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역사의 미아가 되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3.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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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친미 독재자 몰락에 잠시 기뻐했던 그들, 시위대가 이슬람근본주의 버리고 민주주의 선택하자 ‘타격’

 

▲ 지난 2월28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

9·11을 기획한 테러 그룹 알카에다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적 가치 그리고 그런 미국과 우호적인 정권을 전복하는 일을 대의로 삼고 있다. 이 과업을 완수하는 지하드(성전)의 투사들은 사후에 미녀 76명의 시중을 받으며 안락한 영생을 누린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아랍의 친미 독재자들을 이단자 또는 서방의 꼭두각시로 매도하면서 이들을 타도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알카에다의 희망대로 아랍 독재자들은 차례로 추락하고 있다. 알카에다는 쾌재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알카에다로부터는 아무런 축제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축제는커녕 한탄과 좌절의 신음소리가 요란하다.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알카에다와는 상관없는, 심지어 알카에다에 적대적인 세력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알카에다는 역사의 미아가 되었다. 이는 알카에다에게는 치욕이자 좌절이다. 알카에다가 미국에 9·11을 선물했다면 중동 민주화는 알카에다에게 중동판 9·11을 선물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동 민주화 운동은 알카에다가 신주처럼 받들어온 두 가지 원칙, 즉 테러와 종교적 광신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동 시위자들은 자위적 수단으로 약간의 폭력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알카에다의 이슬람근본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민주주의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추종자들이 신의 ‘저주’로 여기는 가치이다. 중동 사람들이 알카에다가 가장 증오하는 원칙을 선택했다는 것은 결국 알카에다를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중동에서 발 붙일 공간 거의 사라져

이처럼 중동 민주화 흐름으로 알카에다는 기로에 섰다. 이대로 역사의 방관자로 사라질지, 아니면 현재의 혼란을 이용해 재기를 모색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중동에서 권토중래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일시적으로 혼란을 이용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알카에다가 발 붙일 공간은 사라졌다. 중동 사태는 그만큼 알카에다에게 치명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친미 독재자들의 추락에 기여하지 못했고, 전세계에서 외면당한 테러리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30년간 중동 테러리즘을 연구했고 지금은 조지타운 대학에 재직 중인 폴 필라 연구원은 중동 사람들, 특히 젊은 엘리트들이 평화적 방법으로 민주주의 열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알카에다의 투쟁 수단인 테러리즘은 소멸한다고 분석했다. 민주주의는 알카에다에게는 독이다. 특히 테러리즘의 소멸은 알카에다에게 죽음의 신호나 다름없다.  

최근의 중동 상태에서 알카에다가 기회를 포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조짐도 없다.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증좌이다. 빈 라덴의 이집트 지부장인 아이만 알 자와흐리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은신처에서 3건의 애매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막연히 봉기를 선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1980년대 자신을 체포·고문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거나 향후 진로를 정하지 못한 지휘부의 무력감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아메리칸 재단의 테러리즘 전문가 비라이언 피셔는 “무바라크의 붕괴는 자와흐리가 20년간 꿈꾼 목표였으나 그는 결국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비폭력적·비종교적 민주화 운동이 그를 역사에서 삭제했으며 이것이 알카에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만들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아랍 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유혈 진압을 자행하고 있고, 예멘의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권력 유지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 질서의 붕괴는 최소한 단기적으로 테러리스트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스티븐 사이먼 연구원은 중동 상황을, 알카에다의 전략적 패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아랍 젊은이들이 폭력적 지하디즘(jihadism)에 흥미를 잃은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중동 봉기가 일부 지하드 전사들을 고무한 증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에 속한 한 알제리인 전사는 민주화 운동을 환영하면서 이제 망명했던 전사들이 돌아와 리비아의 반정부 투쟁에 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는 리비아에서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했다. 요르단의 지하드 전사 아부 칼레드도 알카에다가 장기적으로는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동의 시위자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는 만큼 알카에다의 시대는 다시 온다고 장담했다. CIA에서 빈 라덴 전기를 집필한 마이클 쇼이어는 칼레드의 말은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하급 전사들의 반응에도 빈 라덴의 침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거 행적으로 미루어 그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친미 정권 타도를 선동하는 성명을 발표했어야 정상적이다.

독재 정권 나오지 않는 한 재기 힘들 듯

▲ 3월3일 테러를 당한 파키스탄 경찰관 2명의 시신을 담은 관을 동료 경찰관들이 옮기고 있다. ⓒEPA

중동 국면을 오판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서구화된 젊은 엘리트들의 봉기로 알카에다의 원수인 무바라크가 축출되고 투옥되어 있던 수천 명의 이슬람 죄수들이 감옥에서 석방됨에 따라 알카에다와 그 추종자들의 활동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알카에다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변화의 물결을 십분 활용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중동의 지각 변동을 초래한 주도 세력이 알카에다의 원리를 거부하는 민주주의 지향 세력인 점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알카에다의 미래가 안갯속에 함몰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바마 행정부의 선택도 어려워졌다. 미국은 9·11로 비롯된 모든 테러의 원인을 무슬림의 과격주의로 보고 이 시각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중동의 독재 정권들을 지원했다. 이런 실수를 한 점에서는 부시나 오바마나 다를 것이 없다. 2008년 트리폴리 주재 미국 대사관이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은 카다피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리비아 출신 알카에다 전사들의 귀국을 금지한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과 카다피의 우정 시대는 이제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다. 새로운 중동 사태에 대처할 방안을 놓고 미국은 연일 고심하고 있으나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지원재단의 선임연구원 크리스토퍼 부체크는 “기존의 모든 가설과 설정이 사라진 만큼 미국은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알카에다의 종말론에 대해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이른바 ‘피플 파워(people’s power)’로 불리는 민중의 힘이 독재 정권을 타도해봤자 또 다른 독재 권력을 낳은 역사를 들어 중동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개연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타도,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타도, 콩고의 독재자 추방 등이 모두 소말리아식 혼란이나 이라크식 내전 혹은 이란식 압제를 불러온 사례를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이집트와 바레인의 젊은이들이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정부 시위대의 선두에 나선 용기를 볼 때, 그리고 이들의 입에서 반미 구호가 나오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중동 사람들이 민주화를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논평했다. 바레인의 야당 인사들은 감옥에 갇힌 아내를 강간하겠다는 협박을 받고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무바라크에 항거하다가 두 다리를 잃은 한 젊은이가 휠체어를 타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나온 것이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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