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독사, 노인층 넘어 중·장년층까지 확산…고시원 생활하던 청년이 사망 수일 뒤에 발견되기도

지난 1월4일 오후 6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의 한 허름한 고시원 방에서 이 아무개씨(32)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돌연사이다. 그런데 고시원 사람들 누구도 이씨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이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기자는 1월18일 이씨가 살고 있었던 ㅅ고시원을 찾아갔다. 이씨가 죽은 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방에는 여전히 몇몇 가재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방 한쪽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냄비에는 라면 면발이 딱딱하게 굳은 채 말라붙어 있었다. 방안 쓰레기통을 살펴보니 ‘구인·구직란’으로 도배된 생활정보지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쓰레기통 안에는 이력서 용지 묶음도 있었다.

▲ 30대 청년이 혼자 살다 숨진 수원의 한 고시원 실내. ⓒ시사저널 임준선

이씨와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은 “(이씨가) 말이 별로 없고 일만 하던 총각이다”라고 기억했다. 이씨와 종종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한 남성은 “듣기로는 이씨가 삼성그룹 계열의 하청업체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씨가 말투도 어눌한 편이고 해서 이용을 많이 당한 모양이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일하는 곳마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최근 20만원 정도인 고시원 방값을 계속 내지 못한 것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문제 때문에 직장을 옮기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평소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 무렵 퇴근을 한 뒤, 고시원 가까이에 있는 호프집에 들러 술을 마시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이씨는 평소 호프집을 운영하는 주인 아주머니와 아들을 어머니와 형처럼 따랐다고 한다. 호프집 주인의 아들 김 아무개씨(37)는 “이곳으로 술을 마시러 오면 아무래도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던 모양이다. 이씨는 술에 취하면 종종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라며 이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이씨는 원래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한다. ㅅ공고 야간 전기과를 졸업한 이후 직장을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산 이씨에게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는데 거의 교류가 없었다. 이씨의 어머니가 두 번의 재혼을 하게 되면서 가족이 거의 뿔뿔이 흩어져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수원시 권선구의 고시원에 머무른 지 3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몇 년 전에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가서 ‘내놓은 자식’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혼자 지냈다. 이번에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가족들이 올까 반신반의했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남동생, 매형은 영안실에 찾아왔었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호프집에서 이씨는 자신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지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또 이씨는 김씨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호프집을 운영하는 모습을 무척 부러워했다. 김씨는 “이씨는 약간의 지적장애가 느껴질 정도로 말투가 어눌하고 느린 편이었다. 이씨는 어릴 적에 친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또 평소에 ‘나도 형처럼 어머니와 함께 일하면서 지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외지에 떨어져 혼자 살아서 그런지 늘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다”라고 전했다.

추운 방에서 혼자 지내는 쪽방촌 노인들

▲ 지난 1월17일 서울 문래동에 형성되어 있는 쪽방촌의 모습. 대부분 60대의 노인들이 혼자 거주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늘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살수 없었던 한 젊은 청년은 결국 서른두 살의 나이에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고시원 방 침대에 엎드려 잠을 자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씨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처절할 정도로 외로웠다. 호프집 김씨는 “그는 한 열흘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다. 소식이 궁금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고시원에서 생활한 이들은 “평소에 좀 아픈 편이었다. 또 매일 술을 마시는 편이었는데, 그가 죽기 바로 전날에 한 번 마주쳤을 때도 배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라고 전했다.

사실 이씨의 죽음은 더 오랜 시간 묻힐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이씨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이씨와 같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이 지내는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숨진 뒤 수일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이른바 ‘고독사’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주로 독거노인들이 당하는 ‘고독사’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최근에는 그 대상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고령화, 핵가족화, 미혼 현상 등이 심화되면서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이 늘어나고 ‘가족 해체’가 사회 현상으로 굳어지면서 ‘고독사’는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이씨의 죽음은 가족 해체로 인한 고독사의 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고독사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혼자 사는 노인이 2010년에 1백2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고독사 위험성이 날로 커져가는 셈이다.

1월17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쪽방촌을 찾아갔을 때 이씨와 같은 기구한 사연을 지닌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쪽방촌에서 만난 사람들 대다수가 이씨처럼 가족과 헤어져 지내고 있었는데 그 사연들이 다양했다.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쌓아온 아픔들이 떠올라서인지 쪽방촌 사람들 대다수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를 꺼렸다. ‘가족’이라는 말만 꺼내도 고개를 내젖는 이들이 많았다.

방에 앉아 온종일 TV를 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김정만씨(67)는 “원래는 원주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2000년에 일을 하다가 8층 건물에서 떨어져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 이후로 풍이 와서 팔을 쓰지 못하는데 수술비며 생활의 어려움으로 결국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방 안에 걸려 있는 몇 벌의 옷들과 덩그러니 놓여 있는 TV가 김씨의 외로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전복주씨(64) 역시 가족과 헤어져 문래동 쪽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전씨는 “21세 때부터 원양 어선을 타고 일을 하러 다녔는데 가족들과 소원하게 지내다 보니 결국 이렇게 혼자 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돌보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 해체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고독사가 노인을 넘어 중·장년층으로까지 퍼지는 흐름인 만큼 더욱 확실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이제 ‘가족’이 할 역할을 ‘지역’에 넘겨야 할 때가 되었다. 지역 사회 내에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공적·사적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도로나 상수도와 같은 시설은 종합적인 설계를 하면서 복지에 대해서는 이러한 종합 설계가 미비하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시 단위를 총괄하는 전문 기관 외에도 중소 규모의 종합 복지 센터를 마련해 복지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