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결실 맺은 축구협회 유학 프로젝트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2.14 22: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동원·손흥민·남태희 등, 국가대표팀 주축으로 ‘우뚝’

조광래호의 발전 동력과 희망을 찾은 2011 아시안컵 대회가 끝난 지 1주일 만에 대표팀은 새로운 출발을 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주춧돌로 자리 잡았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를 하며 새 시대를 맞은 한국 축구의 상대는 공교롭게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유럽의 강호 터키였다. 2002년의 추억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담긴 이 경기에서 한국은 당시 월드컵의 성공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바로 남태희라는 새로운 특급 유망주의 등장이었다.

현재 프랑스 리그 1의 발랑시엔에서 뛰고 있는 남태희는 무릎 부상 중이던 이청용을 대신해 터키전에 선발 출전했다. 첫 대표팀 발탁 후 곧바로 데뷔전에 나선 남태희는 왜 자신이 프랑스 무대에서 ‘코리안 메시’로 불리는지를 보여주었다. 저돌적이면서도 섬세한 드리블과 간결한 볼터치, 정확한 슈팅은 남태희를 터키전 최고의 발견이라고 부른 이유였다.

1991년생인 남태희는 유럽에 건너간 지 4년째 되는 선수이다. 2007년 울산 현대고에 재학 중이던 남태희는 대한축구협회의 우수 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잉글랜드로 건너갔고, 2009년 여름 프랑스 1부 리그 소속이던 발랑시엔에 입단했다. 올 시즌 발랑시엔의 주전 선수로 성장한 남태희는 많은 경기 경험을 쌓으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남태희를 2002년이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유럽 진출을 도운 해외 유학 프로젝트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한·일월드컵 직후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유망주들을 매년 꾸준히 해외 클럽으로 보내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씨앗을 뿌린 지 10년 만에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남태희뿐만이 아니다. 이미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의 주축이 된 지동원, 이용래, 손흥민도 바로 해외 유학 프로젝트 출신이다.

해외 유학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출발은 한·일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에 시작되었다. 프랑스월드컵과 시드니올림픽에서 잇달아 실패를 맛본 한국 축구는 히딩크라는 세계적 명장을 데려왔음에도 큰 무대에서 통할 대형 선수가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다. 축구협회는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대표팀의 젊은 선수를 유럽 무대로 보내 2년간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나간 것이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주요 선수였던 설기현(벨기에 앤트워프), 이동국(독일 브레멘), 심재원(독일 프랑크푸르트)이었다. 이들 중 유일하게 설기현이 벨기에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한·일월드컵에 출전해 활약하게 된다.

초기에는 현지 부적응 등 시행착오 반복

▲ 지난 2월10일 터기와의 평가전에서 슛을 시도하는 지동원 선수. ⓒ연합뉴스

설기현이라는 의미 있는 수확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미 성장이 끝난 성인 선수의 유럽 진출을 추진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다. 협회 차원에서 아무리 부탁해도 즉시 써먹을 전력감을 원하는 유럽의 클럽은 한국 선수의 입성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축구협회는 유망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전무였던 조중연 현 회장의 주도 아래 기획실과 유소년축구재단을 설립했다. 고교 유망주와 지도자를 해외 클럽에 파견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2002년 여름 로베르 피레, 프랑크 리베리 등을 육성한 프랑스의 FC 메츠와 협약을 맺은 축구협회는 양동현(부산·전 국가대표), 어경준(서울), 강진욱(울산), 이용래(수원·현 국가대표) 등을 1기로 선발해 유학을 보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작 전부터 반발이 일었다. 축구협회 차원에서 예산을 대면서 유망주를 해외 클럽에 임대 보내는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 명당 1억원에 가까운 거액이 투입되었다. 선수와 부모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핵심 선수를 두 눈 뜨고 빼앗기는 학교와 지도자측은 거세게 항의했다. 현지에서의 지원과 관리도 쉽지 않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유학 1기생 중 양동현과 어경준, 강진욱은 유학이 끝난 뒤에도 유럽에 남았지만 나머지 선수는 현지에 적응하는 것에 힘들어 하며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16세 이하 팀에서 시작하는 유학생은 재능이 있어도 현지 축구협회 등록 규정으로 인해 실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업과 축구를 병행해야 하는 유소년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브라질과 포르투갈로 떠났던 4기생은 모두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2007년 유학을 떠난 5기생들이었다. 축구협회는 설기현, 박지성, 이영표가 활약하고 있고 비교적 적응하기 수월한 영어권 무대인 잉글랜드로 눈을 돌렸다. 남태희를 비롯해 지동원(전남·현 국가대표), 김원식(발랑시엔), 이용재(FC 낭트) 등이 레딩과 왓포드로 유학을 떠났다. 5기생은 가장 많은 선수가 유럽 클럽과 프로 계약(남태희·김원식·이용재)을 맺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동원은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도약했다.

6기생 중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함부르크 SV 유스팀에 속했던 손흥민이 2년 만에 1군 정식 계약을 맺으며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것이다. 유학 중인 선수가 그대로 성인팀과 계약을 한 것은 유학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함부르크는 손흥민의 재능에 점점 관심을 보였고, 팀을 장기적으로 이끌 핵심 선수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4년이 넘는 장기 계약을 맺은 손흥민은 지난해 10월 쾰른과의 경기에 출전해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빠르게 성인 무대에 적응하며 분데스리가 전체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손흥민의 성공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에 집중되었던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은 분데스리가 등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지난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맹활약한 구자철은 대회가 끝난 뒤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기도 했다. 올해는 축구협회가 해외 유학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째가 된다. 대표팀에는 유학 프로젝트 출신 유망주들이 하나 둘 입성해 세대교체의 주역이 되고 있다. 축구협회가 겨우 사정해야 선수 한 명을 보내던 유럽 진출의 갑을 관계는 이제 유럽 현지 스카우터들이 K리그를 찾아오는 관계로 역전되었다. 지동원, 손흥민, 남태희의 활약이 커질수록 우수 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는 한국 축구의 가능성과 위상을 180˚ 바꿔 놓은 업적으로 평가받을 것임에 분명하다.  


 내부 반발에 ‘유학’ 일시 중지…‘저변 확대’로 방향 틀어

유망주의 대표팀 입성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지만 정작 유학 프로젝트는 2008년에 보낸 6기생을 끝으로 일시 중지된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축구계 내부의 반발이다. 성적에 입지가 좌우되는 학원 지도자들이 팀의 우수 자원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는 그나마 팀 전력에 손실이 덜 가게 하기 위해 고교 1학년을 유학생으로 선발했지만 그마저도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담당한 관계자는 “축구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지도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내부 반발이 크면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라며 협회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협회의 선수 육성 전략이 엘리트 위주에서 저변 확대로 돌아선 이유도 있다. 협회는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 꾸준한 경기 소화, 지역 축구 붐 조성을 목적으로 2009년부터 전국 단위의 초·중·고 축구 리그를 펼치고 있다. K리그 각 팀도 산하에 연령별 유스팀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선수보다는 지도자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소수 선수에게 연간 수억 원의 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전체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현재 한국 축구가 흘러가는 방향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