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에도 밝은 ‘얼리어댑터’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2.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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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전경련 신임 회장 인물 탐구 / 소탈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전형적 ‘외유내강형’

▲ 2월17일 허창수 GS 회장이 전경련 차기 회장에 추대되었다. 사진은 2009년 전경련 회의에 참석하는 허회장. ⓒ시사저널 유장훈
허창수 GS 회장(63)이 2월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차기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다음 날인 18일 아침, 그는 서울 역삼동 GS 본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따돌리고 집무실로 직행했다. 허회장은 평소 공식 행사에서도 기자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튀지 않는 언행’ ‘겸손한 성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 허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배경에는 전경련 회장단과 재계 원로들의 강한 권유가 있었다. 애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강력하게 고사하면서 대안 찾기에 골몰했던 재계 인사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묵묵히 일에 매진하는 허회장에게 주목했다. 허회장은 2004년 23조원이던 GS그룹의 매출을 2010년 두 배 이상 늘어난 52조원으로 불려 덩치를 키웠다. 자산 규모도 18조7천억원에서 2009년 43조원으로 늘려 재계 7위의 기업집단으로 만들었다. 허회장은 과거 언론 앞에서 “존경받는 기업은 주주에게 공평하게 배당하고, 소비자에게 잘하면 된다. 100억원을 벌더라도 사기를 치지 않고 투명한 기업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아닌가”라는 말로 자신의 기업관을 강조해왔다. 

자신의 기업관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오래전부터 담금질을 했다. 1977년 LG그룹에 입사한 이후 LG상사, LG화학, LG산전, LG전선 등 그룹 내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LG상사 홍콩과 도쿄 지사 등 재외 근무 경험 덕분에 영어와 일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의 흐름을 읽는 감각도 갖추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요 사안에 대해 통찰력을 발휘하고 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로 성장했다.

정부-재계 관계 개선 가교 역할할지 주목

그룹 총수이지만 허회장의 성격은 소탈하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 등 주요 행사에도 수행 비서 없이 참석하기로 유명하다. 편식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해서 전날 읽은 책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다음, 헬스장에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1948년생인 그가 동년배보다 젊어 보이는 이유는 꾸준히 건강을 챙겼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고안한 아침 운동 계획표가 있을 정도이다. 계획표에 따라 스트레칭,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을 적절히 안배하며 체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평소 지하철로 출근하는 그는 업무 중에도 짬만 나면 걷는다. 허회장은 운동이 부족한 임원들에게는 만보기를 사서 나눠줄 정도로 걷기 예찬론자이다. 특히 생각이 복잡해지면 걸으면서 머리를 정리한다. 한두 가지 일에 집중해서 생각할 때에도 걷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 허회장의 지론이다.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행인을 살펴보면서 최신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는다.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 테헤란로를 따라 선릉역까지 걸어와서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이 있는 역삼역까지 이동한다. 퇴근 후 약속 장소에 갈 때에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정도는 걸어서 간다고 한다.

걷는다고 해서 약속 시각에 늦는 법은 없다. 그가 시간관념이 철저하다는 것은 재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소한 모임이라도 5~10분 먼저 도착해서 상대방을 기다린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집에서 홈씨어터로 오페라 DVD를 보면서 망중한을 즐긴다. 같은 오페라를 여러 버전으로 감상하면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허회장은 첨단 전자 장비에 관심이 많아 재계에서 ‘얼리어댑터 회장’으로 통한다. 새로운 기능의 컴퓨터,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등이 출시되면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해 정보를 수집하며, 젊은 직원들에게 전문가 수준의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뭉칫돈을 써가며 값비싼 제품을 덥석덥석 사 모으는 타입도 아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익힌 근검 절약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경남 진주의 만석꾼 집안에서 자랐지만 돈 액수보다 어떻게 썼는지를 중시하는 가풍을 물려받았다. 특히 그의 할아버지인 허만정 창업주는 자식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무조건 주는 대신 나중에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를 엄하게 따졌다고 한다.

허회장은 조용한 성격 탓에 친구가 없는 은둔형 CEO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고려대 경영대학 교우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은근히 활발하게 활동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학생회 회원이기도 하다. 재계에서는 김윤 삼양사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대표 등이 고려대 경영대 출신이다. 혼맥으로는 OCI그룹 이수영 회장의 동생 이화영 유니스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허회장의 부인인 이주영 여사가 이화영 회장 부인의 친언니이다. 이주영 여사는 이철승 전 상공부 차관의 딸이며, 이화여대를 나와 박용만 두산 회장 부인 등 재계의 이대 출신 부인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6년 직속 후배이다. 집권 후반기에 전경련과 현 정부의 관계 개선에 그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친기업’을 표방했던 정부가 최근 물가 안정과 친서민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가 세졌다. 이런 공세에 전경련은 회장이 없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허회장이 양측의 정책 조율을 원만하게 이루어낼 수 있을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이와 함께 허회장은 전경련과 LG그룹과의 불편했던 관계 개선에도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LG그룹이 반도체 사업을 현대(하이닉스)에 빼앗기다시피 내놓아야 했던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이 현대 편을 들자 구본무 회장과 전경련의 소원한 관계가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57년간 구씨와 허씨 가문이 동업 체제를 구축해 온 LG그룹에서 구씨가를 대표하는 구본무 회장과 함께 허씨가의 ‘맏형’으로 기업을 맡아 운영해 온 허회장은 2월24일 33대 전경련호를 정식으로 진수시킨다. 임기를 마치는 2년 후, 그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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