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 포털에는 치명적”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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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식 나우콤 대표 인터뷰 / “게임도 모바일 쪽으로 무게 중심 옮기는 중”'

 

▲ ⓒ시사저널 유장훈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자사의 직원 복지 프로그램을 자랑하자, 한 중소기업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반박했다. “슈퍼 개점해서 구멍가게 울리는 짓이나 하지 말기를… 그게 대기업이 할 일이니?” 이 공방은 트위터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정부회장은 “이분, 분노가 참 많으시네요. 아무리 왼쪽에 서 계셔도 분노는 좀 줄이도록 하세요. 사회가 멍듭니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분노’와 ‘왼쪽’으로 정의당한 그 중소기업 대표는 인터넷 통신서비스 업체인 나우콤의 문용식 사장이다.

그는 서울대 79학번, ‘깃발-민추위 사건’으로 20대 시절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2년 서른셋에 사번 1번으로 입사한 나우콤에서 바닥 생활 10년을 버티고 지난 2001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나우콤은 PC통신 시대의 마지막 패자였던 나우누리를 하던 바로 그 회사이다. PC통신, 인터넷 혁명, 모바일 혁명을 거치면서 계속 통신서비스 분야에서 살아남은 회사는 나우콤이 거의 유일하다. 정보통신에 문외한이었고 학생 시절에는 깃발을 높이 들던 문용식은 어떻게 IT 분야에서 2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마침 그가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21세기 북스)라는 경영 경험을 담은 책을 내놓았다. 그를 만나보았다.

당신 왼쪽인가?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하는 사람이다. 다만 기업이 올바른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기본은 고용 창출과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은 틈만 나면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비자금을 만들어 대주주 개인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열심이다. 그래놓고 기부했다고 사회에 생색낸다. 화장발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 세금 내는 일, 이런 것이 기업의 민낯이다. 민낯이 아름다워야 한다.

한국의 키워드로 ‘불안’을 꼽았다.

한국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10%이다. 공무원, 국영 기업이나 재벌 기업 임직원이 인구의 10% 정도이다. 이들은 경제협력개발(OECD) 국가의 평균 연봉보다 더 나은 급여를 받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채에서 자기들끼리 임금을 올리고 권리를 실현해나간다. 반면 90%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직원, 영세 상인은 불안하다. 그 불안한 90%의 희생 위에 10%가 성채를 짓고 산다. 이런 구조는 고쳐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승자 독식은 당연한 것 아닌가?

자동차회사에서 왼쪽 바퀴 조립은 정규직, 오른쪽 바퀴 조립은 비정규직이 한다고 치자. 똑같은 일을 해도 왼쪽은 5천만원을 받고, 오른쪽은 2천만원을 받는다. 사내 하청을 제한하고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줘야 한다. 법과 제도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좌파의 주장이 아닌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만 기형적으로 가고 있다. 사내 하청 같은 제도는 당장 단물 빨기에는 좋지만 사회 통합이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치기 때문에 생산성·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는 치명적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20대에 운동권 조직의 수장 노릇도 했는데, 책에서는 ‘소년 급제’에 대한 경계의 말이 많다.

직업의 세계에서 나는 밑바닥에서 박박 기었다. 무능한 부장으로 10년 동안 고생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조직이 개인을 보호하지 않으니까 미래가 불안하다. 그것은 이해한다. 몸값 높여준다고 하면 부평초처럼 떠돈다. 돈은 쫓아다닌다고 해서 벌리지 않는다. ‘연봉 몇백만 원에 네 이름을 팔지 마라’라고 얘기해준다. 이름값을 높이는 데 신경 쓰면 자연히 몸값도 높아진다. 적어도 10년은 이름값(평판)을 쌓아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배려해주고, 솔선수범하고 그러면 나중에 내가 어려울 때 틀림없이 누가 나를 구해준다. 20~30대에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기업 활동을 해 돈을 얼마나 벌었나?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많이 벌었다. 지금 내 지분(8.44%)이 100억원 정도 되니까….

나우콤은 돈을 잘 버나?

지난해 매출이 4백50억원 정도이다. 게임이 2백억원, 실시간 개인 방송 서비스인 아프리카가 1백20억원, PD박스 등 웹스토리지 서비스가 100억원, CDN서비스가 30억원 정도이다. 2003년부터 계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모기업이 세 번 망하고, 인터넷 혁명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애사심 때문에 살아남은 것 같다. 모기업이던 고려시멘트, 한창, 삼보가 줄줄이 망했다. 그럼에도 안 무너진 것은 내부 조직력 때문이다. 또 회사에 나쁜 것이 없고 깨끗했다. 대주주가 연대 보증 서라고 할 때도 안 하고 버텼다. 우리 회사만의 경영 원칙이 있었으니까.

중소기업은 단일 제품을 갖고 먹고산다. 트렌드가 바뀌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PC통신 하던 회사가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는 힘들다. 내부에 사업 개발 능력과 기술 개발 능력, 혁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바일 시대에도 나우콤이 그래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20년 동안 나우콤은 가장 큰 회사, 가장 성공한 회사가 되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위기에는 가장 강한 회사가 되었다.

왜 직원들이 위기에 강한가?

주인 의식이다. 주인 의식은 조직 문화에서 나온다. 믿고 맡겨주고 알아서 하는 자율의 원칙이 있으니까, 위기 때 뭉친다. 우리는 대기업 복지 수준은 흉내 못 낸다. 다만 중소기업 중에서는 상급으로 대우해준다.

인터넷 혁명 때 PC통신회사가 다 망했는데.

그때 PC통신회사 망한다고 외부에 기고했다가 사장한테 혼도 나고 재떨이로도 맞았다. 결국 내 말이 맞았다. 이렇게 빨리 바뀔 줄 알았다.

그러면 그때 복안이 있었나?

기존 사업부 가운데 절반을 떼내서 새로운 인터넷 기반의 사업 서비스를 준비했어야 했다. 기존(PC통신) 것은 방어만 하고 공격조를 따로 만들어서 신사업을 해야 했다. 그랬으면 대한민국 인터넷 업체의 판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2001년 사장에 취임한 뒤에도 종합 포털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종합 선물 세트처럼 구색을 갖춰놓는다고 해서 포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킬러 서비스 하나 갖고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포털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손길이 자주 가는 맛, 그것 하나가 중요하다.

그래서 어디로 뻗었나?

앞으로는 초고속통신이니까, 초고속통신이라는 것은 대용량 트래픽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고, 대용량이 필요한 것은 동영상이다. 그래서 동영상을 저장하고 감상하고 전송하는 데 주력하자는 방침을 정했다. 방향을 정하니까 PD박스, 클럽박스 같은 웹 스토리지 서비스나 ‘아프리카’ 같은 개인 생방송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영상 인터넷, 한 우물만 판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업자가 모바일 시대에도 패권을 쥐게 되나?

이미 기본 환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데스크톱 컴퓨터를 켤 때 처음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 포털이다. 모바일에서는 포털이라는 관문이 없이 자기가 쓰고자 하는 킬러 앱으로 바로 들어간다. 모바일에서는 킬러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1인당 스마트폰에 자주 쓰는 킬러 앱을 50~60개 정도 깐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포털이 모바일 시대에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다.

나우콤도 모바일 시대를 준비하고 있나?

사람들이 공중파에서 중계하지 않는 스포츠 중계를 볼 때 기본적으로 아프리카로 온다. 아프리카도, 게임도 모바일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입사 초기에 나가라는 신호를 못 알아듣고 버텼다고 하는데 둔한 것인가, 안 알아들은 것인가?

반반이다. 무시한 것도 있고.

자기 주관이 강한 편인가?

소신이 강하다.

회사의 방향도 다 혼자서 정하나?

우리 회사에서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망한다. 게임 서비스인 테일즈러너의 손님은 초등학생이고, PD박스나 아프리카는 20~30대가 손님이다. 내 감수성으로 사업하면 망한다. 직원들이 워낙 잘하니까….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병풍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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