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에 빠져든 충무로‘아이돌 영화’ 쏟아낸다
  • 라제기│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1.01.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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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플라잉 걸즈> 등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잇따라

충무로가 아이돌에 빠져들고 있다.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10~20대 팬을 노리던 1차원적 전략을 벗어나 아이돌 그룹의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가 잇달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돌 영화의 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스릴러, 휴먼 코미디, 드라마 등 아이돌을 다루는 장르도 각양각색이다. TV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이어 바야흐로 충무로도 아이돌 전성시대이다.
 

▲ ⓒ영화인 제공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에 대한 영화들

2월 개봉 예정인 스릴러 <화이트>는 멤버가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인기 걸그룹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 함은정 등이 출연하며 <고갈>과 <방독피> 등으로 독립영화계의 별로 떠오른 김곡·김선 형제 감독의 신작이다. <화이트>는 아이돌이 출연하는, 아이돌에 대한 첫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충무로의 눈길을 끌고 있다.

라희찬 감독(<바르게 살자>)이 메가폰을 쥘 <해피 투게더>(가제)는 보이그룹의 무대 뒤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사고로 탈퇴한 한 멤버를 대신해 보이그룹에 픽업된 인디 뮤지션과 기존 멤버의 갈등을 지렛대 삼아 아이돌 그룹의 삶과 쇼 비즈니스의 이면을 들춘다. 2PM 전 멤버로 많은 팬을 거느린 박재범이 출연한다.

휴먼 코미디 <플라잉 걸즈>는 콩가루 걸그룹의 갈등과 우정을 웃음기 어린 성장담으로 그려낸다. 4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 이 영화는 유명 걸그룹 멤버 두 명의 출연을 거의 확정지었다.

최근 아이돌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향을 반영한다. 젊은 층에서나 인기 있던 아이돌 그룹이 중·장년층으로 팬층을 넓혀가면서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른 현실에 충무로가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추석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준비 중인 <오빠>는 아이돌 그룹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 남매가 노래를 통해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내용을 그릴 이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옛 직업은 아이돌 그룹 멤버이다. <오빠>의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관객들이 익숙해하고 호감 갖는 직업군을 찾다 보니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아이돌 넘어서야 흥행 성공 가능”

아이돌 영화가 붐을 이루는 이유에서 K-팝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소녀시대와 카라 등 걸그룹이 일본 가요 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으면서 일본 관객도 잠재적인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위상도 아이돌 영화 제작을 부추기고 있다. 아이돌 영화가 아이돌 캐스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플라잉 걸즈>의 제작 관계자는 “아이돌을 캐스팅하지 않고서는 자본을 끌어모으기 쉽지 않고 제작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화이트>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라고 밝혔다.

여러 가지 사업 잠재력을 지닌 점도 아이돌 영화의 매력이다. 한 제작사는 아이돌 영화를 통해 아이돌 그룹을 새로 만들어내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영화 속 노래로 이루어진 음반 판매도 무시할 수 없는 부수입이다.

팬덤을 등에 업은 아이돌 영화라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아이돌을 내세운 영화이지만 정작 아이돌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플라잉 걸즈>의 한 관계자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만 끌어들여서는 성공할 수 없다. 자칫하면 뮤직비디오 장사로 비칠 수 있으니 이야기를 더 내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주필호 대표도 “기획 상품으로 여겨질 위험이 많다. 아이돌 캐릭터만 보이지 않고 이야기에 충실해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밀라노 재벌가의 며느리 엠마는 존경받는 아내이자 세 남매의 자상한 어머니이다. 훌륭한 저택, 잘 자란 아이들 그리고 자상한 남편과 시부모님. 그녀의 일상은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 에도아르도가 집안의 공동 후계자로 지명된 시아버지의 생일 이후, 이 완벽한 가문에 기이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엠마는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와의 만남으로 알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히고, 딸은 감추고 있던 정체성을 고백해 온다. 마침내, 균열은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그니노의 영화 <아이 엠 러브>는 흥미롭고 신비스러운 작품이다. 일견 영화는 평범한 불륜 치정극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통과 감성, 이성과 현대의 충돌이 심어져 있다. 여인의 열정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지만 주변 인물과의 관계,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밑그림 또한 놓치지 않았다. 과감한 시간의 생략과 섬세한 디테일이 공존하며, 풍요와 공허를 동시에 담아낸 영상이 아름답다. 비정형적 요소와 정형적 요소가 혼재되었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존 아담스의 음악이 불러오는 영상과의 화학 작용 또한 뛰어나다. 이야기와 인물을 따라 상승하고 하강하는 음악은 영화의 질감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의 방식도 인상적이다. 눈 내린 이탈리아 밀라노의 풍경에서 시작된 영화는 산레모를 거쳐 런던을 오간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 영화의 색감도 변화하며 계절, 주인공의 심리 또한 변화를 겪는다. 고급 저택만큼이나 묵직한 밀라노에서 엠마는 한 가정의 어머니, 아내, 며느리로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격정을 만난 후 산레모에서의 엠마는 영상과 함께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틸다 스윈턴의 섬세한 연기는 두말할 것 없는 명불허전. 그녀는 러시아 액센트의 이탈리아어를 무리 없이 구사하며 절제를 생활화한 인형 같은 여인에서 격정에 휩싸인 아름다운 중년으로 변모한다. 그저 그녀의 눈빛 하나로 모든 상황이 이해될 정도이다. 이쯤 되면 감독이 11년이나 틸다 스윈턴을 생각하며 작업을 해왔다는 이야기가 납득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이 엠 러브>는 오랜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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