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도 라이벌전 벌이는‘슈퍼매치’의 뜨거운 포효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3.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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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FC 서울 대 수원 삼성 맞대결,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기록 세워

 

ⓒ시사저널 유장훈

대한민국의 프로스포츠 중 가장 먼저 봄과 마주한 것은 프로축구 K리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라는 빅 이벤트를 K리그 활성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프로축구협회는 2011년을 대약진의 해로 삼고 있다. 연초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프로축구협회 수장으로 올라선 뒤 프로축구연맹의 변화는 극적이다. 2년간 유치에 실패했던 메인 스폰서(현대오일뱅크)를 확보했고, 미디어 노출 빈도도 역시 높아졌다.

▲ 게인리히

지난 3월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전국 8개 구장에서 벌어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은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시민구단 광주FC의 창단으로 16개 구단 체제로 꾸려진 K리그는 1라운드에 총 19만3천9백59명의 관중이 찾았다. 종전 기록인 지난 2008년의 17만2천1백42명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1라운드에서 흥행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프로축구연맹은 의외의 결단을 내렸었다. K리그 최고 흥행 카드로 통하는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맞대결을 개막전에 배정한 것이다.

선수 구성 면에서 K리그 양대 산맥으로 통하는 두 팀의 격돌은 ‘슈퍼매치’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디펜딩 챔피언 서울과 지난 2년간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펼친 수원의 맞대결은 5만1천6백6명의 관중을 모았다.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올해로 라이벌전에서 세 번째 흐름의 변화를 맞은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는, 흥미로운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집약될 경우 K리그도 유럽처럼 평균 4만 이상의 관중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 제파로프

서울과 수원은 더비전의 성격을 지닌다. 과거 삼성과 LG(2004년 LG와 GS의 분리 뒤, GS그룹이 운영)라는 재계 라이벌전에 그쳤던 이 경기가 K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5년이 넘는 역사 속에 퇴적된 갈등 관계 때문이다. 수원은 1996년 창단되었다. 당시 김호 감독은 감독급 코치인 조광래를 영입했지만 두 인물은 극심한 불화 끝에 1년 만에 결별했다. 1999년 조광래 감독이 수원 인근인 안양 LG(서울의 전신)의 감독을 맡으며 두 지도자의 신경전은 그라운드 위의 치열한 승부로 이어졌다. 프랑스에 진출했던 서정원이 1999년 K리그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친정인 안양이 아닌 수원을 택하며 상황은 격화되었다. 조광래 감독은 수원과의 대결에 늘 특별 승리 수당을 걸며 선수의 투지를 부추겼고, 이후 양팀의 상대 전적은 백중세였다. 안양은 2003년, 서정원 이적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일본에 진출했던 수원의 아이콘 고종수의 영입을 추진해 한바탕 감정싸움을 벌였다. 당시 K리그에서는 획기적인 규모였던 양팀 서포터즈의 치열한 응원전도 라이벌 의식을 조정했다. 이 시기를 슈퍼매치 1기로 볼 수 있다.

지난해 5월5일 단일 경기로 관중 6만명 넘는 대기록

▲ 몰리나

2기는 국민 스타 차범근과 터키 출신의 명장 세놀 귀네슈의 맞대결이었다. 차감독은 2004년 수원 감독으로 부임해 첫해 우승을 이끈 뒤 7년간 팀을 맡았다. 안양에서 연고를 이전한 서울은 2007년 차범근의 이름값에 대적할 적수가 없던 상황에서 귀네슈 감독을 영입했다. 두 감독은 첫 맞대결에서 평일 경기임에도 4만명이 넘는 관중을 불러들였다. 수도권이라는 큰 시장을 보유한 두 팀은 쟁쟁한 선수진도 보유했다. 수원은 김남일·송종국·이관우·안정환 등 전·현역 국가대표를 싹쓸이했고, 서울은 박주영·이청용·기성용 등 특급 유망주를 데려오는 방식을 택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9년 귀네슈 감독이 퇴임한 뒤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넬로 빙가다 감독이 부임했다. 2010년 5월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맞대결에서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단일 경기 관중 6만명을 돌파하는 대기록(6만7백47명)을 세웠다.

‘시즌 3’의 콘셉트는 독설과 신경전

2011년 슈퍼매치는 3기를 맞았다. 서울에는 올 시즌 황보관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수원은 2010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차범근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은 윤성효 감독이 팀을 이끈다. 1980~90년대 K리그에서 함께 현역 생활을 했던 두 감독은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고 라이벌 팀답게 기자회견을 비롯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로의 송곳니를 드러낸다. 과거 1기와 2기 시절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던 갈등과 대립 구조, 그 속에서 벌어지는 독설과 신경전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황보관과 윤성효의 독설이 시작된 때는 지난 2월24일 K리그 미디어데이. 개막전 예상 스코어를 묻자 황보관 감독은 “홈 팬을 위해 흥미로운 3-2 승리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성효 감독은 “너무 크게 이기면 미안하니 1-0으로 이기겠다”라고 반박했다. 개막 이틀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더욱 극심해졌다. 황감독은 “수원은 돈으로 선수를 모으는 맨체스터 시티 같은 팀이다. 결국 2위 정도밖에 못할 것이다”라고 대놓고 격하했다. 이에 윤감독은 한술 더 떠 “서울이 우승을 한 다음 시즌에 늘 부진하다. 올해는 잘해야 6강 정도 갈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외국인 감독과 국내 감독의 대결에서는 벌어지기 힘든 갈등 구조의 고리가 다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면서 팬의 호기심을 끌었고, 쌀쌀한 날씨의 3월 초순 개막전에 4만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했다.

전쟁 속의 전쟁 ‘우즈베키스탄 더비’도 관심 모아

▲ 정성룡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가 축구 전쟁이라면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전쟁이 숨어 있다. 바로 제파로프와 게인리히가 펼치는 ‘우즈벡 더비’이다. 두 선수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 출신이다. 플레이메이커인 제파로프는 대회 베스트 11에 뽑혔고 스트라이커 게인리히 역시 한국과의 3·4위 전에서 2골을 넣으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옛 소련 붕괴 후 아시아로 편입된 우즈베키스탄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 국가대표팀의 기둥인 데다 스타성도 가장 큰 두 선수의 맞대결 성사 여부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지난 3월6일 벌어진 첫 격돌에서 둘은 희비가 엇갈렸다. 팀에 합류한 지 4일밖에 안 된 게인리히가 화려한 개인기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를 도운 것이다. 반면 우즈베키스탄 대표팀의 주장으로 게인리히보다 한 수 위라던 제파로프는 큰 활약이 없었다. 게인리히는 “나는 팍타코르라는 팀에서, 제파로프는 분요드코르라는 팀에서 뛰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서울과 수원의 경기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라며 자신의 집중력과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특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뛰던 시절부터 쌓인 라이벌 의식에 대한 내성이 K리그 무대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만이 아니다. 전·현직 국가대표를 보유한 양팀의 쟁쟁한 선수 구성도 화제를 모은다. 수원의 골키퍼 정성룡과 서울의 골키퍼 김용대는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이다. 수원은 최성국, 염기훈, 이용래, 황재원 등을 앞세워 K리그 최고의 토종 군단을 자처한다. 서울은 데얀, 몰리나, 제파로프, 아디로 대표되는 특급 외국인 선수진과 어린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꾸린다.

이제 두 팀은 오는 10월에나 맞붙는다. 7개월 여의 긴 여정 뒤에는 누가 최종 승자로 웃을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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