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위에 종교 있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1.03.0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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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개신교의 관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은 일과 함께 ‘이슬람 채권 법안’의 국회 처리가 개신교계의 압력으로 무산된 데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은 18대 국회의원과 현 정부 전·현직 장관급 이상 인사들의 종교 분포 및 국회 종교 모임 현황을 살펴보았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김윤옥 여사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뉴스뱅크이미지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 지난 3월3일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길자연 목사가 인도한 합심기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으며 기도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과정도 상당히 어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길목사가 갑자기 “우리 다 같이 이 자리에 무릎 꿇고 1분 동안 통성기도를 하자”라는 제안을 하자, 참석자들이 하나 둘씩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단상에 앉아 있던 이대통령은 처음에는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옆자리에 있던 김윤옥 여사 등이 무릎을 꿇자 결국 뒤따라 같이 무릎을 꿇었다. 이를 주도한 길목사는 현재 정치권과 개신교계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수쿠크법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지켜본 개신교계 관계자들조차도 “대통령이 참석하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처럼 대통령까지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라는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냥 종교 행사로만 봐달라”라며 크게 부각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인명진 갈릴리교회 담임목사는 “개신교만의 순수 행사라면 무릎 꿇는 정도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조찬기도회가 아닌가. 보통 예배와는 다르다. 대통령이 참석하고 국민들이 지켜본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예의를 지켜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가뜩이나 지금 수쿠크법(이슬람 채권법) 때문에 개신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의원 개신교 모임 공식 회원은 1백15명

이명박 정부와 개신교의 관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내 구설에 올랐다. 이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는 ‘고·소·영’ 내각으로 이미 유명세를 탔고, 지난 대선에서 개신교가 ‘이명박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대통령 자신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종교적 편향성 문제를 지적받기도 했다.

“대법관을 개신교 신자로 채우자”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의 사례처럼 정치인들의 종교 편향적 발언도 심심치 않게 터져나오고 있다. 지금 개신교는 이슬람 채권 법안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 “찬성하는 의원의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라며 정치권 위협에 나서고 있다.

개신교계 인터넷 언론인 뉴스파워의 김철영 대표는 “종교 편향의 기준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정책에서의 편향성, 두 번째는 인사에서의 편향성, 세 번째는 예산 책정과 집행에서의 공정성 상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세 부분 모두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인들의 종교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은 18대 국회의원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종교 분포를 파악했다. 조사 결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의회와 정부까지 개신교 신자들이 단연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아래 표 참조).  

특이할 만한 사실은, 자신의 종교를 밝히기 꺼리는 의원과 장관들로 인해 이번 조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국회 내에서 최대 의원 수를 가진 개신교 공식 모임 ‘국회조찬기도회’는 명단 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한나라당 개신교 신자들의 모임 ‘기독인회’ 역시 명단 공개를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황우여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은 “회원 개개인이 밝히는 것은 모르겠지만 단체가 명단을 공개하기는 어렵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같은 개신교 모임인 민주당 기독신우회와 타 종교인 천주교·불교 모임이 선뜻 명단을 공개한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국회조찬기도회 전임 회장이기도 한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명단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는 다 했다”라고 말했다. 국회조찬기도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내가 알기로 현재 국회조찬기도회 소속 의원들은 1백15명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여기에 정식 가입하지 않은 개신교 신도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신교만으로 의석 수 과반을 넘는다는 말도 한다”라며 “명단을 특별히 감출 필요는 없지만, 아마도 지금이 이슬람 채권 법안 문제로 민감한 시기라서 그런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2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교회와 정치인들은 ‘상부상조’ 관계?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진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사찰뿐 아니라 지역구의 교회와 성당에도 열심히 나간다”라고 말했다. 종교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주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불교 인맥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의 한 명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불심을 잡기 위해 공들여 영입한 인물이다. 그는 “불교 관련 법안을 내면 항의가 들어온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치인이 종교 문제에 얼마나 예민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개신교 신자인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도 비슷한 고충을 토로했다. 사찰에서 스님에게 합장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개신교인들에게 우상 숭배로 비쳐 항의를 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는 “상가(喪家)에서 절을 해도 항의가 온다. 애당초 종교 정치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불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지만, 개신교 유권자들의 항의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역시 영남권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주말이면 빼놓지 않고 교회를 찾아간다. 지역과 서울에 있는 두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역으로 향한다. 그렇다고 지역구 개신교인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역구 개신교 인구가 10%에 불과한데 ‘올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대형 교회를 찾기도 한다. 몇만 명 단위의 잠재적 유권자를 가지고 있는 대형 교회의 유혹은 정치인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큰 교회일수록 교적 처리가 완벽하지 않고 신도들끼리 서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매주 교회를 다니기 어려운 정치인으로서는 이점이다. 구교형 성서한국 사무총장은 “큰 교회로 가면 표밭이 되겠다며 몰리는 현상이 존재한다. 교회에서 정치인을 불러 인사시키는 경우도 있다. 교회로서는 영향력을 선전하는 효과, 정치인으로서는 유세와 다름없는 효과가 있다. 선거법 개정으로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개신교계 일부에서는 정치인들의 종교 행보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정치인이 종교를 이용하는 사례는 너무 일반적이고 흔한 일이라 자체로 이슈가 안 될 정도이다. 정상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정치인도 많지만, 교회에 적만 두고 있다가 선거 즈음이나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만 얼굴을 내미는 가짜 신자가 흔하다는 것은 이쪽 사람들에게 당연시된다”라고 말했다.

인명진 목사는 얼마 전 국회조찬기도회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이렇게 설교했다. “국회의원들, 제발 교회에 표 얻으러 다니지 마라. 선거 때만 되면 새벽에 두세 번씩 찾아오고, 그러면 의원들 의정 활동 하는 데 오히려 족쇄가 될 것이다.”


규모와 활동 면에서 개신교가 단연 압도적 우위
“개신교 모임은 의원 모임이 주도, 천주교와 불교 모임은 직원들이 주도해서 운영”

국회의원 종교 모임 어떻게 운영되나

개신교 신자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국회조찬기도회’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국회 내 소회의실 또는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여야 의원이 모두 참석하는 모임으로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이 회장을 맡았고,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과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의원들의 추천을 받거나 교단에서 명망이 높은 목사를 초빙한다. 국회조찬기도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회의원 1백15명이 정식 등록되어 있으며 한 번 할 때 보통 15명 정도가 모인다. 1년에 한 번꼴로 오는 의원도 있고,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과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처럼 매번 참석하는 의원도 있다”라고 말했다. 기도회 행사에는 국회 직원이나 일반 신도도 함께 참여한다.

운영 경비는 한 달에 3만원 정도의 회비와 헌금 형식의 찬조금으로 해결한다. 국회로부터 별도 예산 지원을 받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예산이나 행정 지원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의원실 관계자는 “비용이라고 특별하게 들어갈 것이 없다. 목사님들은 대부분 그냥 초청 형식으로 오신다. 아침 조찬 모임이기에 오신 분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내 개신교 활동은 각 당별로 별도 의원 모임이 운영될 정도로 타 종교에 비해 단연 두드러진다. 50여 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한나라당 기독인회’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열린다. 매번 10여 명의 의원들을 포함해 2백여 명이 참석한다. 목사 초빙 문제를 담당하는 목사와 회계 담당자를 외부에 따로 두고 있다.

지난 2월에 열린 조찬기도회에 초빙된 이태희 목사가 설교 중 이슬람 채권법 저지를 부탁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기독인회의 한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지는 않다. 예배가 끝나면 다과회 형식으로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최규식 의원이 회장을 맞고 있는 ‘민주당 기독신우회’는 의원 39명이 활동하며 매월 셋째 주 수요일에 열린다. 의원들로부터 목사를 추천받고 회비를 걷는 운영 방식은 한나라당 기독인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기독신우회의 한 관계자는 “종교인끼리 서로 규합하거나 모여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예배가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간다”라며 모임의 정치성에 대한 우려를 경계했다.

의원실이 중심이 되는 개신교 모임과는 달리 불교와 천주교는 일반 신도가 중심이 된다. 천주교 모임은 국회 직원들이 결성한 ‘다산회’와 의원들 모임인 ‘가톨릭의원신도회’로 이원화되어 운영된다. 다산회는 정기적으로 매월 한 차례 미사를 진행하며 가톨릭의원신도회는 비정기적으로 미사를 진행한다. 2월 중순부터 신임 회장을 맡은 이강래 민주당 의원은 앞으로 두 달에 한 번꼴로 미사를 정기화시킬 예정이다. 미사는 의원회관에 마련된 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에서 진행된다. 서울대교구 신부가 미사를 주관하며 의원은 월 3만원, 직원은 월 3천원의 회비를 내 운영한다.

불교 모임인 ‘정각회’가 주관하는 정기법회 역시 매월 한 번꼴로 열린다. 일반 직원들 모임에 의원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며 국회 내에 마련된 정각선원에서 진행된다. 정각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에서 법회를 준비하지 않는다. 매월 전달되는 팸플릿을 통해 통보를 받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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