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경제’로 버티는 ‘모래알 국가’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2.0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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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 상태에서 부족장과 해적이 약탈한 돈 나눠 가져…알카에다로부터 무기 공급받아

 

▲ 선박 납치가 기승을 부리는 소말리아 연해에서 무장한 해적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적은 7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했다. 가난했던 시절 지나가는 배를 습격해 재물을 약탈하던 해상 강도가 바로 해적이었다. 17~18세기 바이킹 해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해적은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취를 감추고 전설만 남았다. 그 해적이 21세기에 소말리아에서 부활했다.

소말리아 해적이 뉴스를 타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년 전이다. 1991년 소말리아는 중앙 정부가 내전으로 붕괴되면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무엇보다 군대가 해체된 것이 화근이었다. 군대가 없다 보니 총을 든 자가 법이 되었다. 전국은 부족장이 지배하는 다섯 개 부족이 분할 지배하는 춘추 전국 시대로 변했다. 무법과 가난이 휩쓰는 이 나라에 ‘해적 경제’(piracy economy)가 출현했다. 전 국민이 해적질로 먹고산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약 1천만명의 소말리아 국민이 모두 해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소말리아 국민은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족으로 순박한 농민과 어민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해적 활동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은 1천5백명 정도이다. 이들은 원래 어부였다. 어부들을 해적으로 만든 원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국제 사회, 그것도 주로 선진국들이다. 소말리아 정부가 망하자 외국 선박들이 이 나라 해안에 들어와 불법으로 고기를 잡았다. 일부 외국 선박들은 해안에 유독성 쓰레기와 핵폐기물까지 버렸다. 아름답던 소말리아 해안은 고기도 사람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어부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소말리아 국민들 70%가 해적들 지지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해적으로 변했다. 국토의 모양이 소뿔처럼 생겨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로 불리는 이 나라의 어부들이 참다못해 ‘뿔’이 났다. 이들은 우선 불법으로 고기를 잡고 폐기물을 버리는 외국 선박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속은 여의치 않았다. 무장한 외국 선박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부들도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소지한 무기는 AK47 자동소총, RPG-7 로켓포, TT-30 반자동 권총, RGD-5 수류탄 등이다. 불법을 저지르는 외국 선박과 맞서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법이 동원되는 셈이다. 그것이 외국 선원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었다. 협상을 통해 인질을 풀어줄 때는 몸값을 받았다. 몸값은 건당 평균 100만 달러 내지 2백만 달러였다. 많게는 5백만 달러 내지 7백만 달러를 받을 때도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 국적의 삼호 드림호가 지불한 1천만 달러는 최고의 몸값으로 기록되었다. 이 돈은 무기 구매와 가난한 국민을 먹여살리는 생계비로 할당된다. 소말리아에는 정부가 없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 관한 자료도 없다. 다만 1인당 국민 소득은 약 6백 달러로 추산되며 국민의 90% 이상은 하루 평균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한다.

해적들이 약탈한 돈은 부족 우두머리와 해적들이 나눠 갖는다. 돈의 일부는 빈곤층의 생계비로 제공된다. 국민이 해적 경제로 연명하고, 국민의 70% 이상이 해적을 지지한다는 유엔 보고서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만난 어부 출신 해적은 “영해를 지키고 어장을 보호하는 한편 국제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해적이 되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선박의 불법 어로로 인한 국가의 세수 손실은 2004년 기준 1억 달러이다. 몸값으로 번 돈은 2009년 기준 3천9백만 유로로 추산된다.

해적 경제에 일조를 하는 불청객이 있다. 9·11을 자행한 알카에다가 해적들에게 무기를 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국 정보 기관은 보고 있다. 알카에다는 주로 예멘을 통해 해적들에게 무기를 공급한다. 알카에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이슬람 민족인 소말리아 국민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간접적으로 미국을 응징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알카에다의 창시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는 언젠가 회견을 통해 미국이 자기 조국을 지배하는 데 화가 나서 알카에다를 조직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전후 역사를 따져보면 소말리아 해적은 조만간 ‘바다의 알카에다’가 될지도 모른다.

해적 재산 추적 위한 국제 회의 곧 열려

해적 소탕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도 선박 납치는 4년째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0년에는 어느 해보다 납치가 많았다. 국제해양국(IMB)의 보고에 따르면 해적들은 지금까지 4백45척의 선박을 납치해 1천1백81명을 인질로 잡았고, 납치 과정에서 여덟 명을 죽였다. 지난해에는 2009년보다 납치 건수가 10% 늘어났다. 아마도 몸값이 올라가면서 납치 활동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91년부터 해적들의 활동을 추적해 온 IMB의 포텐갈 무쿤단 국장은 “현재로서는 해적들이 통제 밖에 있다”라고 말했다. 해적 행위는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해역에서도 발생하지만 가장 위험한 수역은 소말리아 해역이다. 아직도 28척의 선박이 6백38명의 인질과 함께 소말리아에 잡혀 있다. ‘아프리카의 뿔’과 아라비아 반도 해협 중간의 인도양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한국 등에서 파견된 12척의 함정이 해적을 감시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2009년에는 납치에 가담한 해적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납치에 성공한 사례도 2009년의 20건에서 2010년에는 15건으로 줄었다.

그렇다고 납치가 근절될 조짐은 없다. 해적들의 무기가 첨단화하고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부 선박회사들의 얄팍한 상업적 계산도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대형 선박회사의 경우 지불되는 몸값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몸값을 주더라도 먼 항로로 운행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다고 계산한다. 해적들은 이런 실정을 십분 활용한다. 최근의 유엔 보고서는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은 인질의 몸값, 각국 함정들의 파견 및 유지비 등을 합쳐 연 70억 달러가 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적들에게 퇴로를 주지 않은 채 무작정 단속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차라리 70억 달러를 해적들의 생계비로 제공하는 대가로 해적 활동을 중단하는 협상도 할 때가 되었다고 시사했다.

한편, 해적 담당 유엔 특사인 자크 랑 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해적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12명의 부족장 명단을 파악했다며 이들을 개별적으로 격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적들이 돈세탁용으로 운영하는 해외 호텔이나 사업체에 대한 제재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각국에 분산 수용된 해적들을 재판하기 위한 특별법정의 신설을 제의했다. 해적들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관련국 회의도 3월1일 열릴 예정이다. 비탈리 추르긴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조만간 해적을 퇴치하기 위한 획기적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소말리아 내전을 촉발한 무장 이슬람 민병대는 처음 해적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몸값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현금 앞에서 이슬람 율법을 포기했다. 소말리아에는 현재 이 나라 전역에서 암약하는 샤바브 무장 세력과 미국이 지원하는 중앙 임시정부가 대결하고 있다. 두 세력은 처음 해적 행위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다가 지금은 모두 해적을 감싸는 쪽으로 기울었다. 한 부족장은 “지금부터는 돈이 우리의 주군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샤바브 민병대는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12월 수도 모가디슈의 호텔을 습격해 30여 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도 알카에다로부터 배운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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