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아이까지 ‘잡는’ 철권 통치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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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지난해 12월 대선 후 후유증 심각…4선 대통령에 저항하는 야당 인사들 잇달아 체포

다니엘 사니코프는 세 살배기 남자아이이다. 이 아이가 벨라루스 정치의 시한폭탄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독재 정권이 명멸했지만 세 살 아이를 정권 연장의 볼모로 삼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 전무후무한 괴변이 옛 소련 위성국 벨라루스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월9일 ‘벨라루스 정부, 정적의 아들 구금 위협’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다니엘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패배한 후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혐의로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다.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부모를 잃은 다니엘은 74세의 외할머니 칼리프와 함께 살고 있다. 정부는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조만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말이 보호이지 고아원으로 보낼 것이 확실하다.

믿어지지 않는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1994년부터 16년째 이 나라를 철권으로 통치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12월 선거에서 관권을 개입시킨 부정 선거로 4선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그의 당선을 선포한 날 밤, 전국에서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아직도 옛 소련 비밀경찰 KGB로 불리는 보안군은 야당 후보 아홉 명 가운데 일곱 명을 체포하고 7백명 가까운 시위자들을 검거했다. 야당과 조금이라도 연루된 인사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 지난해 12월21일 영국 런던에 있는 벨라루스 대사관 앞에서 벨라루스 야당 대선 후보인 안드레이 사니코프의 여동생이 안드레이 부부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야당 후보 부부 감금…세 살 아들은 ‘볼모’로

그러나 루카셴코는 모든 독재 정권들이 통상적으로 쓰는 수법에서 한  발짝 더 나갔다. 세 살 아이를 야당 탄압의 도구로 이용하는 묘수를 찾았다. 기발한 신종 수법에 세계가 놀랐다. 부모는 수용소로 가고 아이는 고아원에 강제 수용되는 날 이 나라는 스탈린 시대, 아니 이를 능가하는 동토 시대로 돌아간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상상도 하기 싫지만 악몽을 떨칠 수 없다”라고 아이의 외할머니는 말했다.

12월19일 밤 수도 민스크의 중심가는 수천 명의 시위대로 메워졌다. 루카셴코의 일방적 승리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평화적 시위 군중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구잡이로 검거했다. 바로 이날 밤 아이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니코프와 저명한 기자인 그의 아내 이리나 칼리프도 체포되었다. 아버지는 체포 당시 심한 구타를 당해 두 다리가 부러졌다고 변호사는 전했다. 체포된 인사 중 20여 명은 불법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15년 징역형을 받을 위험에 처했다. 체포된 사람들은 민스크 중심부에 있는 KGB 수용소에 감금되어 변호사 접견이나 가족과의 면회도 차단된 상태이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딸이 끌려간 후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으나 정부로부터 “아이를 잘 돌보라”라고 지시하는 편지를 받았다.

외할머니는 딸이 선거 전부터 아이와 관련된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한 이메일은 “당신 자신보다는 아들을 걱정하라”라고 충고했다. KGB는 다니엘의 부모를 체포한 직후부터 아이에게 눈독을 들였다. 외할머니는 음식과 옷을 전하기 위해 KGB 수용소에 갔다가 긴급한 전화를 받고 외손자의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정부 복지 기관에서 온 두 명의 여자가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들은 친절한 척하면서 할머니에게 분명히 경고로 들리는 말을 했다. “아이를 돌볼 재정적 형편이 안 되거나 힘이 부치더라도 걱정하지 마시오. 아이가 결코 홀로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오.”

정부에 관한 비판적인 보도 때문에 딸이 자주 KGB의 조사를 받는 것을 보아온 외할머니는 여자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챘다. 딸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문제의 복지 기관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다니엘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정부는 다니엘이 외할머니와 함께 있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아이의 ‘보호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현재 집에서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고 있다. 부모가 체포된 후 아이의 집에는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장난감과 과자 등을 주고 행운을 빈다는 격려의 말을 해준다. 아이는 아직 부모가 체포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외할머니는 손자에게 아빠·엄마가 출장을 갔다고 말하고 있으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챈 것 같다고  전했다. 다니엘은 “아빠와 엄마가 여행을 갔다면 왜 날 데려가지  않았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다니엘에게 목욕을 시키자 “아빠는 머리를 그렇게 감기지 않는다”라며 울었다. 정부는 다니엘을 양육할 조건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한다며 할머니의 신체를 철저하게 검사했다. 심지어 다니엘에게는 에이즈 및 매독 검사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한 조치라고 정부는 설명했으나 이 일을 전해들은 인권 단체들은 전례가 없는 반인륜 행위라고 비난했다. 

다른 야당 후보자들의 가족도 협박을 받았다. 수시로 KGB에 불려가서 장시간 신문을 받았다. 어느 가족은 출국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KGB는 선거 후 몇 주 동안 전국을 수색해 반체제 전력이 있거나 시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대거 체포했다. 그 자신이 KGB에 소환되어 신문을 받고 온 한 여성은 단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은 없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는 옛 소련 시절부터 가장 탄압적인 위성국으로 악명이 높았다. 루카셴코는 지금 그 독재 정권의 수명을 무한정 연장하는 새로운 증거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는 자신의 독재에 저항하는 일체의 도전을 분쇄하는 것이다. 탄압의 마수는 마침내 세 살짜리 아이에게까지 미쳤다. 유럽 안보협력기구가 부정 선거를 비난하자 루카셴코는 이 기구를 추방했다.

각국 규탄 성명 발표…경제 제재도 준비 중

▲ 지난해 12월20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수도 민스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

각국으로부터 비난과 규탄이 쏟아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폭압적 조치를 규탄하고 야당 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벨라루스의 인권 운동가들을 면담함으로써 압박 강도를 높였다. 2006년 부정 선거를 계기로 이 나라에 제재를 가한 미국은 추가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 EU도 금융 및 경제 원조를 재고할 태세이다. 폴란드는 벨라루스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한편 바르샤바에 벨라루스 야당 인사들을 위한 시설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 밖에 스웨덴, 독일, 영국, 체코슬로바키아도 EU의 조치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2006년 선거 당시 취했던 루카셴코와 그 나라 국민에 대한 EU 여행 금지 조치도 부활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국과 EU는 무슨 수를 쓰든 루카셴코로 하여금 권력 남용의 대가를 비싸게 치르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루카셴코는 자신만만하다. 자신의 ‘형님’ 격인 러시아와의 관계만 돈독히 하는 한 만사가 잘될 것으로 믿고 있다. 최근 벨라루스와 석유 및 가스 협정을 체결한 크렘린은 도둑맞은 선거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루카셴코의 강압 통치를 반기는 눈치이다. 사실상 푸틴 총리가 지배하는 러시아 자체가 스탈린 시대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침묵은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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