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앞에 휴전선은 없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3: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에 알려지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휴대전화 덕분이다. 현재 탈북 브로커, 북한 전문 매체, 국내 정보 기관 등이 북한 현지인을 정보원으로 고용해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정보의 질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보원에게는 정보가 바로 돈이다. 남북 간에 펼쳐지고 있는 치열한 ‘정보 전쟁’의 실상을 추적했다.

대북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는 얼마 전 깜짝 놀랄 동영상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함경도에 거주하는 김 아무개씨가 자신의 집에서 김정일과 그의 생모 김정숙의 사진에 낙서하고 불태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김씨가 김정일을 비난하고 욕하는 글을 쓰는 장면도 있었다. 김씨는 이 동영상을 외부로 유출하기 위해 촬영했다.

그리고 중국을 오가는 무역상에게 전달하며 남한으로 반입해달라고 부탁했다. 데일리NK의 통신원이 이를 입수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동영상은 악화된 북한 내부의 민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한기홍 데일리NK 대표는 “북한에서 휴대전화나 미니카메라 등으로 찍은 것이 NGO(비정부 기구) 단체를 통해 우리에게 넘어와서 공개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1월에 세계가 주목했던 북한의 화폐 개혁 소식은 NK지식인연대가 최초로 보도했다. 이때도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가 넘어왔다. 지난해 5월 당시 남한에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으로 최종 발표했지만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조작설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혼란을 야기했다. 국내 언론들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격침설’과 ‘침몰설’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와중에 한 대북 민간 방송 매체가 ‘천안함 배후’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열린북한방송은 같은 달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천안함 5적’을 발표했다. ‘총감독’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감독’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기획’ 정명도 해군사령관, ‘집행’ 김영철 정찰총국장이라며 북한 권력 실세들을 거명했다. 이 방송은 또 천안함 침몰 사건의 기획 단계부터 최종 승인까지의 자세한 과정을 공개했다. 모든 것이 북한 군부의 최고급 기밀 사항이었다.

탈북자들도 북한 내 가족과 휴대전화 통화

▲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가 북한 소식통이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그런데 작은 민간 방송 매체가 어떻게 최고급 정보를 알 수 있었을까. 이는 북한 현지에 자기네 통신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통신원 보호를 위해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으나, 당시 내부 사항을 잘 아는 사람에게서 제보가 있었다. 이를 크로스 체크해보니 사실로 확인되어 공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현지 통신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북한 소식을 남한에 전달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은 남한에 오면 북한 가족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한으로 휴대전화와 돈을 보낸다. 이때 입금된 액수의 20%를 자기 몫으로 챙기고 돈을 건네준다. 휴대전화를 통해 서울에 있는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안부도 묻고, 문안 인사도 주고받을 수 있다. 기자가 만난 한 50대 탈북 여성은 “북한 청진에 있는 아들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한국에 온 후 중국 휴대전화를 장만해서 북한으로 들여보냈는데, 약속한 시간에 전화가 오지 않을 때는 불안하다. 그래도 가족 소식을 듣고 있어 다행이다. 아들과 가족들을 빨리 데려오고 싶다”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탈북 브로커, 북한 전문 매체 그리고 국내 정보 기관 등에서는 북한 현지인들을 고용해 비공식적으로 북한 정보를 빼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모두 중국 휴대전화와 보안 카드를 지급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정보 활동비도 준다. 휴대전화 요금은 고용한 측에서 지불한다.

정보원들은 대개 북한 주민, 재중 탈북자, 조선족, 북한 당국의 중국 주재원,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무역상 등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중국 휴대전화를 개통해 밀반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국 접경 지역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북한 주민은 대략 1만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남한측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휴대전화가 북한의 내부 속사정을 외부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보원의 정보 능력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보원에게는 ‘정보’가 바로 ‘돈’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는 남한측 현지 정보원들 간에 치열한 ‘정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남한과 북한의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셈이다. <시사저널>은 국가정보원에, 북한에 탈북자 출신 정보원 등을 운용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으나 “답변이 어렵다”라고 전해왔다.

그렇다면 북한에 있는 정보가 남한으로 넘어오는 루트는 어떻게 될까. 현재 국내에는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매체가 여럿 있다.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 NK지식인연대, 자유북한방송, 좋은벗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열린북한방송을 제외하고는 모두 탈북자 출신들이 운영하고 있다. 미국 현지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미국의 소리’는 미국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북한 전문 방송 매체이다.

최근에는 위성전화로 서울과 평양까지 연결

▲ 평양 시내 영광거리 앞을 걸어가는 평양 시민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군 출신의 한 대북 전문가는 “미국의 소리나 자유아시아방송도 북한에 세포를 심어놓는다. 돈이 많으니까 그만큼 특종도 많이 나온다. (정보원들에게) 돈을 충분히 줘야 좋은 정보가 나온다. 아이템에 따라 액수가 다르다. 군사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현역 군인을 매수하고, 이들을 진급시켜 내부 기밀 정보를 빼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열린북한방송의 경우 국제적으로 북한 정보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체 직원 20명 중 일곱 명이 상근 기자이다. 기자들은 모두 탈북자 출신이며, 기자 1인당 5~6명의 통신원들을 두고 있다. 통신원들의 관리는 기자들 책임하에 이루어진다. 기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면 그 돈이 통신원들에게 건네진다.

물론 통신원과 그들이 보내오는 정보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기자들은 중국 접경 지역에 현지 출장을 자주 나간다. 그곳에서 중국 쪽 통신원들을 관리하고, 북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있다. 탈북 브로커들과도 연계해 북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다.

북한 통신원들과의 통화도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하대표는 “통신원들과는 시간대를 정해두고 통화한다. 통신원이 통화를 원할 경우 전화를 걸어온 후 바로 끊는다. 그러면 우리가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통신원들이 보내오는 정보는 크로스 체크해서 사실 여부를 가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지 통신원들은 북한의 고급 정보를 듣기 위해 자체 인맥을 형성한다. 친구 등 지인들을 포함해 군과 경찰 등에도 직·간접으로 접촉하고 있다. 그래야만 고급 정보를 남한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통신원이 위험에 노출되었을 경우 탈북시켜 남한으로 데려온다. 하태경 대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도 그런 적이 한 번 있다”라고 짧게 말했다.

최근 대북 매체들은 북한 내부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 평양 등 중심부에 위성전화를 들여보내고 있다.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전파가 미치는 두만강?압록강 일대인 신의주, 혜산, 회령, 무산 등에서만 통화가 가능하다. 때문에 권력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성전화가 등장했다.

위성전화는 유선망이나 이동통신 기지국을 세우기가 곤란한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며, 지구 대기권에 쏘아 올린 위성을 통해 송수신하는 방식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통화 반경이 ‘일반 이동통신 사업자’ 기지국에 비해 훨씬 넓다. 북한 전역에서 통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급 정보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서울에서 평양과 위성전화로 통화할 수 있다. 우리 통신원 중에도 위성전화를 통해 정보를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라고 전했다.

자유북한방송도 약 2년 전부터 평양 주변 주요 도시에 위성전화를 몰래 들여보내 평양 소식을 전해 듣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위성전화는 대당 100만원을 호가하고 있고, 통신비도 중국산 휴대전화 요금의 다섯 배가 넘는다. 또 위성전화는 실내에서는 통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통화해야 한다. 그만큼 단속에 걸릴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자유북한방송이 특종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 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당한 소식도 위성전화를 통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홍 데일리NK 대표는 “북한은 정보가 폐쇄된 사회이다. 이런 곳에서 휴대전화로 정보가 유통된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와 자기 세계를 비교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북한 내에도 휴대전화 망이 있고 중국 휴대전화가 들어가 있으니 간접적으로 외부 세계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탈북 브로커들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동남아 지역까지 방대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북한 내부는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있다. 군과 경찰, 국가보위부 등의 기관에까지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북한 전역에 있는 주민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거미줄 조직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 감청 장비 동원해 색출 나서

김지성 탈북난민구출연합 회장은 “회원 1인당 중국과 북한에 세포 조직원 7~8명씩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는 일정한 금액의 돈을 보내주고, 연락용으로 중국 휴대전화를 지급한다. 국가보위부 등 정보 기관원이 감청 장비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북 브로커들은 대북 매체와는 달리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북한 주민을 안전하게 탈북시키는 것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긴요한 연락 수단이 휴대전화이다. 휴대전화는 탈북자들이 북한 가족에게 돈을 송금하는 데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북한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쓰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다. 당국의 추적도 강화되고 있다. 북한에서 중국 휴대전화로 남한의 탈북자와 연락하는 사람을 색출해 총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실제 지난해 1월 함경남도 함흥에서는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군수공장 노동자 정 아무개씨가 적발되어 총살형을 당했다. 정씨는 군수공장에서 돈벌이가 안 되자 2002년부터 중국에서 무역업을 했고, 이후 탈북자 친구에게 북한 내부의 민생 소식을 휴대전화로 알려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

탈북 단체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 2년 전에 북한 당국이 독일제 감청 장비를 샀다고 한다. 지금은 단속이 심해서 20~30리를 걸어서 산에서 전화하고 있다. 들킬까 봐 5분 이상을 통화하지 않는다. 통화가 끝나면 추적에 걸릴까 봐 전원을 끈다. 그만큼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북한 관련 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현재 대북 매체 대다수가 미국 정부나 미국 민간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우리 정부가 1년에 1천억원만 북한 민주화를 위해 쓴다면 5년 안에 통일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08년 12월이다. 이집트 이동통신업체 오라스콤텔레콤과 북한 조선체신회사가 공동으로 ‘체오 합작회사’를 설립해 3세대(3G) 서비스를 시작했다. 양사의 지분은 각각 75 대 25이며, 이동통신망의 공식 명칭은 ‘고려링크’이다.

 

오라스콤은 당시 4년간 독점 사업권을 포함해 25년간 북한 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다. 대신 2009년부터 3년간 4억 달러를 북한에 투자하기로 했다. 북한 당국은 외국인과 주민들의 인터넷망을 분리해서 운영 중이다. 외국인은 2002년 태국 통신사인 록슬리 사와 합작해 개통한 이동전화 시스템(선넷)을 운용하고, ‘고려링크’는 주민들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 이동통신은 음성통화와 단문 메시지 서비스(SMS), 북한 관영망을 통한 인터넷 접속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후에는 화상전화와 데이터통신 등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북한의 휴대전화 서비스의 관리는 체신성에서 맡고 있다. 단말기는 체신성 산하 전신전화국과 우편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의 가격은 1백40유로(약 21만4천원) 정도이다. 북한 주민들의 평균 월급이 1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휴대전화 가격이 월급의 20배가 넘는 셈이다. 요금은 1분에 1달러를 받는다. 때문에 휴대전화는 북한의 고위 관료나 부유층이 주로 사용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중간 계층과 10대 청소년들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추세이다.

북한 당국은 한때 중국 접경 지역에서의 휴대전화 서비스 개통을 미루어왔다. 불법 휴대전화에 대한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부터 휴대전화 서비스를 국경 지역으로 확대했고, 지금은 북한 전역에서 휴대전화 서비스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18만4천5백31명이며, 지금은 30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이들 모두 3세대 통신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스콤측은 향후 5년 안에 가입자가 수백만 명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국경 지역에서는 중국 기지국을 이용한 중국 휴대전화가 상당수 유입되어 비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