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없어도 골치 많아도 골치
  • 최정민│파리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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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총선 이후 2백20일 이상 무정부 상태…코트디부아르는 두 대통령이 맞서 갈등 지속

 

▲ 지난 1월23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대정부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어떤 나라는 대통령이 너무 많아서 난리이고 어떤 나라는 대통령이 없어서 난리이다. 차라리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어떨까.” 다소 황당한 이 물음은 프랑스의 한 정치 칼럼에서 나온 것이다. 너무 많아서 탈인 나라는 선거 후 두 후보 모두 자신이 이겼다고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코트디부아르이고, 없어서 난리인 나라는 바로 2백20일 이상 정부 없이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벨기에를 말한다.

벨기에는 지금까지 무정부 상태로서 유럽 최고 기록이었던 1977년 네덜란드의 2백8일을 가볍게 갈아치우고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벨기에는 지난해 6월23일 총선 이후 아직까지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 정당들이 연정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2’의 인터뷰에서 벨기에인들은 “끔찍하다” “벨기에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벨기에 국적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영화배우 브누아 풀보르는 지난 1월12일 자신은 벨기에에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벨기에 국민들에게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의 안일한 처사에 항의하는 공공 집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픽을 공부하는 시몬 반데리켄은 ‘정치인들의 안일한 태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제안했고, 그가 제시한 지난 1월23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는 휴일임에도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 가두시위를 벌였다. 당초 예상했던 1만여 명의 두 배를 넘는 수치였다.

이러한 국민적인 불만 표출에 대해 현재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벨기에 왕가이다. 사실 지난 6개월이 넘는 정부의 공백에도 국정이 운영된 것은 국왕인 알베르 2세의 공이였다. 지난 1월 <파리마치> 벨기에판이 발표한 ‘2010년의 인물 1위’로 알베르 2세가 뽑힌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정부의 공백이 길어지자 벨기에 왕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더구나 과격해진 시위대가 왕궁으로 몰려들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역사적 골 깊어 갈등 해결책도 없어

벨기에에서 나타난 이러한 엽기적인 사태의 배후에는 깊게 파인 역사적 골이 있다. 그만큼 간단한 해결책도 없다. 한 나라에 두 개의 민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민족이 하나의 깃발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벨기에는 세 개의 언어를 모국어로 갖고 있지만 공용하지 않는다. 부유한 북쪽 플레이시 지역은 네덜란드어권이고, 가난한 남쪽 왈로니아 지역은 프랑스어권이다. 언어를 공용하지 않는 것은 모든 행정적 절차에서 플레이시와 왈로니아 두 지역에 전혀 호환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19세기까지 나라 없이 주변 강대국에 시달렸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다. 벨기에의 앞날에 대해서도 모두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국정 공백으로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도 없고 국론은 분열된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는 유럽연합과 나토의 본부가 있다.

벨기에가 정부의 공백으로 공전하고 있다면, 현재 북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정부가 너무 많거나 사라져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먼저 북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는 최근 치른 선거 결과를 두고 2차 결선에서 맞붙은 두 후보가 서로 당선했다고 주장하며 대치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로랑 그바르보는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 선거 직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며, 헌법위원회가 자신이 당선되었음을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의 알라산 와타라는 자신이 승리자이며 그바르보가 주장하는 헌법위원회는 그의 친구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 절하했다. 양측은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고 있지 않으며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두고 프랑스 국회방송의 저널리스트인 소냐 마브룩은 “이것은 명백한 소모전이다. 아마도 결판은 현재 군대와 주변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바르보가 언제까지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바르보가 그의 자금력으로 지금의 체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흥미로운 진단을 내렸다. 프랑스의 정치 칼럼니스트인 로랑 뒤아멜은 “두 사람의 적대감과 지지 세력 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다. 차라리 자신의 지지자를 이끌고 분리 통치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맹국들의 이해관계 덕에 체제 유지하기도

▲ 지난 1월14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무장한 경찰이 총을 들고 반정부 시위 현장에 서 있다. ⓒAP연합

대통령이 둘인 코트디부아르와는 정반대로 튀니지는 정부가 사라졌다. 다름 아닌, 현재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인 ‘재스민 혁명’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의 국가들 중 안정적인 나라였던 튀니지는 과일을 팔던 한 대졸 출신 청년의 분신으로 온 나라가 분노의 열기에 휩싸였으며, 그 결과 23년을 유지해 온 벤 알리 정권이 무너졌다. 현재 재스민 혁명의 성공 여부를 두고는 이견이 분분하다. 튀니지는 계속되는 정부의 노력에도 끊임없는 소요와 함께 사회 질서가 흔들리며 혼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튀니지의 상태는 인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 각국이 초긴장 상태이다. 이미 알제리와 이집트 등 인근 국가에서는 20여 명의 분신 사태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발 빠르게 밀가루를 위시한 생필품 가격을 인하했다.

한편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까지 붕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냐하면 이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근접해 있는 중동의 화약고와 연결되어 있어 미국이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만큼 정부의 부패나 실업률과 같은 사회적 불만에도 체제가 유지되는 여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집트와 같은 전략적 동맹국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미국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실제로 지난 1월24일 이집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집트 정부에 대한 신뢰를 즉각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태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한 시민의 말이 아니다. 프랑스 외무장관인 미셀 안리오 마리의 실토이다. 그녀 자신이 이번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튀니지 사태 이후 대정부 질문에서 프랑스의 대응을 묻는 사회당 의원의 질문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랑스의 시위 진압 기술을 지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가 프랑스는 물론 튀니지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사실, 이것은 한 외무장관의 실수라기보다는 프랑스와 튀니지의 밀월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사태 초기 이후 2주간 프랑스는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코트디부아르 사태 직후 와타라 전 총리를 당선자로 즉시 지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튀니지에서는 독재자로 쫓겨난 벤 알리가 프랑스 정계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동반자였던 셈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정치권은 우파와 좌파 모두 벤 알리의 튀니지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다. 튀니지 사태를 두고 한 언론인은 “23년간의 독재 정치를 그대로 보고만 있었던 프랑스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과연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신랄하기로 유명한 정치 평론가인 장 미셀 아파티는 “프랑스 언론은 주기적으로 튀니지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보도해왔다. 입도 뻥끗하지 않은 것은 바로 정치인들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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