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북 사이 ‘샌드위치’ 되나
  •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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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 둘러싸고 미국과 미묘한 입장 차 드러나…북한도 돌연 대화 공세로 방향 바꿔

새해 들어 한반도에 다시 격동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해까지 고수했던 한국의 ‘기다리는 전략’과 미국의 ‘전략적 인내’로는 핵 문제 등 북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한·미 양국이 6자회담 재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스티븐 보스워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국, 중국, 일본 등을 방문해 6자회담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그 대표적인 징후이다. 그 배경은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3일 청와대에서 참모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신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원칙·진정성·전제 조건 강조

첫째, 1월19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현안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미·중이 서로 얼굴을 붉힌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1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만남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주 의제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보스워스의 이번 방한은 미·중 정상회담 사전 정지 작업 차원의 움직임인 셈이다. 중국 양제츠 외무장관과 일본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이 잇따라 워싱턴을 방문하는 것도 역시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동북아 관련국의 민감한 반응을 대변한다.

둘째, 미국이 ‘전략적 인내’ 전략의 재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2년 동안 한·미 공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은 향상되고 도발의 빈도가 잦아지자 북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6자회담 재개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금융 위기 등으로 세계 문제에 예전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미국이 중국과 공동 보조를 취하기 위해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해 상관자’(stakeholder)인 중국과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서둘러 6자회담 재개를 모색하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곧 열릴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 흐름에 큰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화 분위기 모색에 대한 미국의 이런 조심스런 입장 변화와는 달리, 여전히 한국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성사 여부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대화 태도에 달렸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의 ‘고집’을 답답해하는 분위기가 미국 현지에서 감지되고 있다. 겉으로는 한국 정부의 ‘선(先) 남북 대화’ 요구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에 상당히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추진 중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으로서는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5일 방한한 보스워스 대표는 북한에 제시할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내 주머니(pocket)에는 조건이나 목록(list)이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스워스 대표는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의 협의를 통해서 양국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포함한 모든 핵개발 활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등의 조건을 협의해왔고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미 양국은 북한에 6자회담 전제 조건을 제시한 뒤 북한의 호응에 따라 남북 대화를 거쳐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 및 다자간 협상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긴밀한 한·미 협조 관계의 이면에는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한·미 동맹을 고려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입장에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앞으로 남북 대화의 진전 여부를 지켜본 뒤 일정한 시점이 되면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독자적인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미국이 최근 남북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6자회담 재개에 속도를 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원칙, 진정성, 전제 조건 등을 강조하는 데 반해 미국은 ‘건설적 협상’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진지한 협상이 북한을 다루는 전략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하고 북한에 대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되 “(북한과의) 대화가 건설적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가운데 대화에 나가는 것이 ‘굴복’ 또는 정책 전환으로 인식되는 데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갈등 고조 속 북핵 능력 커지는 것도 부담 

▲ 지난 1월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가족이 휴가지에서 돌아오고 있다. ⓒAP연합

남북 대화 선행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한·미 양국을 의식했음인지,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북 대화를 강조하고 연일 대화 공세를 펼치고 나서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1월5일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합 성명’을 통해 ‘실권과 책임을 가진 당국 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고, 여기에 북한이 조건 없는 남북 대화를 제의하고 나섬으로써 이제 한국 정부의 정책 선택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집권 4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가 올해 남북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면 임기 말까지 남북 갈등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남북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미 공조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핵 비확산 노력에 제동을 거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갑작스런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남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을 철회하고 당국 간 대화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몰릴 수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을 재개해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이 있는 행동을 추동하는 것이 ‘9·19 공동성명’(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한 것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성명)의 동시 행동 원칙에 맞다”라는 국내외의 압박에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북한 ‘불량 국가론’과 ‘급변 사태론’을 고수하는 한 대화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직구만 고집하다 홈런을 얻어맞은 한국 외교가 올해 변화구와 유인구를 구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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