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격무가 의료 사고 부른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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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6명 이상, 1주일 80시간 근무…연차 올라가도 연구·논문 준비 등으로 고된 나날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시사저널 박은숙

 의료 사고를 줄이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원인 가운데 하나는 환자의 무리한 의료 요구이다. 수술이나 투약이 필요 없는데도 의사에게 강요하는 환자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원인은 의료인의 실수이다. 물론 의료인도 사람이어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혹은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병실 환자를 책임지는 전공의(전문의가 되기 전 단계인 레지던트)가 특히 그와 같은 환경에 있다. 실제로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가 의료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료인의 과한 업무를 덜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미국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4~0.05%(소주 2~3잔) 상태에서 환자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진료의 연속성 때문에 교대 근무도 어려워

 그렇다면 국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의 업무량은 얼마나 될까. 기자는 실제 전공의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연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 전공의는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해서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8시부터 30분 동안 회의를 하고 오후 6시까지 병동 주치의로 근무한다. 환자들의 입·퇴원 여부를 확인하고 수시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간다. 점심 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이지만 짬이 나지 않으면 거르는 경우도 있다. 외과 전공의(3년차)라면 온종일 수술에 매달리기도 한다. 오후 6시 이후에는 회진을 돌면서 환자 상처를 소독하거나 투약 등을 한다. 밤 10~12시에 일과를 마쳐도 다음 날 해야 할 일에 대한 지시 사항이 떨어지면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일쑤이다.

 인턴은 이틀에 한 번, 전공의는 3일에 한 번씩 야간 당직도 선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병동을 책임진다. 평균 3~4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응급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외과 전공의는 응급 수술로 24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내과 전공의도 응급실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당직을 마치면 오전 8시부터 또 하루를 시작한다. 한 대학병원의 3년차 전공의는 “나도 지난 3년 동안 주말 없이 근무했다. 정규 근무에 당직, 응급 상황 근무까지 겹치면 연속으로 36시간 동안 근무할 때도 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다음 날 정규 근무도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환자의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것이 한 전공의만의 특별한 경우는 아닐까. <시사저널>은 한 의료 관련 단체가 지난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전공의 3백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전공의의 37%가 1주일에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100시간도 28%여서 80시간 이상인 전공의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특히 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전공의는 대부분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10명 중 6명은 휴일에도 근무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10명 중 7명은 과도한 업무로 휴가도 갈 수 없을 만큼 업무량이 과다하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근무 시간 제한을 법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미국 뉴욕 주는 전공의가 24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거나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간호사나 경찰 등은 교대 근무를 하지만 전공의는 교대 근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진료의 연속성 때문이다. 환자를 맡은 주치의이기 때문에 다른 의사로 바뀌면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가 까다롭고 응급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연차가 올라가면 근무에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연구하고 논문 준비하느라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운동을 하라고 권하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운동은 언감생심이다. 한 4년차 외과 전공의는 “약을 필요 이상으로 투여할 때가 있다. 특히 독한 약을 많이 투여하면 환자에게는 큰 해가 간다. 밤에 당직을 서면서 쪽잠을 자다가 응급 전화에 깨지 못해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료 과오는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의료 사고라고 오해하지는 말아달라. 약도 부작용이 있듯이 치료를 잘했지만 환자에 따라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학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탈진증후군·우울증에 시달리기도

▲ 서울의 한 종합병원 진료실 앞에서 외래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그렇다 보니 전공의가 할 일을 간호사가 넘겨받아 하기도 한다. 간호사는 간호조무사에게 자신의 일을 넘긴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니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투약 등 의사나 간호사가 할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의는 “병원 입장에서는 전문의보다 전공의,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의료 사고로 인한 손실 비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가 많다”라고 털어놓았다. 

 과중한 업무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자신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전공의 10명 중 7명 이상이 탈진증후군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탈진증후군은 자신의 업무에 오랜 기간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업무를 남의 일처럼 느끼며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로 인해 투약 오류 등 의료 과오를 매달 한 번 이상 저지르는 전공의가 53%에 달했다. 특히 여학생 전공의의 자살률은 일반 여성보다 다섯 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자살할 때 사용할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어느 정도 투여하면 죽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공의는 이와 크게 다를까. 상당수의 전공의는 우울증을 경험한다. 자살까지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나도 전공의 때 목을 맨 후배를 보았고, 스스로 마취약을 주사한 선배도 있었다. 여자 후배가 남편과 아이를 두고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최근에도 내 강의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묻던 학생이 며칠 후 죽은 채 발견되어 밤새 뒤척인 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 전공의들의 상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큰 병원일수록 일처리 관점에서의 분업 체계는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의료인은 자신이 맡은 일만 신경 쓰므로 환자 상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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