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초선 의원들 절반, “당·청 갈등 고조된다”
  • 감명국·반도헌 기자·이진주 인턴기자 ()
  • 승인 2011.01.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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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친이계 초선 의원 30명 인터뷰 / “이대통령 인사 스타일이 문제” 40%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직후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거침없이 칼을 빼들었다. ‘정치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정치인 상당수를 공천에서 배제시키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표를 따르는 ‘친박계’측은 “친이계의 정적 죽이기 차원의 공천 쿠데타이다”라고 극렬히 반발했지만, 새 정치를 갈망하는 지역 유권자들은 이들 정치 신인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약 70명에 이르는 한나라당 지역구 초선 의원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이제 당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 되었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김성식·정미경 두 명의 초선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 홍정욱·김성태 의원 등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지난해 12월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안상수 대표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소장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당장 오는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본인이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비하려면 당내 소장파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여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정동기 사퇴’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지난 1월12일부터 14일까지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지역구 초선 의원 3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실시했다. ‘범친이계’의 우산 아래 있지만, 또 ‘민본21’ ‘이재오계’ ‘이상득계’ ‘MB 직계’ ‘중도 성향’ 등으로 세분되는 만큼 그런 소계파와 지역도 안배해서 의원들을 골고루 접촉하고자 노력했다. 인터뷰에 응한 의원들의 목소리에는 대체적으로 위기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은 매우 어렵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일단 자제하겠다”라며 인터뷰를 고사한 의원들의 어두운 목소리까지 감안하면 친이계 초선 의원들이 집권 4년차의 현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불안해 보인다.


▶ 정동기 후보자 사퇴를 요구한 당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하는가?

12명의 초선 의원이 당 지도부의 결정에 지지를 보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잘못된 인사를 당에서 지적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다소 기분 나쁠 수는 있겠지만, 정치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지 왕한테 아뢰듯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의원은 “1차적인 책임은 청와대의 인사 잘못에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이것을 보약으로 삼아야지 무조건 불쾌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지금까지 당이 너무 제목소리를 못 낸 채 청와대에 끌려다닌 측면이 있었고, 지역 민심도 실제로 그렇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번 일은 새로운 당·청 관계를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설사 당이 이번에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에서 다소 매끄럽지 못했다는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찌 되었든 큰 틀에서 보면 잘한 것이다”라는 입장도 있었다.

“당 지도부의 의견 표명에는 공감하지만, 방식에서는 문제가 있었다”라는 ‘부분 동의’ 입장을 피력한 의원도 일곱 명이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방식에서 다소 급작스럽고 즉흥적인 면이 있었다. 당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너무 경직된 태도로 임해서 오해의 소지를 만든 측면은 좀 아쉽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30명 가운데 19명이 당 지도부의 의견 표명 내용에 찬성한 셈이다.

반면, 당 지도부의 행동을 비판한 의원은 여덟 명이었다. “당의 임무가 민심을 전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권의 갈등을 초래하는 이런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는 목소리였다. 서울의 한 의원은 “집권 여당의 지도부로서 물밑에서 충분히 청와대와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국민들이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 지도부가 성급했던 감이 없지 않다. 초선들이 들이대는 것도 아니고, 당 지도부라는 무게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라고 비판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이런 식이면 여당이 야당과 무엇이 다른가. 의원총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청와대와 내부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은 거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들 가운데 세 명의 의원은 “정후보자 임명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도 보였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공직자 검증이라는 것은 기존에 계속해왔던 것과 비교해 형평성이 맞아야 하는데, 정후보자의 경우 불법·탈법이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최소한 청문회 과정은 거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나머지 세 명의 의원은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다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며 입장을 유보했다.

▶ 이번 정후보자 사퇴 파동의 핵심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대다수 한나라당 친이계 초선 의원은 “이번 사태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은 청와대에 있다”라고 답했다. 모두 23명이 청와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가운데서도 12명의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인천·경기 지역의 한 의원은 “헌법상 독립 기구에 대통령 비서 출신을 앉힌다는 그 발상 자체가 발칙하다. 인사 라인이 잘못했으면 인사 라인이 책임져야 하고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대통령이 반성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참모 기능의 역할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여섯 명)도 있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정후보자가 공직에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감사원장이라는 자리를 생각할 때 이런 여론 흐름이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안 된다는 말을 못한 보좌진의 눈치 보기 행태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대국민 소통 의지가 부족했다는 의견을 낸 의원도 다섯 명에 달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진솔한 대국민 설명이 필요했다. 여론이 안 좋으면 그 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고민이라도 설득했어야 한다. 청와대의 일방식 통행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반면 당 지도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원도 다섯 명이 있었다. 서울의 한 의원은 “그동안 당 지도부가 솔직히 ‘청와대 심부름센터’라는 비판까지 들은 것이 사실 아닌가. 처음부터 잘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질질 끌려다니면서 여론 전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은 당 지도부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수 의견이지만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을 문제 삼은 의견(두 명)과 ‘너무 엄격한 공직자의 도덕성 잣대’를 지적한 의견(한 명)도 눈에 띄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야당의 마녀사냥식 논리에 당한 것이다. 민주당은 공공연하게 김태호 총리 낙마 이후 정후보자까지 낙마시켜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가하겠다는 전략을 밝혀왔다”라고 말했다.

▶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당·청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향후 당·청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한 의원은 절반인 15명, ‘일시적인 현상으로 향후 봉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의원이 13명이었다. 두 명의 의원은 입장을 유보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지금까지 청와대의 인사 스타일로 보았을 때 앞으로도 청와대는 ‘마이웨이’로 갈 것이다. 이번 일이 있었다고 해서 갑자기 당의 말을 들을 청와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당도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있기만은 어렵다. 따라서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국민들이 보기에도 불편한 상황들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청와대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임무 아닌가. 갈등이 노출되면 안 되니까 견제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당은 넋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냐”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의원은 “결국 선거에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이기 때문에 당에서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인기가 좋으면 보조를 맞추겠지만 자꾸 국민의 뜻과 괴리된 입장을 취하면 당연히 당 입장에서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당·청 갈등도 그렇고 레임덕도 그렇고 지금껏 반복되어온 정치 현상 아닌가. 피해 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의 한 의원은 “사실 이번 사태는 당의 의견 전달 방식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지, 오래 지속될 사안은 아니다. 근본적인 갈등 구조가 없다”라고 밝혔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레임덕은 밖에서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인천·경기의 다른 한 의원은 “여러 사안에 대해 당·청 간에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을 가지고 매번 갈등이다 뭐다 얘기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수도권 의원들이 너무 조급하다. 일부 서울의 목소리 큰 의원들이 급한 마음에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 향후 당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사퇴 압박을 받아온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월12일 오전 금융감독원 별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끝내고 후보자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한나라당 지도부가 정후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악화되는 민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으로 풀이된다.

인터뷰에 응한 30명의 의원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10명이 ‘적극적인 민심 수렴’을 한나라당의 향후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민심이 만만치 않다”라고 운을 뗀 인천·경기 지역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은 치열함이 부족하다. 좋은 정책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문제가 있으면 치열하게 붙어 싸워서 민심을 얻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그동안 국민의 마음을 체감하고 무마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은 기간 동안의 모든 정책은 국민 체감 중심으로 펼쳐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냉각된 당·청 관계를 회복하고, 이명박 정부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당이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곱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정부가 방향을 잘못 틀어 독선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이번 정후보자 사퇴를 계기로 정부가 당의 의견을 더 존중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청와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자기가 선거에서 살길이라고 생각해 돌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서민 정책 강화’를 한나라당의 주요 과제로 꼽은 의원도 여섯 명이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물가가 잘 안 잡히고 있다. 물가 안정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라고 말했고, 서울의 한 의원은 “침체에 빠져 있는 내수 경제를 활성화해 서민 경제를 살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 명의 의원은 ‘당내 소통 강화’를 향후 당의 주요 과제로 꼽기도 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의 대표로서 당내 의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수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나라당이 마치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라”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 내년 4월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총선 전망에 대해서는 전체 의원 중 과반수가 넘는 16명의 의원이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낙관적 전망’은 단 두 명에 그쳤고, 세 명은 ‘어렵지만 선전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머지 아홉 명의 의원들은 입장을 유보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지금은 어렵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현재 입장을 밝히기는 적절치 않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초선 의원들이 바라보는 현장 민심이 냉랭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위기감을 많이 느낀다. 영남 쪽이나 친박계 쪽은 좀 다르겠지만, 수도권 친이계는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주변 (의원들) 분위기도 다 불안해한다. 현 정부에서 비교적 경제 지표도 좋고 G20도 성과인데, 이번 인사와 같은 몇 가지 일들로 인해서 다 까먹고 있다.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라고 말했다.

역시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바싹 얼어붙어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 공멸한다는 분위기가 많다. 초선뿐만 아니라 재선들도 마찬가지다. 불안감이 심하다”라고 전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내 스스로 참담하고 자괴감이 큰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반면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평상시 지역구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수도권 지역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지역 민심에 대해 그다지 크게 불안하거나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그래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역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전통적인 지지층이 회복될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목소리 가운데서도 위기감이 많이 묻어났다. 인천·경기의 한 의원은 “지역 정서는 유동적이다. 특히 수도권 민심은 더욱 그렇다.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여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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