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축사가 대재앙 불렀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1.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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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AI 확산 배경으로 열악한 사육 환경 지적…소독제·백신보다 근본적인 예방책 마련해야

구제역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된 배경은 가축의 사육 환경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평소 충분한 사육 공간을 확보하는 등 가축을 사육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힘쓰는 예방 활동이 백신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제호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삼성서울병원 교수)은 “가축도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면역력이 강해지는데, 현재 사육장은 소나 돼지가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좁다. 가축이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항생제 투여, 사료 공급만 늘려서는 가축 전염병을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막기 위해 사육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 구제역이 확산 조짐을 보이던 지난해 12월8일 강원 춘천시의 한 돈사 돼지들이 농민이 뿌리는 소독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은 고기와 우유만 많이 생산하려고 연구했지, 가축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국내 가축의 사육 환경은 미국 등 외국의 사육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전통적인 사육 방식을 버린 것이 화를 부채질했다고 입을 모은다. 가축을 방목하지 않고, 과거의 외양간보다 좁은 축사에서 많은 수의 가축을 사육한다. 그러다 보니 가축의 운동량은 줄어들고, 항생제 투여 빈도는 높아졌다. 여물 대신 사료를 먹인 지도 오래되었다.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육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기도 북부 지역에 있는 양돈 농가를 돌아본 결과, 돼지가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틀 안에 갇힌 채 사육되고 있었다. 돼지는 이른바 ‘먹고, 자고, 싸는’ 생리적인 일만 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육 방식은 육류나 우유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가축 건강에는 역효과를 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제호 교수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아직 전염병 대책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이번 구제역의 경우만 보더라도 바이러스가 퍼진 후에 소독제를 살포하거나 백신을 챙기는 데에 급급하다. 사실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파되므로 도로를 막고 방역한다고 해서 확산을 막을 수 없다. 결국 많은 가축을 희생시킨 후에 병원균이 스스로 잠복기로 되돌아가기를 고대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근본적인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농장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렬로 늘어선 양계장의 좁은 공간에 닭과 오리가 갇혀 있다. 모이와 물만 공급하는, 말 그대로 ‘닭장 형태’ 양계장은 AI(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이 확산하기 좋은 환경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대 조류질병학 교수는 “농장 면적에 비해 많은 수의 닭이나 오리를 키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농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AI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AI가 발생했을 때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될 소지는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밀집된 가금류 농장은 ‘바이러스 화약고’

▲ 지난 1월4일 경기 파주시 광탄면 구제역 감염 가축 매몰 현장에서 침출수로 인한 구제역 2차 피해가 발생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지난해 구제역이 발생했고 최근 들어 고병원성 AI가 농가 2~3곳에서 발견되었다. 먼저 발생한 구제역에 대한 방역이 이루어지면서 AI 전파 속도는 주춤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고병원성 AI는 구제역과 달리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만큼 더욱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 가축 전염병이 생긴 이후에 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에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김재홍 교수는 “AI가 한국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철새, 즉 야생 조류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야생 조류가 AI를 옮길 것이라는 추정만 했는데, 최근에 철새가 AI를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말은 전국에 이미 AI 바이러스가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밀집된 가금류 농장은 마치 화약고와 같다.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른다. 따라서 야생 조류와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금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철새 도래지에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AI 감염 조류와 접촉한 후에 농장에 있는 가금류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영기 충북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도 “철새가 먹잇감이 떨어지면 양계장이나 오리 사육장으로 찾아온다. 이때 가금류와 조류가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 이를 차단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전국 아홉 개 대학 수의대가 야생 조류를 관찰하고 있는데, 한 해 약 1백50마리를 포획해서 연구하는 것이 고작이다. 전체 야생 조류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철새에 대한 감시·연구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일본은 수의대에 야생 조류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배치했다.

야생 조류에는 비둘기도 포함된다. 아직 비둘기가 AI를 옮긴다는 확증은 없다. 지난 2008년 서울에 사는 비둘기 20마리를 포함한 야생 조류 60마리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조사했지만 AI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조류학자들은 비둘기가 사람과 접촉할 가능성이 큰 조류이고, 비둘기 똥에는 다른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도 서식할 수 있는 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구제역에 AI까지 유행할 경우 최악 대란

구제역은 지난해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되어 1월7일 현재 전국 58개 시·군으로 퍼졌다. 소와 돼지 1백7만 마리가 매몰 대상이다. AI는 지난해 12월31일 전북 익산과 충남 천안에서 발생했고, 지난 1월5일 전남 영암의 오리 농장에서도 의심 신고가 접수되었다. 한반도에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발생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구제역 바이러스와 AI 바이러스가 섞여 더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구제역이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AI까지 대유행하면 전국은 대란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데 있다. 방역 인력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방역에 투입된 공무원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는 “평소에 축산농가와 가금류 농장에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 마련은 어느 한 쪽만의 숙제가 아니다. 정부, 농가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구제역 백신 접종을 소뿐만 아니라 돼지로도 확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구제역 백신 생산을 금지하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진 사례가 없어 생산 시설, 인력 투자 대비 상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물 백신 전문 업체인 중앙백신연구소 관계자는 “투자 대비 효율성과 생산 과정에서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구제역 백신 생산은 금지되어 있다. 향후 생산 계획도 없다”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구제역 피해 농가 ‘정신 건강’ 상담 나서

서울대병원은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살처분하는 데에 따른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농민과 방역요원을 위해 홈페이지(www.snuh.org)에 정신 건강 상담코너(Q&A)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선별 검사(자가진단)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이 코너에는 정신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질의ㆍ응답 게시판이 마련되며 정신 건강 평가 기준, 관계 기관 리스트 등 관련 정보도 제공된다.

구제역이 급격히 확산하고 장기화 경향을 나타내면서 피해 농가와 재해 지역 주민은 물론 방역요원들에게서 급성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살처분 이후 충격이나 직업에 대한 회의를 견디지 못하고 이후 직업을 바꾸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만큼 살처분은 인간에게도 정신적인 충격을 준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선별 검사(PC-PTSD)

금번 구제역 파동 중 방역 작업(특히 살처분 등)에 참여한 후 지난 한 달간 다음과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는가?

1. 이 사건에 대한 악몽을 꾸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떠오른다.  

2.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거나, 비슷한 장소나 상황에 처하는 것을 자꾸 피하게 된다.  

3. 자꾸 주위를 경계하고 되고, 조심스러워지거나 쉽게 놀라게 되었다.  

4. 다른 사람, 활동, 혹은 주변 환경에 대해 별 느낌이 없거나, 소원하다고 느껴진다. 

(위 항목 중 세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전문적인 검진을 받을 것을 권한다.)



 가축 전염병,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은?

일반인은 가축 전염병이 혹시 사람에게 옮지 않을까 걱정한다. 미국 동물보호단체(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공중보건과 가축사육국의 마이클 그레거 국장(전문의)은 <시사저널>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매우 드물지만 사람도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1884년에는 구제역에 걸린 젖소의 우유를 마신 사람이 구제역에 걸렸고, 1966년에는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과학자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에 대해 박봉균 서울대 수의대 수의미생물학 교수는 “두 사례 모두 구제역을 연구하던 사람이 걸린 것이다. 일반인이 구제역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육류 섭취가 아니라 호흡기로 감염될 가능성은 있다. 농장주, 수의사 등 가축과 직접 접촉하는 사람은 코에 바이러스가 생존할 수 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수의사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다른 가축에 옮긴 사례가 국내에서 발생했다. 물론 구제역은 인수 공통 전염병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구제역과 달리 고병원성 AI는 장기간 접촉하면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 2004년 베트남과 태국 등지에서 사람에게 전염된 사례가 있다. 기침, 발열, 근육통 등 독감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고병원성 AI가 2003년·2006년·2008년 잇따라 발생했지만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AI의 사람 감염은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했다. 닭이나 오리를 마당에서 기르면서 아이들과 접촉하는 빈도가 높다. 또 닭이나 오리가 질병으로 죽어도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육 방법은 위생적이어서 일반인이 감염될 확률은 낮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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