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서두른다고 될까
  • 성병욱 |중앙일보 주필 ()
  • 승인 2011.02.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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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의 성공적 특공 작전으로 한숨 돌린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친이계가 개헌 드라이브에 나섰다. 이에 대해 당내 친박계는 경계 태세를, 민주당은 실기했다는 이유로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통해 오랜 독재와 장기 집권의 사슬을 끊고,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적 정권 교체의 틀을 확립했다. 그러나 개헌 당시 장기 집권 종식과 직선제 회복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문제에 대한 천착이 소홀했다.

우선 대통령 임기 5년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른 선출직 임기 4년의 부조화로 중요한 선거가 일정한 간격을 갖고 규칙적으로 실시되지 못했다. 민주화는 이뤘지만 대통령에게 권한과 책임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데서 오는 폐단도 여전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으로 분화되어 때로 충돌 양상을 보이는 국가 최고 사법 기관의 위상 재정리 필요성도 거론된다. 국회 쪽에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 소속을 미국처럼 대통령이 아닌 국회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밖에도 개헌 후 24년이 흐르면서 헌법과 현실 간의 괴리가 꽤 깊어졌다. IT 시대를 반영하고 남북 관계, 경제 조항 등 재점검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이후의 변화를 반영할 개헌의 필요성에는 지식 사회의 공감대가 상당히 넓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 말을 2년 앞둔 이 시기에 개헌 내용에 대한 여당 내 컨센서스도 없이 개헌 논의를 시작해 당내 합의와 일부 야당의 찬성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대통령과 회동한 후 박근혜 전 대표가 유화적 자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친이계가 개헌 이슈를 띄운다는 의혹마저 심상히 보아 넘길 수 있을까. 자칫 세종시 사태의 재판이 우려된다.

개헌 논의가 필요하더라도 개헌을 꼭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개헌을 서두르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어떠 어떠한 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다행히 여당 내, 여야 간에 개헌 내용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면 이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을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안 되면 범정치권적으로 ‘다음 대통령 임기 전반기 중 개헌’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기했을 때 정치권은 다음 국회(다음 대통령)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으나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합의 불이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야가 개헌 추진 원칙에 의견을 모으면 우선 가칭 ‘개헌 준비 및 추진을 위한 법률’을 만들자는 정치인도 있다.

이 법률에 여야 정당들이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개헌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통령 선거 후 여야 협의와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개헌 내용을 확정해 다음 대통령 임기 초, 적어도 임기 개시 2년 이내에 개헌 절차를 끝내도록 하는 내용을 담자는 것이다.

개헌 추진 절차와 시기를 입법화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여야가 개헌 원칙에 공감한다면 좀 더 정치권을 구속하는 합의는 어떤 형태로든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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