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방산 비리’에 칼 겨눌까
  •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1.02.1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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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강력한 지시 따른 검찰 ‘최우선 과제’…잇단 수사에 방산업계 사업 환경은 악화 일로

지난 2월8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부장 김홍일)는 현직에 있을 때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 등의 비리 혐의를 잡고 내사해 온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관련 사건을 대전지검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 재직 시절인 2009년 10월, 해군본부에서는 ‘9억원대 납품 비리’와 관련해 현역 소령이 양심 선언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발생했었다. 당시 사정 당국은 해군에 대한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전 총장의 관련 여부를 집중적으로 내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지난 1월에 해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내 한 은행 지점의 관련 계좌를 조사해 정 전 총장의 공금 유용 혐의를 추적해왔다. 이와 더불어 검찰은 정 전 총장이 2005년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등을 역임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해군 무기 도입 사업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9일 국방부에서 열린 2011년 업무보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직 해군 참모총장에 대한 수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군납 및 방산 비리 척결을 공언한 이래 다각도로 펼쳐온 육·해·공군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방산 비리 척결은 현 정부에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를 복명해야 하는 검찰의 최우선 과제로 정착되었다. 대검 중수부의 범죄정보담당관실이나 수사기획관실 등은 방산 비리 첩보를 종합해 수사를 기획하고 여타 지검으로 사건을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정옥근 전 총장 재직 시절에 이 부서들은 한 엔진 제작업체가 함정 엔진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원가를 조작한 의혹, 해군 무인정찰기를 납품할 때 단가를 부풀린 의혹 등을 집중 내사했다. 지난해에도 갈지자로 운행되는 해군의 최신예 유도탄 고속함의 부실 개발, 함정에 탑재하는 대잠 링스 헬기의 허위 정비 등 연이은 부실과 비리가 터져나왔다. 한 검찰 소식통은 “원가 관련 납품 비리를 수사하다 보면 방산업체의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로비와 같은 ‘큰 물건’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상당하다”라고 전한다.

검찰이 이처럼 해군의 납품 비리를 추적하는 데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해군의 독특한 조직 문화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선후배 관계가 철두철미한 해군은 배타적이고 응집력이 강한 분위기여서 음성적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라는 시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비리를 규명하기가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비리 척결을 공언해 온 검찰이 지금껏 밝혀낸 비리의 정도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게다가 군 장비의 원가 산정이라든지 정비와 같은 후속 군수 지원 체계는 검찰의 전문성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다. 당연히 수사를 받는 군과 업체들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선 지검과 대검 사이에서 방산 비리 수사 방향을 둘러싸고 이견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군 지휘부와의 갈등도 빚어내

▲ 2009년 10월13일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 국정 감사에서 발언하는 정옥근 해군 참모총장. ⓒ연합뉴스

방산 비리 척결에 대한 현 정부의 집요한 의지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비리를 밝혀낸다는 정치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에 “리베이트만 근절해도 국방 예산 20%는 삭감할 수 있다”라는 발언을 한 이후 방위산업은 거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왔다. 이와 함께 비리 수사를 통해 군 지휘부와 업체의 기강을 잡고 국방 개혁에 힘을 실어준다는 정권적 차원의 의지도 덧붙여졌다.

군납 및 방산 비리 척결을 넘어 군 비리 전반을 수사하려는 현 정부의 의지는 불가피하게 군 지휘부와 갈등을 일으켜왔다. 현 정부 들어와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들이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경우가 거의 없다. 육군의 경우 임충빈 총장, 한민구 총장, 황의돈 총장 3명이 각기 18개월, 9개월, 6개월씩으로 임기를 마쳤다. 그중 임 전 총장과 황 전 총장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되기도 했다. 공군의 경우도 김은기 총장이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갈등을 겪다가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오는 4월에 있을 군 정기 인사를 앞두고 최근 군 내부에서는 4성 장군들의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예전 정권에서는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 현 정부에서는 일상화된 구조 속에서, 군 인사법이 정한 ‘총장 2년 임기 보장’은 이미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비롯한 사정 기관들은 군 고위 장성에 대한 비리 수사에 항상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위 군 장성에 대한 비리 정보는 장군 진급 및 보직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한폭탄과 같다. 최근 군 내부의 일부 장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와 ‘직거래’하면서 군 장교들의 비리 사실을 제보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입장을 굳히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결국 인사권을 가진 참모총장들이 장군 진급 인사를 심의·추천하는 데 군 내부에서 떠도는 비리 관련 정보들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 헌병대 준장의 수십 가지 비리 사실을 담은 ‘공익 제보’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되고 난 직후, 해당 준장이 전역 지원서를 제출한 사례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단면이다. 

한편 방산업계에서는 지난해 방산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직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L사를 비롯해, 사주가 구속된 H사, 그 밖에도 압수수색, 검찰 소환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사업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국내 재벌들은 수익성이 낮고 비리 잡음이 많은 방위산업을 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방산 분야를 그룹에서 분리하는 추세이다. 특히 현대, 삼성, LIG, 두산 등 굴지의 재벌들은 “방산 분야는 돈이 안 된다”라고 보고, 단지 ‘말썽 안 나고 조용히 지내면 되는’ 별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정부가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업이니 그룹에서 소외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인을 잃은 국방의 산업적 기반이 침해되면서 국가의 방위 역량 자체도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국내 유일의 항공체계 종합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도 핵심 수익을 방산이 아닌 민수에서 달성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거의 전 방산업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업계가 방산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방 산업 전체의 활력도 소진되고 있다. 방위산업이 산업계의 탕자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해 들어 검찰 내부의 자중지란과 함께 검찰의 칼끝이 다시 방산 비리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자, 관계자들은 경악하고 있다. 결국 ‘청와대-검찰-군-방산업체’로 이어지는 일련의 난맥상으로 인해 현 정부 국방 개혁의 미래도 지극히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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