달 노동자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청년유니온

최씨의 사망사건으로 인해 오토바이 배달원들의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고용노동부는 뒤늦게나마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12월28일 고용노동부는 ‘서비스업 재해 예방 대책’의 하나로 겨울철에 자주 발생하는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가 발표한 안전 대책은 대형 체인점에 재해 예방 자료를 배포하고 내년 1월 안전 점검의 날에 ‘배달 사고 예방 집중 캠페인을 실시하며, 텔레비전·라디오·지하철방송 등을 통해 배달 재해 관련 안전 문화 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조금득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피자업체들이 관행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30분 배달 보증제’를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또한 15세 어린 나이에 피자 배달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피자 배달원의 나이에 대한 기준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다른 시민단체 및 인권단체와 연계해 더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