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만명에 크게 웃는 작은 영화들의 생존법
  • 최광희│영화 저널리스트 ()
  • 승인 2011.02.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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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나 평론가의 극찬에 힘입어 ‘대박’ 나기도

한 영화가 개봉 첫 주말에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것이 극장가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지만, 관객 1만명을 놓고 울고 웃는 영화도 있다. 대중의 관심 바깥 쪽에 놓여 있어서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른바 제작비 10억원 이하, 혹은 수입가 5억원 이하인 ‘작은 영화’들의 흥행 경쟁 역시 피 말리기는 마찬가지다. 큰 영화의 독식 구조 속에서 손해를 안 보면 다행이지만, 잘만 하면 2008년 3백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기적적인 흥행을 기록한 <워낭소리>의 사례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시네마달 제공

지난해 11월에 개봉한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단 1만8천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돈을 번 경우에 속한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1만명으로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남미 지역의 영화는, 2만~3만 달러 수준에 수입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1만~2만명 안팎의 관객을 동원해도 ‘흥행 성공’이라는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다.

이 영화를 수입한 크리스리픽쳐스 인터내셔널의 이현 대표는 “언론 보도나 평론가의 극찬이 잇따랐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자평했다. 작은 영화일수록 비평의 향방에 흥행 여부가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또 “멀티플렉스 체인에 부속된 예술영화 전용관보다는 씨네큐브 광화문처럼 충성도 높은 단골 고객이 있는 극장에서의 성적이 더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많지는 않지만 작품성 높은 작은 영화를 찾는 의미 있는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바로 그 수요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작은 영화의 희비도 크게 엇갈린다.

저예산의 한계를 작품성과 관객 입소문으로 극복

지난해 말 개봉한 스페인 영화 <베리드>는 <워낭소리>의 고영재 프로듀서가 수입과 배급에 참여한 작품이다. <베리드>는 관 속에 갇힌 한 남자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담은 스페인 영화로,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열연을 펼쳤다. 이미 해외에서 “저예산의 한계를 독창성의 힘으로 극복한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다”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고프로듀서도 한국에서의 흥행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는 개봉일을 한 주 연기하면서까지 개봉 전 시사회 횟수를 대폭 늘렸다. “광고비를 많이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흥행을 위해서는 관객들의 입소문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개봉관도 이 정도 규모의 영화로서는 무리수라고 할 수 있는 100개 이상을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적어도 15만명 이상이 들어야 하는데, 누적 관객 수 6만4천명에 그친 것이다. 결국 반타작에도 못 미치는 최종 성적표를 들고 말았다. 이 영화의 관계자는, “수입가가 좀 비싸서 손익분기점이 높았던 것도 문제였지만, 100개 관 이상의 와이드릴리스 배급을 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라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단 몇만 명으로 대박이냐 쪽박이냐가 갈리는 사정은 한국 독립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억~2억원 정도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손익분기점도 적게는 3천명, 많게는 5만명 안쪽으로 맞춰진 경우가 많다. 10만명 이상을 모았다면 그야말로 초대박이 되는 셈이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활동을 담은 구수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는 엄청난 대박 흥행을 터뜨린 경우이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누적 관객 수 36만7천명을 기록했고 여전히 롱런 흥행 중이다. 최근 개봉한 정호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의 경우, 개봉 첫 주 금요일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한 데 힘입어 확대 개봉해 <울지마 톤즈>의 사례를 재연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 부담을 안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부가 정보는 종종 이야기의 사실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덕분에 영화는 사실을 비교 대상으로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소설이나 만화가 아니라 유명한 사건 혹은 유명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면, 비극적인 사건 혹은 생존자가 남아 있는 경우라면 넘어야 할 벽은 더 높아진다. 비극적 미제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이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서 조금 위험해 보였다.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불리는 만큼, 이야기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3년이나 제작 준비를 했다는 이규만 감독 역시 고민이 깊었던 듯싶다. 특종을 잡아 잃었던 명성을 되찾으려는 다큐멘터리 PD와 독자적 가설을 바탕으로 범인의 뒤를 쫓는 심리학 교수 그리고 절절할 수밖에 없는 사건 관계자들의 다양한 얼굴을 담아낸 영화 <아이들…>은 실제 사건의 무게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 안타까운 진심을 전하기 위해 시종일관 애쓴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껏 비장한 음악도, 멋들어지기보다는 사실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한 영상도 모두 그러한 고민의 소산이었을 터이다. 감독, 배우를 비롯한 제작진의 진심은 영화의 다양한 순간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실종된 아이의 부모로 등장한 성지루, 김여진의 연기는 가슴을 친다. “다들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갑다” 하는 순간 배우 성지루의 얼굴은 이 영화가 전하려던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준다.

문제는, 이 영화의 장점을 진실성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실화와 만난 가상의 이야기는 제대로 섞이지 못했고, 맥락은 종종 오락가락한다. 음악은 거의 매 순간 영상을 앞서 나가고,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나열하기 급급한 탓에 이야기의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다. PD와 교수 두 캐릭터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은 너무 직설적이고, 종반부 경찰이 아닌 PD가 범인과 사투를 벌인다는 설정 역시 지나치다. 엔딩의 붉은 보자기 망토가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쩌면, 그 고민이 너무 깊기만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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