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덩치의 고릴라, 고환은 왜 그리 작을까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3.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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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침팬지는 네 배나 더 커…사람은 ‘중간 수준’

남자들은 보통 성기의 크기나 정력제에만 관심이 많다. 그러나 정작 정력의 주체인 고환은 관심 밖이다. 고환은 섹스를 하는 데 직접적으로 어떤 리드미컬한 테크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즉, 모양새만 그럴싸할 뿐 제값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존재이다. 하지만 사실 고환은 남성의 발기력을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지가 바로 고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고환 크기는 서로 많이 다르다. 사람, 침팬지, 고릴라 가운데 누구의 고환이 제일 클까? 당연히 덩치가 가장 큰 고릴라 같지만 정답은 침팬지로 1백19g(체중의 0.27%)이나 된다. 그 다음이 사람이고(40g, 체중의 0.06%) 고릴라는 겨우 30g(체중의 0.02%)에 불과하다. 몸무게는 고릴라의 5분의 1에 불과한 침팬지의 고환이 고릴라의 것보다 무려 네 배나 더 크다. 왜 그럴까?

동물 세계를 통틀어 몸집에 비해 매우 다양한 수컷의 고환 크기는, 상대를 가리지 아니하고 문란하게 성행위를 하는 암컷의 난교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쉽게 설명된다. 암컷의 난교성이 심할수록 수컷은 자신의 정자가 난자에 도달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환을 크게 키우기 때문이다. 고릴라의 고환이 작은 반면 침팬지의 고환이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일러스트 임성구

암컷의 성생활 문란한 동물일수록 고환 크기 커

고환은 정자를 생산하는 수컷의 생식 기관이다. 남성의 신체 중 고환은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즉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차지하고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왔다.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남성의 ‘무기’는 고환이다. 성적으로 우월한 입지를 차지하려면 정자를 생산해 내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정자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동물이든 남성이든 고환의 크기는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33종의 영장류를 조사해 고환의 크기가 난잡한 섹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섹스 관계가 난잡한 영장류일수록 고환의 크기가 커졌다. 더욱 정확히 표현하면 수컷 고환의 크기는 암컷(여성)의 행태에 달려 있다. 암컷이 배우자에게 충실할수록 수컷의 고환은 작고, 만일 암컷이 바람둥이라면 수컷의 고환은 크다.

실제로 고릴라 암컷은 거의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 고릴라는 안정된 가족을 이루며 집단으로 생활하고, 수컷 우두머리가 그 집단의 모든 암컷을 차지한다. 게다가 암컷의 발정기가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 밖에 없고, 다시 새끼를 잉태할 때까지 한 달에 오로지 며칠 동안만 수태가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유능한 우두머리 수컷일지라도 교미를 자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1년에 두어 번 정도 짝짓기를 할 뿐이다. 이때만 우두머리 수컷은 암컷에게 줄 최소한의 정자를 만들면 된다. 때문에 큰 고환이 필요 없다.

반면 엄청난 바람둥이인 침팬지들은 다르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다수의 수컷과 암컷이 함께 사는데, 암컷은 많은 수컷과 난교를 한다.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여러 마리의 수컷과 빠른 속도로 연달아 교미를 즐긴다. 그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성행위를 하는데, 암내 나는 침팬지 암컷은 하루에 열두 마리의 수컷과 60번 정도 교미를 한다. 평균 새끼를 한 번 배는 데 상대를 바꿔가며 1백35회나 교미를 한다. 결국 침팬지 질 속에서 서로 다른 수컷의 정자들이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침팬지의 고환이 큰 이유이다.

또한 침팬지는 희소한 과일과 열매를 섭취하기 때문에 넓은 행동 반경을 가져야 한다. 행동 반경이 넓으면 통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수컷 하나가 다수의 암컷을 통제해야 하는 일부다처제는 별 소득이 없다. 수컷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암컷이 바람을 피운다면, 독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컷의 입장에서 가장 나쁜 상황은 암컷이 외도를 통해 임신한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기르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경쟁을 하면서 암컷과 섹스를 해야 하는 침팬지의 고환은 크고 정액의 양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인류는 진화 거치는 내내 한눈 팔았음을 의미

그렇다면 사람의 암컷, 즉 여성은 어떨까? 바람기가 다분히 있으니 수컷(남편)들은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릴라와 침팬지의 중간 정도의 크기인 것은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되 가끔 바람을 피우기도 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여성들이 침팬지보다는 정숙했지만, 고릴라 암컷처럼 안정적인 암수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많은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법으로나 사회적으로 권장한다는 점에서도 예측할 수 있듯, 사실 인류의 조상이 처음부터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더 난잡한 성생활을 영위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침팬지 다음으로 큰 고환을 가졌다는 것은 침팬지보다 좀 더 규제된 성관계를 맺으며, 고릴라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성관계 패턴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남성 또한 고릴라 같은 애처가는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독특한 체형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짝짓기 경쟁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난잡하게 성행위를 하는 종일수록 생김새가 화려하고 요란해지기 때문이다. 즉, 인간 남성의 고환 크기는 진화를 거치는 내내 남자와 여자가 한눈을 팔아왔다는 증거이다.

유인원 중에서 사람의 음경만큼 사용 빈도가 높은 생식기는 없다. 아프리카 피그미 침팬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처럼 1년 내내 섹스를 하는 동물은 없다. 아마 짝짓기 충동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자주 섹스를 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사람의 고환은 침팬지보다 더 커야 옳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침팬지만큼 난잡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인간 여성이 이토록 정숙하지 못한 존재라면 남성의 경우는 어떨까. 남성은 더 ‘못 믿을’ 존재이다. 한 번에 수억 개의 정자를 사정할 수 있는 남성의 경우,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잘 전달해줄 수 있는 건강하고 젊은 육체에 매력을 느끼며 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지향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 없다’라는 속담이 왜 있겠는가!


 고환과 두뇌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고환의 크기는 정자 생산량과 관계가 있다. 더 많은 정자를 생산하는 수컷이 큰 고환을 갖게 된다. 그런데 고환이 큰 수컷은 두뇌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라큐스 대학 스코트 피트닉 교수팀은 박쥐 3백34종의 두뇌와 고환의 크기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 고환이 클수록 두뇌는 작아졌고 고환이 작을수록 두뇌는 커졌다. 특히 암컷이 다양한 수컷과 교미할수록 박쥐 수컷의 고환이 커지고 두뇌가 작아졌다. 암컷이 한 수컷과만 교미를 하는 종은 반대였다. 박쥐는 종에 따라 고환의 크기가 매우 다른 동물이다.

암컷이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수컷이 똑똑해지기 위해 두뇌가 커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고환과 두뇌 모두 에너지가 많이 드는 기관이기 때문에 생존과 번식을 위해 두 기관의 비율을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국 세필드 대학의 해리 무어 교수는 자신의 짝인 암컷이 바람을 피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고환 대신 두뇌를 키워 오히려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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