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대물림된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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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심각…전문의들 “담배보다 해로운 술에 관대한 문화 바뀌어야”

 

▲ ⓒ시사저널 임준선

20년 전만 해도 국내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은 단골 메뉴였다. 고민하는 주인공의 손에는 으레 담배가 들려 있었다. 심지어 병실에도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을 정도로 흡연에 관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장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변함없는 장면이 있다.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특히 서민의 애환, 주인공의 성공을 그릴 때면 여지없이 술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난색을 보인다. 담배나 마약보다 건강에 해로운 술의 병폐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 치료 전문병원 진병원의 양재진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술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국가적으로 건강을 좀먹는다는 점에서 담배보다 더 해롭다. 또 술은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럼에도 매체에 음주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국민에게 술을 마시라고 교육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간이 손상되는 것은 알코올 해악성의 일부분이다. 오히려 술은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므로 그 심각성을 잘 모를 뿐이다. 우리 사회는 흡연을 죄악시하면서도 음주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 만큼 관대하다. 금주 운동을 국가적으로 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췌장암 등 발병 위험 크게 높이는 주범

술은 만병의 근원이다. 60가지 이상의 질병이 알코올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의사들은 음주를, 온몸에 융단 폭격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위암, 대장암, 인후암, 식도암, 직장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이 알코올로 말미암아 생길 수 있다. 하루에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사람은 암이 발생할 위험이 두세 배 증가한다.

암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췌장암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술이라는 근거도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 췌장은 알코올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곳이고 당뇨를 조절하는 곳인데, 이 췌장이 망가지면 당뇨병이 생길 수 있다. 술 때문에 만성 췌장염으로 악화하면 췌장암의 위험도 커진다. 2009년과 2010년 외국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두 잔씩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췌장암 발병 위험이 22%나 높아진다. 한 번에 술을 다섯 잔 이상 마시는 남성은 췌장암 발병 위험이 3.5배 이상 높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밥은 물론 콜라(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마신다. 영양가는 없으면서 열량이 매우 높은 식품이 술이다. 소주 한 잔의 열량은 콜라 한 캔과 비슷한 90~100Kcal이고, 맥주 5백cc 한 잔의 열량은 1백85Kcal이다. 밥 먹는 시간보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길다. 즉, 술만 마셔도 뚱뚱해질 수 있다. 또 술을 마시면 단기적으로 식욕이 증가한다. 특히 지방(육류)과 소금(찌개류)을 평소보다 더 찾게 된다.

그런데 우리 몸은 음식보다 알코올을 먼저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영양소는 그대로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일반적으로 체질량지수가 높고 복부 비만인 사람이 술을 잘 마신다. 사실은 뚱뚱해서가 아니라 술을 많이 마셔서 비대해진 것이다.

음주 계속하면 치매 일찍 올 확률 높아져

술 자체도 중성지방 형태로 체내에 저장된다. 일반적인 지방산은 혈액을 통해 근육으로 이동하지만, 음주 후의 중성지방은 곧바로 간에 축적되어 지방간을 만든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간염, 간경화로 발전할 수 있다. 살을 빼도 다시 살이 찌는 요요현상으로 고민한다면 술 섭취를 줄여볼 필요가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서 요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컴퓨터 키보드에 음료수를 엎지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ㄱ자판을 눌렀는데 ㅅ이 찍히거나  A를 입력했는데 ‘&^’처럼 이상한 글자가 출력되어 당황스럽다. 키보드 사이에 스며든 액체가 자판과 컴퓨터 본체 사이의 정보 전달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뇌에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술을 마시면 감정이 폭발하는데, 이는 알코올이 뇌의 감정 조절 중추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똑바로 걷지 못하는 것도 알코올이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알코올이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침투하면 기억을 지워버린다. 술 마신 다음 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이 생기는 것이다. 단순히 술주정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술주정은 뇌가 흥분 상태를 넘어 뇌의 기능이 떨어져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신경세포가 아예 손상된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억이 뚝뚝 끊어지는 고르사코프 증후군(만성적 기억 상실증)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치매가 일찍 올 확률이 높다.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알코올과 관계된 치매는 언어, 시공간, 지각 운동, 기억 등의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알코올 중독자 10명 중 1명에서 심한 치매가 발견되며, 5~7명에서도 가벼운 인지 장애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 성분이 위와 장을 통해 흡수되어 혈액을 타고 간으로 옮겨진다. 간세포 속에 들어 있는 알코올 탈수효소(ADH)가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분해한다. 술을 마시면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픈 이유가 이 물질 때문이다. 이 물질은 독성 물질이므로 우리 몸에서는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효소(ALDH)를 분비한다. 이 효소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트산과 물로 분해한 뒤 소변, 땀 등으로 배출한다. 그런데 ALDH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온몸이 빨갛게 변하고 심하면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서양인보다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서 이런 사람이 많다. 10명 가운데 두세 명은 선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술을 계속 마신다. 술을 자주 마시면 술이 는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알코올에도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마약·도박·쇼핑·담배·인터넷 중독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같다.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 술을 계속 찾게 된다. 즉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인데, 이는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질병이다. 흔히 알코올 중독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질병이다. 알코올 중독은 주변에 흔하다. 그러나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코올 내성, 금단 증상, 사회 활동 장애, 대인 관계 장애 중에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알코올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남궁기 연세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신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고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국민의 10%를 넘을 정도로 많다. 알코올 중독의 기준은 술에 대한 조절력 상실이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그것 자체가 뇌에서 술에 대한 조절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적당히 마시기는 어렵다. 아예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 단주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알코올 중독도 유전된다는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알코올 중독이라면 자녀가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70~90%에 이른다. 굳이 유전이 아니더라도 부모의 음주 모습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술이 지긋지긋하게 싫다면서도 부모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이 되거나, 음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기도 한다. 두 가지 유형 모두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아이에게는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등의 ‘품행 장애’가 생긴다. 성인이 된 후에도 반사회적 인격 장애나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김도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 입양된 아이도 나중에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이 3~4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라며 알코올 중독이 대물림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심장에 무리 주고, 임신부에게는 기형 유발

적당한 음주는 심장병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서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전문의들은 위험한 인식이라고 지적한다. 심장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술이 아니라 운동 등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또 반주를 마시는 한국인에게서 심장병 발병률이 낮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술을 입에 대면 멈추지 않고 과음·폭음하므로 심장병 예방은커녕 심장에 무리를 준다. 이상철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술을 마시면 당장은 혈관이 확장하면서 혈압이 떨어진다. 그러나 음주 다음 날 오전에는 혈관 수축이 활발해져 혈압이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추운 날에는 혈압이 오르므로 겨울철에 술을 많이 마시면 혈압은 더욱 높아진다. 높은 혈압은 심장에 부담을 주어 각종 심장질환이 발생할 소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알코올은 강력한 기형 유발 물질이다. 임신부가 술을 많이, 또는 자주 마시면 태아 기형이 발생할 수 있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이라는 병명까지 있다. 임신부가 아니더라도 여성은 술을 멀리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 수분이 적고 지방이 많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남성보다 쉽게 취하고 음주 피해도 빨리 나타난다. 음주로 인한 뇌, 췌장, 간 손상을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받는다. 지속적인 과음은 생리통, 생리 불순, 조기 폐경, 불임의 원인이 된다. 매일 음주하는 여성은 유방암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김종화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에서 알코올에 노출된 태아는 자궁 내의 성장과 생후 발달이 저해된다. 신생아 이상, 정신 지체, 성장 결핍, 안면 이상, 사지 기형, 심장 결손, 운동 발육 지연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임신 기간 또는 임신을 원하는 여성은 알코올에 관한 욕구는 아예 버리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술은 개인 건강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도 병들게 한다. 심리적으로 불안, 초조, 우울감, 죄의식, 공격적 언행, 의지력 및 사고력의 황폐, 의무 회피, 도덕감 상실 등으로 사회생활에 이상이 생긴다. 이것은 실업으로 이어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이뿐만 아니라 부부 갈등, 구타 등 가정 문제도 심각해진다. 술을 끊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기 불신, 혐오감, 후회의 반복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알코올에 의한 자아 통제력의 상실은 음주 운전 사고, 성범죄, 폭행 등의 범죄를 일으킨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는 정상 여성보다 우울증, 불면증 등에 잘 걸린다. 남궁기 교수는 “술은 담배나 마약보다 분명히 더 해롭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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