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도시, 인재 배출도 ‘광역’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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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울산

 

▲ 울산시 전경 ⓒ연합뉴스

울산광역시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여섯 곳이다. 중구, 남구 갑, 남구 을, 동구, 북구, 울주군 선거구이다. 이 중 정갑윤(한나라당·중구), 최병국(한나라당·남구 갑), 김기현(한나라당·남구 을), 조승수(진보신당·북구), 강길부(한나라당·울주군) 의원의 고향이 모두 울산이며 동구의 안효대 의원만이 타 지역 출신이다.


정갑윤 의원은 울산의 수재들이 밟는 엘리트 코스인 울산제일중과 경남고를 거쳐 울산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스물다섯 살 때 울산대 총동창회장을 지냈고 울산청년회의소(JC) 회장, 경상남도의회 의원, 대한산악연맹 울산지부 회장, 울산조기축구회 회장 등을 맡아보며 저변을 다졌다. 그리고 16대 국회에 진출한 이래 64.9%의 득표율을 보인 18대까지 3선을 기록했다. 18대 국회 후반기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검사 출신인 최병국 의원도 3선이다. 울산제일중-부산고-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마산지검 검사로 첫발을 디뎠다. 서울지검 공안부장-1차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중앙수사부장, 인천지검-전주지검 검사장 등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나라당 울산시당 위원장, 윤리위원장과 국회 법사위원장, 정보위원장 등 당과 국회의 요직을 거쳐 현재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정해영·이후락 등 거물급 인사 다수 나와

김기현 의원도 법조인 출신이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를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울산시 자원봉사센터 이사장, 울산YMCA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17대 국회에 진출해 18대 재선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제1·제4정책조정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중앙교육위원장이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두 차례, 입법 우수의원, 모범의정상을 받은 그의 좌우명은 ‘성실’이다.

조승수 의원은 현재 진보신당 대표이다. 현장 노동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임금 투쟁 지원본부 간사 등의 활동을 거쳐 14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민중당과 진보정당 추진위원회에서 활약했고 울산시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울산환경운동연합, 울산참여연대를 거쳐 35세 때인 1998년 전국 최연소 자치단체장으로 울산 북구청장에 당선되었다. 17대 국회에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2009년 4·29 재·보궐 선거에서는 진보신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18대 국회에 진입했고 2010년 10월부터 당 대표를 맡고 있다.

강길부 의원은 17~18대 의원으로 있으면서 당적을 여러 차례 바꿨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17대에 당선된 후 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편되자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이 되었으며, 잠시 한나라당에 몸담았다가 다시 무소속으로 나갔다. 18대에는 무소속으로 당선된 지 한 달 만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건설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도시국장-주택국장-건설경제국장과 건설교통부 차관을 역임했다.  

13대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기록한 정몽준 의원이 18대에 이르러 그가 회장으로 있는 현대중공업 소재지인 동구를 내놓고 서울로 진출해 동작 을에서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정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이 현재 한나라당 울산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 이외에 박대해 의원(한나라당·부산 연제구)과 서병수 의원(한나라당·부산 해운대 기장군 갑)이 울산 출신의 18대 의원이다. 박의원은 최형우 전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민추협, 통일민주당, 민주산악회, 민주자유당 활동에 관여했다. 부산시의회 의원을 거쳐 연제구청장을 3연임한 후 친박연대 소속으로 18대 국회에 진출했고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핵심 친박계 의원으로서 유일하게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서병수 의원은 중소기업 대표이사와 대학 교수 경력을 가진 3선 의원이다. 부산 해운대 구청장으로 재직하다 보궐선거로 16대 국회에 입성했다. 경남고-서강대 경제학과와 서강대 경제학 석사-미국 북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학구파로 원내부총무와 제1정책조정위원장, 정책위의장, 부산시당 위원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내 정책통으로 평가된다. 


18대 총선 예비후보자였던 신기섭 여의도연구소 뉴미디어위원장,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서울 양천구 을 지역구에서 16대 의원을 지낸 오경훈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 부본부장, 18대 총선 예비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던 이제승 한나라당 행정자치위 부위원장, 역시 18대 총선 후보 등록자였던 전지명 미래희망연대 대변인 등이 여의도 입성의 꿈을 다지고 있다.

울산 출신의 거물 정치인으로 고 정해영 국회 부의장이 있었다. 7선 의원을 지낸 정통 야당인이었던 그는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대동연탄을 창업했다. 한때 ‘석탄왕’이라는 이름을 얻고 부산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제3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그는 1976년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오자 야당 단결을 호소하며 동분서주했지만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28년간의 정치 활동을 마감하고 말았다. 재산도 강제 헌납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가 정계를 은퇴한 후 아들인 정재문 한나라당 전 의원이 뒤를 이어 12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5선을 했다. 정의원은 국회 외무통일위원장, 한나라당 중앙위 의장 등을 지낸 후 정계를 떠나 가업인 대양산업 회장에 전념하고 있다. 외무부 차관, 스위스·벨기에·프랑스 대사, 9~10대 국회의원, 국민대 총장, 세종연구소 소장을 지낸 정일영 백상재단 이사장이 정 전 부의장의 동생이다.


울산 시정(市政)을 이끌고 있는 박맹우 시장은 소탈한 외모와 함께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갖추었다는 평을 듣는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남도·내무부 근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울산시 기획실장, 내무국장, 동구청장, 건설교통국장을 두루 거쳤다. 2002년, 2006년, 2010년 울산시장에 연속 당선되었다.

울산을 얘기하면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제갈조조’라고 불릴 정도로 지략이 뛰어난 박정희 정권의 책사였다. 한때 유신 정권의 2인자로 불렸지만 이후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었고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린 뒤 2009년 10월31일 타계할 때까지 30년간 철저히 칩거했다.

‘길지’로 꼽히는 신격호 회장의 고향 ‘언양’

그는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임관한 뒤 1961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정보 장교로 활동했다. 5·16과 함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보실장으로 권력의 전면에 나선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었고 박정희 후보가 김대중 후보와 맞붙었던 1971년 대선 때는 중앙정보부장이었다. 1972년에는 밀사로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7·4 남북공동성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SK, 한화 등 대기업들과 사돈을 맺었다. 둘째며느리가 한화 김승연 회장의 누나이고 막내며느리는 SK 창업주의 딸로 SK 최태원 회장과 사촌 사이이다. 지금도 울산 곳곳에는 ‘이후락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껌으로 시작해 한국의 대표적 기업의 하나인 롯데그룹을 일궈낸 신격호 회장은 아흔의 나이인 지금도 경영 일선을 지키는 현역이다. 울산농림고를 졸업하고 취직한 직장에서 월급쟁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화공과를 다녔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꼼꼼히 챙기는 그를 두고 주위에서는 “그 나이에도 꿈을 잃지 않는 청년”이라고 말한다. 장녀인 신영자씨는 롯데쇼핑 사장, 장남 신동주씨는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 차남 신동빈씨는 롯데그룹 부회장이고 신춘호 농심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동생이다.

조흥은행장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활약했던 고태진씨도 울산이 낳은 금융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었다. 울산읍장을 지낸 고기업씨의 자제인 그는, 1949년 상업은행 입행 이후 상업은행 상무와 제일은행 전무를 거쳐 조흥은행장을 역임하는 등 한평생을 금융인으로 일관했다. 그는 1973년부터 4년 동안 제33·34대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으면서 국내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기간 중에 차범근, 이회택, 김호 등 국가대표 스타 선수들을 발굴·육성해 한국 축구 도약에 밑거름을 마련했다. 11대 국회의원과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고원준 울산인력은행 원장이 장남이고, 이종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갑)이 사위이다. 이중재 전 평민당 부총재가 이의원의 부친이다. 김영준 성신양회 대표이사 회장은 부친인 고 김상수 전 회장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았다.

신격호 회장의 고향인 언양은 저명 인사들을 많이 배출한 길지로 알려져 있는데 조용기 목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현재 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순복음세계선교회 총재, 호서대 재단 이사장, CTS기독교TV 운영이사회 대표회장 등도 겸임하고 있다. 울산 출신 불교계 인사로는 이성타 불국사 주지, 오혜원 쌍계사 주지가 있다.

학계에는 한글학자인 고 외솔 최현배 선생의 그림자가 깊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후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한글 전용 운동에 앞장섰던 강직한 학자였다. 최영해 전 정음사 대표가 장남이고, 신경정신과 의사인 최신해 전 서울대 교수가 삼남이다.

이비인후과를 전공한 노관택 전 서울대병원장과 ‘옥수수 박사’로 널리 알려진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이 울산 출신이다. 노관택 원장의 아들인 노동영 서울대 외과학교실 교수는 부친의 일을 이어받았다.

법조계에는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정치근씨,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로 YS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안우만씨, 이종백 전 서울고검장이 있다. 언론계에는 이채주 일민문화재단 이사가 있다. 동아일보 출판국장,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연예·체육계 인사로는 <타향살이>로 세인의 심금을 울렸던 고 고복수씨가 부인 황금심씨와 함께 한 시대를 휩쓸고 간 부부 가수로 기억된다. 가수 윤수일씨, 개그맨 김영철씨가 울산을 대표하는 연예인이고 국가대표 축구 선수로 뛰었던 박성화 선수는 중국 다롄 스더팀의 감독으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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