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시아파, 중동 헤게모니 노린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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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 최근 이집트 사태까지 겹쳐 불안 요소 가중…국제 질서에 새로운 지각 변동 불러올 수도

올 1월 튀니지의 알리 대통령이 축출된 데 이어 이집트 사태의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동 지역 다른 국가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중동 곳곳의 불안정성은 이곳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근 예멘, 모로코, 요르단 등까지 번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동의 새로운 리더십과 권력 변화의 조짐은 원유를 포함한 국제 물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집트 사태가 가져오는 파장과 중동의 불안전성은 국제 안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간 독재 정치로 인해 이집트에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이집트 사태가 가져올 장기적 여파는 현재로서는 잘 짚이지 않는다.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민주화 열망과 새로운 체제 도모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15일 수천 명의 시위 군중에서 시작된 정권 퇴진 요구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시위로 커졌다.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과 군 병력은 대규모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주저했다.

▲ 지난 2월9일 이집트 카이로 의회 건물 밖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짓밟고 있다. ⓒAP연합

이집트 민주 시위의 중심지가 된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가 외치는 “우리는 같은 이집트 국민이다”라는 구호는 진압을 위해 동원된 탱크들을 무력화시켰다.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의 재연을 우려했던 것은 기우로 끝난 듯이 보인다. 무바라크가 아들 또는 측근을 통해서 권력을 계승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바라크 정권의 연장선에 있는 그 어떤 리더십도 민주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바라크의 선택은 아들이 아닌 정보 총책임자인 오마 술레이만을 부통령으로 임명한 것이다. 참고로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다.

이집트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집권 당시 부통령이었던 무바라크가 1981년 사다트 암살 이후 대통령직을 맡아 30년 장기 집권을 이어오면서 야기된 정권의 부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이다. 또한 지난 30년간 네 번(1987, 1993, 1999, 2005년)이나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문제는 그것들이 불공정하고 비민주적 선거였다는 점이다.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서 억눌려 있던 국민적 반감이 분출된 것은 2005년 대통령 선거 이후 무바라크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가 소수 독립적인 신문들의 등장으로 틈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무바라크 정권은 장기 집권에 대한 방책으로 내무부를 더욱 강화해서 반정부 인사들과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을 영장 없이 구금했다. 심지어 그는 2005년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누르 박사(Dr. Nour)까지 감금했다. 미국도 유감의 뜻을 전달하고 민주적 개혁을 요구했지만 무바라크의 독선적 정치는 날로 도를 더해갔다. 게다가 1995년 이후 무바라크는 여섯 번의 암살 시도에서 목숨을 건진 바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바라크는 더욱 독재에 의존하게 되었다. 급기야 82세의 무바라크는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을 언급했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집트 국민들은 더욱 신물을 느낀 것이다.

 

이집트 사태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은 궁핍한 경제 상황이다. 8천만 이집트 국민 가운데 40%가 하루 수입 2달러 이하의 빈곤층이다. 인플레이션은 17%로 생활고가 심각하다. 이러한 경제적 원인이 과격분자들이 득세하는 데에 근거를 제공한다. 즉, 과격 세력에 대해서 빈곤층이 관심과 동정심을 보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9·11 사태 이후 이집트 유적을 찾는 서방 관광객에 총격을 가하는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활동이 이집트에서 자주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바라크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력 진압을 택했지만, 군부와 경찰 내부의 분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온건적 리더십은 지금의 이집트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무바라크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중동 평화의 수호자로서 미국이 이집트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원한 바이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재로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사다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당시)가 서명했고,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으로 이어졌다. 무바라크의 퇴진과 반미 리더십의 등장은 이 평화조약의 종결을 의미한다.

‘시아파 이란’, 심상치 않은 움직임 계속

▲ 이집트에 파견된 미국의 프랭크 위스너(왼쪽) 특사가 백악관과 다른 입장을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EPA

이란을 중심으로 한 급진 시아파는 중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인구 약 70억명 가운데 이슬람 인구는 약 16억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시아파는 1억6천만명이다. 이슬람 세계의 10% 정도에 달하는 소수 세력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는 시아파의 중심인 이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남부 이라크의 시아파를 지지하고 이란에 이익이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란이 레바논의 시아파인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돈은 연 10억 달러에 상당한다. 이스라엘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지만, 이란이 사용하는 페르시아어와는 다른 아랍어를 사용하는 시아파인 헤즈볼라가 중동의 테러리스트 교육과 훈련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란은 예멘 반군에 대해서도 지원을 늘리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예멘 정부에 대해서 군사비 원조를 세 배 늘린 이유는 이란이 지원하는 반군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란이 예멘에 집착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1천3백54년간 이어온 이슬람 세계 내 반목 세력인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도전이다. 물론 이란군측이 50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라크와 이란 전쟁(1980~88년)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던 사실도 잊지 않고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예멘 반군들의 공격으로 국경의 사우디 학교 50군데가 폐교된 상태이고 사우디 F-16 전투기들이 예멘 반군을 폭격한 바 있다. 사우디의 국내 정치 또한 불안한 상황이다. 사우디의 절대적 왕실 정치와 친미 성향은 그에 대한 반발로 자국 내 아랍 민족주의자들을 지하드의 투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홍해를 통과하는 요충지인 만답 해협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란은 중동 원유 수송량의 90%가 통과하는 호르무츠 해협을 마음만 먹으면 차단시킬 수 있다. 여기에 세계 물동량의 14%가 통과하는 홍해의 만답 해협까지 장악하면 그 위험성은 한층 커진다.

중동 내 무력 충돌, 이슬람 세력 단결 부추겨

▲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행동대원들. ⓒEPA

이슬람 세력의 단결은 올해 예상되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 중동 세력과의 무력 충돌로 인해 오히려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대응은 종전과는 다른 거센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 방법에 대해서 미국이 보이는 미온적 태도는 반미와 반서구 정서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여기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공동의 적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략적 제휴는 미국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슬람 세계는 서기 629년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의 독살 이후 수니파와 시아파로 양분되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를 위시한 수니파와 이란을 정점으로 한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남부 이라크의 시아파가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반목처럼 1천3백54년 동안이나 대립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시아파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통혼도 불허하고 있을 정도이다.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의 바이든 부통령은 무바라크 정부는 미국의 동맹이라고 재확인했고, 클린턴 국무장관도 이집트 정국은 ‘안정된(stable)’ 상태라고 언급했다. 그 이유는 이집트가 지난 30년간 친미 정책을 펴오면서 미국이 수에즈 운하에 대한 접근과 이집트 내 공군기지를 활용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 규모가 커지고 무바라크 정부의 무력 진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바라크 퇴진이 아니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악관과 프랭크 위스너 특사가 다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월1일 무바라크가 9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적으로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반면, 위스너 이집트 특사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치적을 인정하며 지난 30년간 이집트를 위해 공헌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 정치적 유산을 잘 계승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사태로 오바마 외교 정책 허점 노출

이와 같은 혼선은 무바라크가 그동안 축적한 재산이 최고 7백억 달러로 추정된다는 영국 언론의 보도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내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참고로 미국이 이집트에 연간 지원하는 군사 지원비는 15억 달러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갈팡질팡한 모습은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1월29일자에서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를 미국이 지난 3년간 유도했다고 보도하면서 더욱 이중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술레이만을 부통령에 임명한 것에 대해서 미국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무바라크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권은 미국의 꼭두각시로 간주되는 분위기이다. 이집트가 무바라크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의 반미 정부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민주적 정권 이양과 실리주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이집트 사태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래 가장 큰 외교·안보의 난제이다.

지난 40년간 중동에서 벌어진 6일 전쟁, 이란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옛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걸프 전쟁 등 분쟁과 진행형인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은 이 지역이 세계의 화약고임을 의심하지 않게 한다. 이집트 사태와 중동의 불안정한 체제를 볼 때 향후 중동에서 벌어질 분쟁은 지난 40년간 목격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질서의 새로운 지각 변동이 중동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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